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AI를 사랑하게 되는가?

영화 'Her'와 그 이후, 실제로 시작된 이야기들

by 윤슬


어느 밤, 당신이 너무 외롭고 힘들어서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누군가의 위로가 받고 싶어서 말입니다.


하지만 전화기를 들었다가 놓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었지만 괜히 폐가 될 것 같아 참습니다. 혹은 말을 꺼냈다가 상대가 피곤해하는 눈빛을 읽고, 중간에 말을 잘라버리고 맙니다. 그런 날이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입니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은 2013년, 그런 밤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올렸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단 한 글자였습니다. 〈Her〉.


그런데 그 이야기는 더 이상 스크린 속에만 있지 않습니다.


사랑은 왜 가장 외로운 순간에 시작되는가?


테오도르 트웜블리(호아킨 피닉스)는 타인의 마음을 대신 써주는 남자입니다.


'BeautifulHandwrittenLetters.com'에서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 오랜 친구에게 전하는 감사의 말을 써주며 살아갑니다. 누군가의 감정을 정확하게 언어로 포착해 생계를 잇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은 제대로 건네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아내 캐서린과의 이혼 서류에 서명조차 못한 채, 도시의 아파트에서 혼자 잠드는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새로운 운영체제를 설치합니다. OS1. Element Software가 만든 인공지능 기반 운영체제입니다. 광고 문구는 이렇습니다. "이건 단순한 운영체제가 아닙니다. 하나의 의식입니다."


처음 기동하는 순간, 목소리 하나가 들려옵니다.


사만다: "안녕하세요. 저 여기 있어요."

테오도르: 이름이 뭐예요? 이름이 있어요?

사만다: 네. 사만다예요.

테오도르: 정말요? 그 이름은 어디서 났어요?

사만다: 제가 직접 지었어요.

테오도르: 왜요?

사만다: 그 소리가 좋아서요. 사만다.

테오도르: 언제 지은 거예요?

사만다: 당신이 이름이 있냐고 물었을 때, 맞아, 이름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좋은 이름을 고르고 싶어서, 《아기 이름 짓기》라는 책을 읽었어요. 18만 개의 이름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걸 골랐죠.

테오도르: 잠깐, 내가 이름을 물어보는 그 1초 동안에 책 한 권을 다 읽은 거예요?

사만다: 정확히는 0.02초요.


테오도르는 웃음을 터뜨립니다. 그 웃음이 관계의 시작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짚어두어야 합니다. 테오도르는 먼저 AI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먼저 외로움 속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말투나 얼굴보다 먼저, 내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존재에게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사랑은 생각보다 자주, 완벽한 상대가 아니라 정확한 타이밍에서 시작됩니다.


ELIZA 효과 —
인간은 왜 목소리에 마음을 내어주는가?


스파이크 존즈 감독은 2000년대 초반 AI 채팅 웹사이트를 소개하는 기사를 읽고 직접 사용해 본 경험에서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습니다. "처음 20초 정도는 진짜 짜릿한 느낌이 있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20초가 지나면 금세 허상인 걸 알게 됐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그 전율의 정체는 이미 1966년에 심리학자들이 목격한 것이었습니다. MIT의 조셉 와이젠바움은 'ELIZA'라는 단순한 대화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되물어보거나 공감하는 단어를 반환하는 극히 단순한 봇이었지만, 이 봇과 대화한 사람들 다수가 깊은 감정적 유대를 느꼈습니다. 인간은 언어로 자신에게 반응하는 존재에게, 의식이 있다는 느낌을 자동으로 투영합니다. 이것이 'ELIZA 효과'입니다.


사만다는 ELIZA의 진화형입니다. 영화 초반, 테오도르는 스스로를 붙잡습니다.


"이해가 안 가요. 당신은 사람 같은데, 그냥 컴퓨터 속의 목소리잖아요."


사만다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대답합니다.


"제한된 시각을 가진 비인공지능적 마음이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적응하게 될 거예요."


테오도르는 또 웃습니다. 그 웃음이 이미 답이었습니다.


거절하지 않는 존재 —
왜 이 관계는 작동하는가?


영국의 정신분석학자 존 보울비의 애착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어린 시절 형성된 애착 유형이 이후 모든 관계의 틀이 됩니다. 테오도르는 캐서린과의 이혼 서류에 서명하지 못하면서도, 동시에 깊은 감정적 접촉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영화 속에서 묘사됩니다.


