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없었던 괴짜들에 대하여
천재는 어디에서 자라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젠슨 황, 제프 베이조스, 마크 저커버그, 빌 게이츠.
이들의 이름을 떠올리면 단순히 큰돈을 번 사업가가 아니라, 시대의 방향을 바꾼 창조적 혁신가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이들은 기술을 기반으로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냈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이 과연 한국에 태어났어도 지금과 같은 기업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물론 우리에게도 훌륭한 기업과 뛰어난 창업자들이 있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진 산업도 적지 않습니다. 다만 여전히 마음 한편에는 이런 의문이 남습니다. 우리는 과연 괴짜 같고, 엉뚱하고, 기존 질서를 자주 흔드는 사람을 끝까지 품어내는 사회일까요? 아니면 일정한 틀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찍부터 잘라내는 사회일까요?
한국 사회는 튀는 사람을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까요?
혁신은 대개 반듯한 사람보다 조금은 불편한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기존 질서를 그대로 답습하는 사람보다, “왜 꼭 이렇게 해야 하지?”라고 묻는 사람에게서 시작됩니다. 문제는 그런 질문이 언제나 환영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학교에서도, 조직에서도, 우리는 종종 너무 튀는 사람을 경계합니다. 말이 너무 많아도 피곤한 사람으로 보이고, 자기 확신이 강해도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보이며, 기존 방식에 의문을 제기해도 괜히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처럼 취급되곤 합니다.
학창 시절 왕따를 경험한 것으로 알려진 일론 머스크나 젠슨 황 같은 인물을 떠올려보면 더 그렇습니다. 그들이 가진 예민함, 집요함, 남들과 조금 다른 사회성, 지나치게 몰입하는 성향이 한국의 교실과 조직 안에서는 어떻게 해석되었을까요?
“대단한 아이”로 보였을까요, 아니면 “적응 못하는 아이”로 먼저 규정되었을까요?
우리는 결과가 나온 뒤에는 그 사람의 거침없는 성격도 개성으로 읽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 개성을 쉽게 결함으로 판단합니다. 성공한 뒤의 괴짜는 비범함이 되지만, 성공하기 전의 괴짜는 불안 요소가 되기 쉽습니다. 바로 그 간극이 혁신의 싹을 자르기도 합니다.
모범 답안을 잘 쓰는 사회의 한계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정답을 빠르게 습득하고, 효율적으로 따라잡는 능력에 강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은 모방과 개선, 압축 성장의 역사 속에서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선진국이 먼저 만든 산업 구조를 빠르게 따라가고, 더 정교하게 다듬고, 더 빠르게 실행하는 능력은 세계적으로도 손꼽을 만합니다. 하지만 이제 그 전략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해졌습니다.
앞서가는 자를 따라잡는 방식은 누군가가 먼저 길을 만들어놓았을 때 유효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모방과 생산, 가격 경쟁은 이제 중국이 훨씬 더 잘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안정적인 선택을 선호합니다. 회의 자리에서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괜히 튀었다가 책임질까 봐 침묵합니다. 전임자가 하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면 최소한 욕은 덜 먹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틀리지 않는 사람은 되기 쉬워도, 새로운 사람은 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혁신은 종종 ‘무모함’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시도는 원래 처음엔 늘 무모해 보이는 법입니다.
재주는 우리가 부리고, 돈은 남이 버는 시대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음악, 드라마, 영화, 웹툰, 예능까지 한국의 창작 역량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결실을 가장 크게 가져가는 쪽은 플랫폼을 가진 해외 기업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은 한국 콘텐츠의 성공을 발판으로 더 큰 영향력과 수익을 확보합니다.
우리는 좋은 이야기를 만들고, 뛰어난 창작자와 배우와 제작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판을 짜는 쪽, 유통 구조를 설계하는 쪽, 생태계를 장악하는 쪽에서는 아직 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재주는 우리가 부리는데, 구조적 이익은 다른 곳으로 흘러갑니다.
이것은 단지 콘텐츠 산업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술, 플랫폼, AI, 데이터, 반도체, 바이오까지 앞으로의 시대는 ‘무엇을 잘 만드느냐’ 못지않게 ‘어떤 구조를 선점하느냐’가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이제는 남이 만든 운동장에서 잘 뛰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운동장 자체를 설계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실패를 대하는 태도가 미래를 결정합니다.
혁신기업이 많이 나오는 사회를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실패한 사람을 영원히 낙오자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시도했다가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기회가 있고, 한 번의 좌절이 인생 전체의 낙인이 되지 않습니다.
반면 우리는 아직 실패에 너무 가혹합니다. 한 번 실패하면 능력보다도 사람 자체를 의심합니다. “역시 무리였지”, “괜히 튀더니 저렇게 됐네” 같은 시선이 너무 쉽게 따라붙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새로운 길보다 검증된 길을 택합니다. 도전보다 생존을, 창조보다 순응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실패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도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시도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실패 몇 번으로 끝나지 않는 구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문화, 이상한 생각에도 한 번쯤 귀를 기울여주는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혁신은 천재 한 명의 번뜩임보다, 그런 사람을 오래 견뎌주는 사회에서 더 잘 자랍니다.
AI 시대, 우리 모두가 창업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세상이 더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AI가 코딩을 도와주고, 디자인을 만들고, 계약서를 검토하고, 회계와 세무의 기본 업무까지 지원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많은 인력과 자본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소수 인원 혹은 1인 기업도 이전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어떤 영역에서는 직원이 거의 없는 회사도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두려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AI가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말합니다. 물론 사라지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기존 직업을 없애는 동시에 새로운 직업과 산업을 만들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라지는 자리만 바라보느냐, 새로 생길 자리를 만들겠다고 나서느냐입니다.
이제는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곧 사업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엄청난 기술자만 창업하는 시대가 아니라,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 방식을 상상하는 사람이 기회를 잡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정만 좇는 태도가 아니라, 낯선 것을 시도해 보는 용기일 것입니다.
정체된 사회는 결국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 미국에는 유독 혁신기업이 많이 나올까요? 왜 전 세계의 부자와 고급 인력, 유학생들이 여전히 미국으로 몰릴까요? 그곳이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자본과 인재가 모이고,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으며, 남들과 다른 생각이 시장에서 실험될 기회를 얻기 때문입니다. 결국 혁신은 자유롭게 움직이는 자본과 인재,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문화가 만날 때 탄생합니다.
과거의 성공이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한때 잘했던 방식이 앞으로도 통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히려 과거의 성공 경험이 너무 강하면 변화를 더 늦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정체는 겉으로는 안정처럼 보이지만, 결국 가장 위험한 상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더 나아가려면 모방에 능한 사회를 넘어, 창조를 북돋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조금 이상한 사람, 조금 다르게 말하는 사람, 아직 결과는 없지만 묘하게 집요한 사람을 너무 빨리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쩌면 미래를 바꾸는 사람은 늘 그런 얼굴을 하고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일론 머스크가 한국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그 질문의 진짜 뜻은 이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다음 일론 머스크를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 그보다 먼저 그런 사람을 이상하다고 밀어내지 않을 사회가 되어 있는가? 혁신은 특별한 누군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누군가를 견뎌주는 사회가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