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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빕 Nov 30. 2024

비자 갱신의 난관, 시험으로 돌파하기

비자 갱신을 위해 성실함을 증명해야 하는 외국인의 고단한 현실




'프랑스 알레르기'


나는 리옹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갑자기 피부병이 생겼다. 자고 일어났더니 팔다리가 붉게 올라오고 간지러워서 병원에 진료를 보러 갔다. 프랑스는 전문의한테 진료를 보기 전에 무조건 일반의(généraliste)한테 먼저 진료를 봐야 했기 때문에 집 근처에 있는 일반의를 찾아갔다. 약을 처방받아서 먹었는데 다음날 문제가 더 커졌다. 몸이 띵띵 붓고 피부 가려움도 더 심해진 것이다. 얼굴이 너무 부어서 거의 풍선 같아 보였다. 밖에 나갈 수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너무 무서웠다. 피부과 전문의는 연락해 보니 가장 빠른 진료 예약이 3개월 남았다고 했다. 일단 일상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엄마가 알레르기 관련 약을 EMS로 보내주어서 겨우 증상이 호전되었다. 오자마자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무엇보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그랬다. 얼마간 어학원을 나가지 못했는데 아무 연락도 없었다. '내가 여기서 죽어도 당장 아무도 모르겠구나.'라는 생각이 극단적으로 휘몰아쳤다. 이런 마음은 나를 더 낙담시키고 의욕을 잃게 만들어 한동안 집에만 머물렀다. 아직도 그때의 증상의 원인은 모른다. 너무 갑자기 환경이 바뀌다 보니 면역력이 떨어진 것으로 추정할 뿐. 그래서 나는 그 병을 '프랑스 알레르기'라고 부른다.


비자 만료의 그림자


그렇게 혼자 만든 울타리 안에서 꿋꿋하게 버티고 있던 중, 큰 문제가 닥쳐왔다. 곧 비자 갱신을 신청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리옹에 올 때, 사립어학원 한 곳만을 5개월 남짓 등록하고 왔다. 그 얘기는 내 학생비자도 그 정도밖에 기간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이걸 알았다면, 두 번째까지 다 등록을 하고 왔을 텐데! 비자는 갱신하는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번거롭기 때문에 무조건 한번 받을 때 최대한 긴 기간을 받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아무리 우울해도 불법체류를 할 수는 없었다. 체류증 갱신에 필요한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일단 어학원에 나가서 사무실에 가서 문의했다. 내 상황을 설명하니 진료를 받은 소견서가 있냐고 물었다. 그 소견서를 받으려고 여기서 그 긴 대기 날짜 기다려서 진료받았으면 아직도 피부가 엉망진창이었을게요. 힘들었던 상황을 공식적으로 증명할 수 없게 된 나는, 완전히 바닥을 찍은 출석률이 찍힌 증명서만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성적은 비자 연장에 문제가 된다. 이후에 어학원 등록도 필수적이지만, 이전 과정을 성실하게 했는가도 비자 연장 가능 여부에 큰 영향을 준다.


돌파구는 델프 시험?


이대로 비자에서 잘려서 한국에 갈 수는 없으니 머리를 굴렸다. 그래, 델프 시험을 보자. 그래도 나름 공부를 했다는 걸 보여주면 받아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델프 시험 신청을 하고 나서는 바빠졌다. 밀린 공부를 해야 했다. 남은 어학원 수업도 착실하게 나갔다. 출석률을 거기서 더 떨어뜨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면 집에 와서 델프 책으로 문법이나 읽기를 연습할만한 것들을 찾아 공부했다. 


심지어 평소에 무시했던 광장의 서명단이랑도 대화했다. 그들은 보통 어떤 자선 단체나 혹은 그런 단체를 표방하며 광장에 나와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사인을 요구하거나 기부를 청한다. 돈을 뜯어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우리는 프랑스어를 전혀 못하는 척 ‘쏘리 쏘리~’ 하거나, 바쁘다고 얼른 발걸음을 옮긴다. 나는 프랑스어로 말할 기회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와 달리 그들을 환영했다. 한참을 얘기를 나누고 ‘근데 나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는 학생이라 돈이 없어'라고 그들의 맥을 잔뜩 빠지게 하고는 돌아섰다. 그러자 내가 그 단체 사람들에게 잡혀있다고 생각했던 프랑스인 할아버지 한 분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저 녀석들이 아주 악질이니까 서명하지 말라고 조심시켜 주었다. 시험 때문에 일부러 얘기하고 있었다고 말하기에는 좀 멋쩍어서 알겠다고 조언 고맙다고 얘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매번 찜찜한 시험의 끝


역시 시험은 이번에도 쉽지 않았다. 다니던 어학원이 B2 레벨까지는 시험을 여는 기관이라 그곳에 등록을 했다. 어학원 선생님들이 감독관을 맡기 때문에, 다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라는 메리트가 있었다. 그래도 마음 같지 않았다. 특히 구술시험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부담이었다. 시험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화장실에 잠깐 들렀는데 같은 시험을 본 한국인 두 명이 ‘이번 시험 겁나 쉽지 않았어?’하며 시험의 후일담을 나누고 있었다. 망했다. 난 어려웠는데… 심란해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2주 정도 후에 결과가 나왔다. 시험을 본 사람들의 수험번호, 시험레벨, 시험 합격 여부가 적힌 결과 리스트가 응시자 모두에게 전체 메일로 날아왔다. 파트별 세부 성적은 제외하고 일단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확인을 할 수 있는 거였다. 그리고 합격자는 사무실에 가서 세부 성적표를 받으면 되는 것이다. 결과를 보니 B2레벨은 시험을 본 모든 사람 중에 나만 붙었다. 그럼 그 화장실에 있던 사람들도 떨어졌다는 거네. 나는 그들이 쉽다고 했던 대화와 말투가 생각나서 좀 웃기면서도, 역시 시험이나 면접은 찜찜하게 끝났을 때 합격한다는 속설이 떠올랐다.


제가 서류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결과적으로 비자 연장은 무사히 끝났다. 다음 어학원 등록증을 통해 1년의 학생 비자가 발급되었다. 제출해야 하는 모든 서류를 꼼꼼하게 챙기고 또 확인해서 무사히 제출했다. 사실 학원 등록증 등 보험에 관련된 문제들이 중간에 있어서, 체류증을 관리하는 경시청과 새로운 어학원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하기는 했지만. 일단 잘 끝났으니 그 과정의 고생은 괜찮다고 넘긴다. 워낙에 한 번에 끝나는 행정들이 없기 때문에 뭐든 목적을 달성한 결과가 되기만 하면 됐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언제는 이랬는데 되고, 다른 때는 같은 상황인데 또 안되고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빨리 끝내고 털어버리는 자세가 정신 건강에 이롭다.


체류증 갱신은 언제나 복불복이다. 혹시나 이 글을 보고, 어학원 대충 다녀도 시험으로 퉁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나는 운 좋게 넘어갔지만, 그렇지 않은 결과를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저번에 누구는 됐다는데?'가 절대 먹히지도 않는다. 도시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처리하는 공무원마다 또 다르다. 그리고 그 시기의 정부의 태도에 따라 또 또 다르다. 서류를 완벽하게 갖췄는데도 그냥 갑자기 비자 발급이 거절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좀 미비해도 얼레벌레 넘어가기도 한다. 늘 이곳에서 내가 외국인으로 지내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들이다. 언제나 변수가 많고 불확실성이 크지만, 결국 우리는 이곳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과정이 쉽지 않더라도, 외국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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