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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반복된 말과 행동이 며느리를 병들게 한다.

by 마음벗

시어머니가 집에 찾아오는 것이 마냥 좋고 행복한 며느리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싶다.


그러나 많은 시어머니들은 그렇게 되길 바란다.

‘우리 며느리만은 나의 방문을 진심으로 원하고, 반가워해주기를.’


그렇다면, 며느리가 그런 마음이 들도록 자신이 먼저 행동하면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그런 마음이길 바라면서, 정작 자신은 며느리가 그런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게 행동하고 말을 한다.


어느 날 주말, 그날도 어김없이 시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다.

식사와 간식을 챙겨드리고 잠시 앉아 있을 때, 시어머니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동네 사람들이 그러던데, 요즘 며느리들은 시어머니가 집에 오는 걸 싫어한다더라.

너도 그러냐?”

그 말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나는 네게 어떤 존재로 남고 있느냐’라는,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불편하다.

“아니요”라고 말하기가 싫었다.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잠시 후, 나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다른 집 며느리들은 그렇대요?”

그러자 시어머니는 짧게 답했다.

“그렇대.”

그 말 뒤로,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시어머니의 말에는 나의 대답을 강요하는 힘이 있었다.

‘어서 대답해.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말해줘.’

그런 눈빛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 안의 무언가가 조용히 말리고 있었다.

그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마지막 남은 나의 자기 보호의 형태였다.

시어머니의 방문은 단순한 방문이라고 하기엔 그 만남은 언제나 숨 막히는 긴장의 시간이었다.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우면 시어머니는 냉장고, 옷장, 서랍, 집안의 구석구석을 늘 살폈다.


그 모습을 우연히 봤지만 모른 척해야 했다.

무엇이 그렇게 궁금할까.

그 무엇보다 감시받는 듯해서 마음이 불편했다.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스며들었다.

그 후로 시어머니가 오신다고 하면 나는 집안을 정리하고, 냉장고 속을 점검했다.

혹시 무언가 지적받을까, 또 어떤 말을 들을까.


그 불안은 매번 내 몸을 조여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가고 찾아오는 관계 속에서 쌓인 긴장과 스트레스는, 결국 내 몸과 마음에 병으로 나타나고 말았다.


어느 날 남편 퇴근 후 시댁으로 가는 차 안에서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아 죽을 것 같은 공포, 온몸에서 쏟아지는 땀, 손끝의 저림과 두근거림. 생전 처음 겪는 고통을 맛보았다. 그것은 공황발작이었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갑자기 숨 쉬는 것이 답답하고 크게 숨을 쉬어야지만 쉬어지는 고통, 과호흡증후군 증상도 나타났다. 잠깐이 아니라 짧게는 1주 보통 2주가 넘게 이어지는 불편함은 내 삶의 질을 떨어트렸다.

그것은 만성과호흡증후군으로 공황장애로 흘러 13년째 이어졌다. 공황발작도 힘들지만, 오랜 기간 반복되는 과호흡 증후군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그토록 사소해 보이는 말들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신기하며, 동시에 슬펐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건네는 말과 행동에는 언제나 말로 설명되지 않는 무언의 압력이 있다.

그 압력은 반복될수록 며느리의 내면을 갉아먹는다.


그것이 내가 겪은 현실이었다.

가족이라도 거리가 필요하다.

가까움이 곧 사랑의 증거가 아니듯, 거리감이 곧 무정함의 표현도 아니다.


서로의 삶 속에서 각자가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은 숨 쉴 틈을 잃고 언젠가 서로를 향한 애정마저 답답함으로 바뀌게 된다.


내 마음을 병들게 한 대상을 알면서도 탓할 수 없는 자리, 그것이 며느리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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