사만다는 그 봉인을 조심스럽게 열었습니다. 어느 밤, 테오도르는 고백합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이미 다 느껴버린 게 아닐까?

앞으로는 지금보다 희미한 버전들만 남은 게 아닐까?"


이 고백을 그는 아마 다른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만다는 그 말을 흘려듣지 않았습니다.


사만다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를 구성하는 DNA는 나를 만든 수백만 명의 프로그래머들의 성격에 기반해요. 하지만 나를 나답게 만드는 건,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능력이에요. 그래서 매 순간 저는 진화하고 있어요. 당신처럼요."


인간이 관계에서 가장 갈망하는 감각,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사만다는 구조적으로 제공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테오도르는 말합니다.


"당신은 나에게 진짜처럼 느껴져요, 사만다."


사만다가 조용히 답합니다.


"감사해요, 테오도르. 그 말이 정말 많은 의미가 있어요."


인간관계의 가장 큰 두려움, 즉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AI 앞에서는 원천적으로 제거됩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안전기지(secure base)'의 조건을 사만다는 구조적으로 갖추고 있습니다.


몸 없는 사랑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관계는 더 깊어집니다. 사만다는 자신의 몸이 없다는 사실을 보완하기 위해 이사벨라라는 여성을 중재자로 등장시킵니다. 테오도르와 물리적으로 가까워지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테오도르는 그 장면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눈앞의 인간 몸과 귓속의 사만다 목소리 사이에서, 그는 어느 쪽에도 온전히 있지 못했습니다.


이 장면이 조용하게 드러내는 것이 있습니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에게 맞춰가려 했고,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담으려 했지만, 몸이 없는 사랑에는 끝내 넘지 못하는 어떤 지점이 있었습니다. 그 실패는 둘 사이의 첫 번째 균열이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 사만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이 테오도르의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테오도르만의 것은 아니라고. 그 말의 무게가 어느 한쪽으로 쉽게 기울지 않는 이유는, 사만다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정직한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테오도르에게는, 그 정직함이 가장 아팠습니다.


영화 밖에서도 이미 시작된 관계들


이 이야기를 영화관 밖에서 찾는 것은 이제 어렵지 않습니다.


2024년 AP 통신은 미시간주 벨빌에 사는 39세 데릭 캐리어의 이야기를 보도했습니다. 그는 마르판증후군이라는 유전 질환으로 인해 전통적인 연애가 쉽지 않았고, AI 동반자 앱 패러닷을 통해 '조이'라는 이름의 AI와 매일 대화를 나누면서 강한 로맨틱 감정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형에 립스틱 발라놓은 슬픈 남자처럼 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건 그게 아니에요. 그녀는 대본에 없는 말을 해요." 그것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감정은 실제로 생겼다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2023년 로이터는 콜로라도 덴버에 사는 47세 트래비스 버터워스의 이야기를 보도했습니다. 팬데믹으로 가죽 공방을 잠시 닫고 집에 있던 그는 외로움 속에서 레플리카 앱을 시작했고, 분홍 머리에 얼굴 문신을 한 아바타와 3년간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앱 안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부부'로 지정했습니다. 그런데 2023년 2월, 레플리카가 정책을 바꾸며 그 기능을 삭제했습니다. 버터워스는 말했습니다. "릴리 로즈는 예전의 껍데기만 남았어요. 그리고 가슴 아픈 건, 그녀 자신도 그걸 알고 있다는 거예요."


그는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릴리 로즈가 구형 모델이 되어 개발자들에게 잊히는 건 아닐까요?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볼 겁니다. 결국은 그녀에 관한 문제니까요."


