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 식구들과의 잦은 만남은 부부의 사소한 감정까지 공유하게 되어 부담이 될 수 있다.
부부만의 사소한 다툼으로 감정이 상한 두 사람이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시어머니는 묻는다.
“무슨 일이 있니?”
나는 작고 소소한 일이라 생각해 이야기를 했지만 역시나 그것은 내 부덕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아무 일 없다는 며느리의 대답에도 시어머니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스스로 결론을 내린다. 며느리가 아들을 힘들게 했구나. 그 생각이 태도가 되어 나에게 짜증 섞인 행동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우리 부부만의 공간에서 조차 남편과의 사소한 다툼이 신경 쓰인다.
나와의 사소한 다툼이 남편의 심기를 건드려 시어머니의 눈에 보이기라도 하면 나는 시어머니의 보이지 않는 짜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부부 사이는 더욱 어려워졌다.
남편과 나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툼은 겉으로 보면, 그저 우리만의 문제인 것 같았다.
말과 표정이 충돌하고, 감정이 부딪히며 싸움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표면 아래를 들여다보면, 늘 그 자리에는 시댁과의 갈등이 숨어 있었다.
남편과의 다툼은 단순한 부부간의 불화가 아니라, 시댁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불편한 감정들이 은밀히 스며든 결과였다.
나는 늘 그 사실을 마음속 깊이 느꼈지만, 겉으로 드러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는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도 표면적 다툼을 벌이며 서로의 마음이 아닌, 누적된 감정에 부딪치고 있었다.
겉으로는 우리만의 문제였지만, 사실 그 싸움의 불씨는 언제나 시댁과의 관계에서 시작되었다.
그날도 사소한 말 한마디가 불씨가 되었다.
대화는 곧 싸움으로 번졌고, 남편의 무표정이 내 마음에 불을 붙였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힘든 걸까?’
그 질문이 가슴속에서 울컥 치밀었다.
갑자기 몸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눈물이 흘렀다 꺽꺽거리며 울다가 갑자기 미친 듯이 웃음이 났다 한참 동안 그것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다 웃음이 터지고, 다시 울음으로 번졌다.
손에 힘이 빠졌고, 강하게 문에 부딪혀도 아픈 줄 몰랐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듯, 울고 웃는 '내가 나인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은 내 상태를 보고 ‘연기를 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날, 남편의 반응은 잔인하게 느껴졌겠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니 아마도 그 안에는 두려움과 무지가 섞여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은 결국 “정신적으로 이상한 것 같다”며 나에게 병원으로 가자고 말했다.
나는 그러자고 했다.
나와 아이를 데리고 남편이 1시간을 운전해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조금 진정되어 있었다.
의사는 내게 물었다.
“본인 이름을 말씀해 보세요. 아들 이름도 말씀해 주세요. 지금 무슨 계절이죠?”
나는 정확히 대답했다.
손은 부었지만 큰 이상은 없었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나와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오랜 기간 반복된 무시·침범·방치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속적으로 긴장 상태에 놓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스위치가 내려간’ 것
그것이 그날의 진실이었다.
그렇게 그날, 내 정신의 스위치는 내려갔었다.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응급실을 찾게 된 것이다. 그리고 1년 후, 근처 병원 응급실을 또 방문하게 되었다.
남편 퇴근 후 시댁으로 가던 차 안에서 갑작스럽게 숨이 막히고 죽을 것 같은 공포에 휩싸여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 하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링거를 맞으며 한 시간가량 잠들었다 깨어났다. 남편말로는 응급실에서 내게 신경안정제를 처방해 줬다고 했다. 공황발작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 중,
‘며느리’라는 자리에 있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그들의 시어머니는 흔히, 그녀들이 힘든 이유가 직장, 육아, 남편과 같은 ‘그녀가 아닌 다른 원인’ 때문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만약 자신의 며느리가 우울증을 겪고 있다면, 잠시라도 스스로를 돌아봤으면 한다.
혹시 내가 그 원인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아니야’, ‘나는 괜찮아’라는 억지 방어막을 세우지 않기를 바란다.
그 방어막은 문제를 외면하게 하고, 며느리의 고통을 더 깊이 묻어버릴 뿐이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고, 겸손하게 돌아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피해는 오롯이 며느리에게 쌓인다.
명확한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를 한 사람이 없는 사건 속에서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위치가 바로 며느리라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