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스친 인연

삼신봉에서 만난 사람

by 작은거인



마당에 서면 길게 누운 삼신봉능선이 보인다.
떠오르는 햇살이 능선을 비추며 산마루를 더듬어 부드럽게 아래로 쓸어내린다.
'산에 가야지.' 서둘러 커피 한 잔 내려 보온병에 담고 배낭을 멘다.
숲길로 들어서자 차가운 공기 와락 덤빈다.
시린 공기가 머리와 마음을 깨운다.
햇살이 숨어드는 길을 따라
정상에 오른다.




지리산 주능선 아래로 흰 운무가 너울너울 피어난다. 시간마저 멈춘 듯 한 정상엔 커피 향이 가득하다.
그때 고요를 깨며 헐떡이는 숨소리가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내 밝은 인사가 그에게 다가간다.
“안녕하세요.”
남자는 약간 지친 듯한 목소리로 천천히 답한다.
그는 용인에서 심야버스를 타고 백무동에 도착해, 세석을 거쳐 촛대봉에서 일출을 봤다고 했다.
음양수에서 목을 축이고 남부 능선을 걸어 이곳 삼신봉에 도착했단다.
수원에서 오래 살다 지리산 자락으로 귀촌한 나는 그가 떠나온 도시가 용인이라는 말이 반갑다.
그는 쌍계사로 하산할 예정이라 했고, 나는 올라온 길인 청학동으로 다시 내려가겠다고 했다.
그가 물었다.
“청학동은 교통이 괜찮나요?”
“진주로 가는 버스가 있긴 하지만, 자주는 아니에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에게 말했다.
“혹시 청학동으로 내려가신다면, 제 차로 버스 타는 곳까지 모셔다 드릴게 요.”
내려오는 길, 두 사람의 발소리만 자박자박 숲으로 퍼진다.


그는 면소재지의 작은 터미널 앞에 차가 멈추자 조심스레 내리며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미소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만날 때가 있죠. 내가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네요.”

그는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나는 눈인사로 답하며 말했다.
“인연이 닿는다면, 산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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