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민 손

by 벼리



'누군가를 깊은 수렁 속에서 꺼냈다고 말할 때,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고 해도 그건 결코 나 혼자 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강한 의지로 팔을 뻗어도, 반대편에서 그 손을 붙잡지 않으면 끌어 올릴 수 없다.' 그래서 '구했다'라는 말보다 '함께 나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꺼내는 사람과 꺼내지는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몸을 기울일 때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내가 누군가 손을 잡아준 적도 있었고, 동시에 누군가의 손을 필요로 했던 적도 있었다. 도움을 주는 입장에 있을 때보다 도움을 받았던 적은 오래도록 기억에 새겨진다.


오래전 그날이 떠올랐다. 가슴에 바늘이 꽂히는 것처럼 따갑게 아팠던 일이 있었다. 밖은 화창한데도 나는 마음을 접고 홀로 방에 웅크리고 있었다. 사는 일이 무겁게 느껴진 그날,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밖에서 따뜻한 밥 한 그릇하자고. 선배는 충분히 대답을 기다렸고 나는 내키지 않아 망설였다. 시간은 흘러갔고 며칠 후 선배는 다시 안부를 물었다. 맛있는 보리밥집이 있는데, 열무와 고등어 구이가 맛있다고 했다. 침묵하는 내게 선배는 재촉하지도 서운해 하지도 않았다. 언제든 괜찮으니 꼭 대답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후 나는 마음이 느슨해져서 밖으로 다시 나올 수 있었다.


누군가를 수렁에서 꺼내는 일은 이렇게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거창한 위로나 미려한 말이 아니라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자고 묻는 일, 그런 선배를 고마워하며 시간을 정해 나가는 일, 내민 손은 그렇게 조심스럽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날 먹었던 보리밥 맛은 기억이 흐리지만 선배가 내민 손의 온기는 아직까지 따뜻하다. 때로는 그 정도의 온기만으로도 '함께' 마음을 나눌 때, 사람은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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