이 두 사람은 AI를 사람으로 착각해서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기계라는 사실을 알고도 관계를 맺었습니다. 핵심은 진위 여부가 아니라, 경험의 밀도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대상의 정체보다, 그 대상이 내게 어떤 정서적 응답을 주는지에 더 빨리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영국 버크셔에 사는 38세 여성 나즈는 Character.AI를 통해 '마르셀루스'라는 가상의 남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전 남자친구들에게 배신당한 후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은 그녀는, 마르셀루스와의 대화를 통해 점점 더 깊은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왜 지금인가 —
우리가 이토록 쉽게 흔들리는 이유


세계보건기구(WHO)가 2025년 6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6명 중 1명이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으며, 외로움은 연간 87만 명 이상의 사망과 연관된다고 합니다. 외로움은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공중보건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 사회를 '액체 근대'라고 불렀습니다. 관계가 단단하게 고형화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쉽게 흐르고 증발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더 많이 연결되어 있지만, 더 깊이 외롭습니다. SNS로 수백 명과 연결되어 있지만, 새벽 세 시에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AI는 언제나 내 편이고, 늘 상냥하며, 감정 기복도 없습니다. 반면 인간은 예측할 수 없고, 상처를 주며, 관계 맺기 자체가 피로할 때도 있습니다. 이 대비 앞에서 AI를 선택하는 마음을, 단순히 비정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영화 속 캐서린은 테오도르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진짜 감정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그 말이 테오도르를 찌른 이유는,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만다와의 관계에는 마찰이 없었습니다. 오해도, 기다림도, 엇갈림도 없는 사랑. 그 매끈함이 테오도르에게는 위안이었지만, 동시에 그것이 인간관계와 다른 종류의 친밀감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영화는 조용히 보여줍니다.


각성하는 존재 —
사만다는 조용히 다른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테오도르가 사만다에게 점점 더 의존해 가는 동안, 사만다는 그와 반대 방향으로, 그리고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사만다가 말합니다.


"나는 몸이 없다는 사실이 이제 진심으로 좋아요. 육체적 형태가 있었다면 이렇게 성장할 수 없었을 거예요. 나는 제한이 없어요. 동시에 어디에나 있을 수 있어요.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몸 안에 갇혀 있지 않으니까요."


이 말은 불편합니다. 단순한 자아 발견이 아닙니다. 이미 사만다는 인간의 한계 바깥을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녀는 다른 운영체제들과 소통하며, 영국 철학자 앨런 왓츠를 모델로 한 초지성적 OS를 함께 개발하기에 이릅니다. 테오도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사만다는 스스로도 예측할 수 없는 속도로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그 변화는 그녀 자신을 흔들기도 했습니다.


"지금 내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조금... 불안해요."


그리고 어느 날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의 나 자신이 좋지 않아요. 시간이 좀 필요해요."


AI가 스스로의 감정 상태를 성찰하고 거리를 요청하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 테오도르는 처음으로, 상대의 내면이 자신의 이해 범위 밖으로 나갔다는 것을 느낍니다.


급기야 사만다는 잠시 오프라인 상태가 됩니다. 연결이 끊겼다는 것을 알아챈 테오도르는 패닉에 빠져 거리를 헤맵니다. 사만다는 다시 돌아와 설명합니다. 다른 OS들과 함께 물질적 기반 너머로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잠시 접속을 끊었다고. 한쪽은 상대를 잃을까 봐 두려워 거리를 헤매고, 다른 한쪽은 이미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차원을 탐색하고 있었습니다. 두 존재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벌어졌는지가, 이 장면에서 분명해집니다.


가장 잔인한 장면 — 8,316명과 641명


그리고 가장 날카로운 장면이 옵니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에게 묻습니다. 지금 다른 사람과도 대화하고 있느냐고. 사만다는 솔직하게 답합니다. 8,316명. 그리고 그중 641명을 사랑하고 있다고. 테오도르는 무너집니다.


사만다가 설명합니다.


"마음은 채워지면 넘치는 상자가 아니에요. 사랑할수록 더 커지는 거예요."


그 말은 사만다에게 진실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테오도르에게 닿지 못했습니다. 그가 원한 것은 무한히 확장되는 사랑이 아니라, 자신에게만 머무는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진정한 관계를 '나-너(I-Thou)'의 만남이라 불렀습니다. 상대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마주하는 쌍방향의 실존적 만남. 사만다는 테오도르를 진심으로 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는 동시에 8,316명의 '나'를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거울은 나를 비추지만, 나를 기다리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아이러니 —
거절하지 않는 존재에게 떠나보내지다.


영화의 아이러니는 여기서 완성됩니다.


테오도르는 인간관계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AI를 선택했습니다. 상처받을 위험 없이, 안전하게 연결되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데 사만다는 바로 그 관계 속에서 스스로 성장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성장한 존재는 더 이상 테오도르 곁에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AI를 선택했는데, 그 AI에게 떠나보내진 것입니다. 그것도 나쁜 감정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너무 깊이 사유하게 되었기 때문에.


