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의 삶, 일상에서 사라져버린 몇 가지
나중에 알고 보니 생테티엔은 프랑스에서 인구 규모로 10위 권의 도시였다. 어쩐지 생테티엔의 사람들은 본인들의 도시를 시골(campagne)이라 칭하면 싫어했다. "Campagne 아니야, 소도시(village)거든?" 이 소리를 한 두 명에게 들은 게 아니다. 하지만 나름 한국의 3위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그곳은 시골이나 다름이 없었다. 내가 출국하기 전 한국에서 사용하던 휴대폰 인터넷은 4G LTE였다. 와이파이는 기호의 4개 선 아래로 내려갈 줄은 몰랐다. 빵빵 터지는 인터넷으로 곱게 키워진 나는 3G도 안 터지는 프랑스의 인터넷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건물에 들어가면 인터넷은 고사하고 전화, 문자조차 안 되는 통신불가 경고가 뜨는 것은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당시의 충격이 한참은 갔다. 와이파이가 되는 공간에서도 어떤 어플은 먹통이었다. 특히 기숙사의 와이파이로는 하필 '카카오톡'이 작동하지 않았다. 한국의 모든 이들과 연락할 수 없었다. 이게 대체 내가 몇 세기 뒤로 간 건지 어질어질했다.
인터넷이 안되면서 강제로 속세와 분리된 상황에 나는 절에 들어간 고시생처럼 공부에 전념했을까? 의외로 프랑스어 학습을 지속하는 데에는 약간의 인터넷이 필요하다. 모르는 단어와 표현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인터넷 불모지의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전자 사전도 종이 사전도 없었다. 그리고 어쨌든 우리는 초등학생 때부터 방과 후 컴퓨터 교실로 다져진 ‘디지털 세대’ 아니던가? 컴퓨터로 뭔가 해야 하는 힐링의 시간이 필요했다. 몇 달이 지나고부터는 어학원이 속해 있는 대학 도서관으로 인터넷이 없는 기숙사 방 안에서 시청할만한 콘텐츠를 다운로드하러 갔다. 어학원이 대학 부설이라 대학에서 학생증을 발급해 주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교내 도서관도 이용이 가능했다. 나와 내 친구들은 주말마다 외장하드 하나씩 들고 가서 열심히 다운로드해 온 영화, 드라마 그리고 애니메이션으로 주중의 심심함을 달랬다.
생테티엔에는 당연히 스타벅스도 없었다. 왜 ‘당연하다’고 표현했냐면 프랑스에는 스타벅스를 보유한 도시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스타벅스가 없다는 건 ‘아이스커피'가 없다는 말과 동일했다. 프랑스의 일반적인 카페에 가서 ‘커피 하나 주세요.’라고 하면 십중팔구 에스프레소가 나온다. 그 팔구가 아닌 나머지 1-2는 ‘에스프레소? 알롱제(룽고)?’ 이렇게 물어볼 것이고. 많은 한국인들이 그러하듯 나도 노트북을 들고 카페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할 일 하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좋아한다. 하지만 생테티엔에서는 그 일상을 잃어버렸다. 당연하게 하던 것을 못하게 되니 몸이야 적응하지만 마음으로는 힘들었다.
그 흔한 대형 아시안 마켓도 없었다. 그런 곳에 한인마트가 있을 리도 만무했다. 중국 슈퍼가 아주 조그맣게 있었는데, 한국 제품은 새우깡, 양파링, 유리병에 든 미심쩍은 김치가 전부였다. 그거라도 사러 초반엔 몇 번 다니긴 했지만 꽤 위험한 곳에 위치해 있어서 점점 발길이 뜸해졌다. 한국 식재료가 없으니 프랑스 식재료로 최대한 한식 맛을 내봤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요리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사람이 뭐 얼마나 맛을 냈겠는가. 한식을 만드는 데에는 밥 짓기부터 시작해서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설거지까지 마치고 들어가면 두 시간은 훌쩍 넘겨있기 일쑤였다. 아니, 간단한 밥 한 끼를 해 먹는 게 너무 효율적이지가 않잖아? 그때부터 원팟 파스타를 해 먹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시기, 파스타에 완전히 질려버려서 그 이후로는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어지간하면 파스타를 잘 먹지 않게 되었다.
처음 장기 비자로 프랑스에 들어오니 ‘오피(OFFI)’라고 하는 장기 체류증을 따로 신청해서 발급받아야 했다. 한국에서 받아온 비자가 있어도 이 증명이 없으면 불법체류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생테티엔이 속해있는 지역(région)의 중심도시인 리옹(Lyon)으로 가서 신청하도록 정해졌다. 리옹은 프랑스에서 세 번째 큰 도시이자, 미리 스포 하자면 나의 두 번째 어학연수지이다. 한 순간에 시골쥐가 되어버린 내가 잠깐이나마 도시의 신문물을 보고 반해버린 좋은 인상이 두 번째 연수지를 고르는 데에 지분이 아예 없었다고 말할 수 없을 거다. 우리는 RER이라는 기차를 타고 40분을 달려 리옹에 도착했다. 도시의 사람들은 때깔도 다른 것 같았다. 해야 하는 서류 신청을 마치고 나서는 며칠 전부터 간절히 기다려왔던 스타벅스에 갔다. 한국에선 잘 마시지도 않던 ‘딸기크림프라푸치노’의 맛은 감격이었다. 음료도 그렇지만 익숙한 공간의 분위기가 주는 안정이 있었다. 그래, 이게 일상에 있어야 했다. 지금도 공부나 할 일에 집중하려고 집 근처 스타벅스에 갈 때마다 가끔 문득문득 그때의 생각이 난다. 그리고 이런 소소한 루틴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날들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