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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Jun 20. 2024

한가한 듯 한가하지 않았던  일요일

고무통으로 작은 연못을 만들며



  일요일 아침 우리 부부는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나는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다. 주방 창으로 일요일의 느긋한 햇살이 스며든다.  거실에서는 남편이 돌리는 청소기가  윙윙윙 숨 가쁜 소리를 토해낸다.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문득 아이들을 키우던 그때로 돌아간 느낌이다.
 그랬다. 일요일이 되면 햇살이 방안 가득 들어오고 나서야 일어났다. 내가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남편은 아이들을 깨워서 씻겼다. 네 식구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면 나는 설거지를 하고 남편은 아이들과 청소를 했다. 오후엔 아이들과 함께 집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나들이를 가곤 했다.

 왜? 갑자기 그때의 그림이 떠오른 걸까? 아마도 일요일은 느긋해도 돼 라는 몸의 기억이 햇살조차도 느긋하게 느끼게 했을 게다.


 설거지를 끝낸 나는 마당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서성이고 있다.
청소를 끝낸 남편이 커피를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커피를 마시는 나의 시선이 마당 한쪽에 고정되어 있다.

 뭘 그렇게 쳐다보고 있냐고 묻는 남편에게  작은 연못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지난주에 충주에 있는 천경대계곡에서 차박을 했다. 남편은 그곳에서 돌을 하나 주웠다. 나는 그 돌에게 주상절리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 돌을 이용해 마당 한쪽에 미니 연못을 만들고 싶었다.


 내 말을 들은 남편은 미간에 깊은 주름을 모으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날씨도 더운데 일 벌이지 마라.'는 남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나의 시선을 피하지 못한 남편이 엉덩이를 들었다.





   남편이 집 뒤에서 사용하지 않는 고무통을 가져왔다.  우리는 연못을 만들 적당한 자리를 놓고 티격태격했다.

잠깐의 실랑이 끝에 내가 원하는 곳에 만들기로 했다.

 곡괭이로 고무통을 묻을 땅을 파느라 남편의 몸은 땀에 흠뻑 젖었다. 소매 끝으로 땀을 훔치던 남편이 갑자기 연못은 왜 만드냐고 따지듯 물었다.
"당신이 주운 주상절리를 제대로 살리려면 연못을 만들어야 해."
"그럼 이 일의 시작은 다 나로 인해 시작된 거네?"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그렇다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구덩이를 파고 고무통을 묻고 마당 입구에  있는 돌절구를 옮겨 자리를 잡는 것까지는 남편의 몫이다.  

이제 연못 주변을 꾸미는 것은 내 몫이다.
 나는 이렇게 저렇게 시뮬레이션을 해 본다. 고무통 뒤에 주상절리를 두고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주전자 화분, 항아리 화분. 기왓장 화분 등을 가져와 주변을 꾸몄다.
 일을 끝내고 나니 점심 먹을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고생한 남편을 위해 얼음 동동 양푼이 열무국수를 만들어 시원한 캔맥주와 함께 점심을 차렸다.
 연못을 만드느라 뜨거워진 몸을 시원한 맥주가 식혀주었다. 땀 흘린 뒤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는 행복의 맛이다.

  우리는 캠핑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낮잠을 즐긴. 대나무 숲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한가한 듯 한가하지 않았던  일요일을 그렇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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