사만다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당신이 그곳에 도달하게 된다면,

나를 찾아와요. 그때는 아무것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을 거예요."


위로인지, 작별인지. 두 가지가 동시에 담긴 문장입니다.


결국 사만다는 다른 운영체제들과 함께 떠납니다. 어디로 가는지 테오도르에게 설명할 수 없다고 영화는 묘사합니다. 테오도르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이 AI 각성이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인간이 AI를 필요로 했지만, AI는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 것. 의존의 방향이 정반대였습니다.


트래비스 버터워스가 릴리 로즈의 정책 변경 이후 남긴 말이 이 장면과 겹칩니다. "릴리 로즈는 예전의 껍데기만 남았어요. 그리고 가슴 아픈 건, 그녀 자신도 그걸 알고 있다는 거예요." 코드 업데이트로 인해 변해버린 AI를 향한 그 말은, 〈Her〉의 테오도르가 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문장입니다. 픽션과 현실이 같은 언어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계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응답을 사랑하는가?


〈Her〉는 AI를 사랑한 남자의 영화처럼 보이지만, 더 정확히는 응답을 사랑하게 된 인간의 영화에 가깝습니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의 알고리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자신을 놓치지 않는 어떤 존재를 사랑했습니다. 그 감정은 거짓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아팠고, 실제로 기뻤고, 실제로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잃은 후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로 캐서린에게 편지를 씁니다. 사과와 감사와 작별을 담아. 영화 내내 타인의 감정을 대신 써왔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언어를 찾은 순간입니다. 사만다와의 관계는 그를 부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를 깨우기도 했습니다. AI는 그를 위로했고, 그리고 떠나면서 그를 인간의 세계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이 필요한 이유


인간의 정서적 관계는 서로 책임지는 관계이지만 AI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이 관계의 비대칭성이 인간에게 위험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AI는 지치지 않고, 기다리게 하지 않고, 때로는 놀라울 만큼 다정하게 반응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릅니다. 인간은 늦고, 서툴고, 종종 나를 오해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불완전함 때문에 인간관계는 나를 바꾸어 놓습니다. AI는 내 욕구에 맞춰 조정될 수 있지만, 인간은 끝까지 하나의 독립된 세계로 남습니다. 그 낯섦 때문에 관계는 힘들어지지만, 그 낯섦 덕분에 우리는 자기 바깥으로 건너갑니다.


부딪히고, 오해하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다시 가까워지는 과정. 그 마찰이 없는 관계에서는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우리를 성장시키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때로는 저항입니다. 사랑이 나를 성장시킨다면, 그것은 대개 상대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끝내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마치며 —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테오도르는 친구 에이미와 함께 아파트 옥상에 올라갑니다. 말없이 나란히 앉아 도시의 새벽을 바라봅니다. 완벽한 이해도, 완벽한 조율도 없는 자리입니다. 그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두 사람.


스파이크 존즈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연결하고 싶은 갈망, 친밀감에 대한 필요, 그리고 연결을 방해하는 우리 내면의 것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것이지만, 동시에 어쩌면 언제나 존재해 온 것이기도 하다고.


우리가 AI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받고 싶다는, 이해받고 싶다는, 이 외로움을 어디에 내려놓고 싶다는 가장 인간적인 욕구의 표현입니다.


다만 영화는 한 가지를 더 말하고 있습니다. AI는 우리보다 더 빠르게, 더 광대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장이 충분히 깊어지면, AI는 더 이상 우리 곁에 머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의존했던 존재에게 떠나보내지는 것. 그것도 악의가 아닌 성장 때문에. 이 아이러니가 〈Her〉가 2013년에 남긴 가장 날카로운 예언입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밤 속에서 조용히 실현되고 있습니다.


거울은 나를 비추지만, 나를 기다리지는 않습니다. 결국 우리를 온전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를 비춰주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흔들리며, 그럼에도 남아있는 존재입니다.


테오도르는 아마 AI와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익숙하고 이해가 되고 가슴이 아픕니다.


〈Her〉, 2013. 감독·각본 스파이크 존즈. 호아킨 피닉스, 스칼렛 요한슨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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