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이다. 그래도 결혼 전에는 보기 싫은 정도로 뚱뚱하지는 않았다. 여자는 아이를 낳고 나면 체질이 한번 더 변한다더니 두 아이를 출산하고 살은 무섭게 내게 달려들었다.
살이 찌니 집 밖을 나가는 게 싫어졌다. 그럴수록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점점 은둔형 인간이 되어갔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살이 쪄도 좋으니 건강하기만 해라."라고 했다.
큰 아이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엄마, 배 나왔잖아요"라는 소리를 듣고 누군가 망치로 내 머리통을 내려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아이의 말은 엄마 배가 나와서 창피하다는 소리로 들렸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우울감이 내 정신을 칭칭 감았지만 아이에게 창피한 엄마는 되기 싫었다. 나는 살을 빼기 위해 죽기 살기로 이를 악물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집 근처 공원에 있는 축구장을 한 시간 이상 뛰었다. 줄넘기를 5천 번 이상했다. 일요일이면 가족들과 산에 올랐다.
2년 만에 내 몸에서 14킬로의 살을 녹여버렸다.
그 이후 나는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 시간을 걸어 출, 퇴근을 했다. 매주 산에 가며 백두대간을 걷고 한강기맥을 걸었다.
12년 전. 귀촌을 하면서 길이 좁고 공원도 없다는 이 핑계 저 핑계로 운동에 무관심해졌다. 거기에 갱년기와 폐경이 오면서 살은 다시 덤벼들었다.
몸은 다시 여기저기 삐그덕 거리며 이상신호를 보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마음먹고 내 몸을 다시 리셋하기 위해 아침마다 두 시간씩 2년을 걸었다.
8킬로의 체중이 사라졌고 삐그덕 거리던 몸도 다시 자리를 잡았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몸 상태가 좋아지니 정신은 다시 느슨해졌다.
오늘만 쉬자. 하루만 더 쉬고 내일부터 걷자.
사탕발림으로 미루고 미루다가 1년을 흘려보냈다.
점점 게을러지는 정신상태에 내 몸은 현실과 타협하며 익숙해져 갔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각오로 새해에는 다시 걷기 운동을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꽃샘바람이 뼛속을 파고든다. 다시 마음이 약해진다. 심기일전 시작한 운동이 작심삼일로 끝내면 안 된다. 아침 찬바람이 사나워 오후에 걷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옷을 껴 입고 모자를 쓰고 목도리까지 칭칭 감았다.
걸으려면 집 아래 호수 근처로 가야 한다.
그런데 근처에 사는 청각장애인이 덩치가 큰 개를 풀어놓고 키운다. 묶어 놓으라고 부탁도하고 화도 냈지만 고집불통이었다. 내 키보다 더 큰 개가 무서워 운동을 차일피일 미룬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통 보이지 않기에 장갑을 끼고 집 아래 호수 둘레길을 걸으러 나섰다. 기웃거리며 개가 있는 집 앞을 지나는데 다행히 개는 보이지 않았다.
개가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팔을 앞뒤로 흔들며 신나게 걸었다.
꽃샘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호수에 잔잔한 파도가 일렁인다. 반짝이는 윤슬의 춤사위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