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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Feb 20. 2023

어른

결혼 축하해, 사랑하는 내 친구.



결혼을 정말 축하해. 어제 말한 것처럼 나는 관혼상제 중에 장례식밖에 없겠지만, 너가 올 수 있는 건 나의 장례식밖에 없겠지만…! 이렇게 많은 삶의 부분을 너와 함께해서 행복하다. 결혼을 정말 축하해, 친구야.


누군가와 과거와 미래를 같이 꿈꿀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어. 매일매일 찰싹 붙어살지 않았더라도 너와 나는 꽤나 가깝고 다정한 거리에서 서로를 오래 지켜봐 왔잖아. 이젠 지나간 후회와 상처, 미련과 아픔, 나의 피해와 가해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더라.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어른이 된 것 같기도 해. 우리가 비슷한 시간과 공간을 공유했어서 이렇게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걸까?


이십 대가 너무나 힘들고 버거워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니. 한국에서는 십 대 때 자아 형성을 할 수가 없었잖아. 우린 다들 날 것 그대로의 상태로 대학교에 던져졌던 것 같아. 내가 누군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캠퍼스에 왔었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장소, 새로운 시스템, 새로운 인간관계를 앞에 두고 얼마나 공포에 빠졌던지. 어떻게든 아는 사람을 만들고, 이 도시에 발을 딛고 살려고 아등바등할 때였어. 그때 너를 만나 정말 다행이다. 어쩌면 비슷한 결핍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를 알아봤는지도 모르겠어.


고등학생 시절에는 내가 가장 힘들고 불쌍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었지. 대학생이 되면서 이제는 정말 즐겁고 행복할 줄 알았는데… 이제는 공부를 잘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더 아름다워야 하고, 더 뛰어나야 하고, 모든 것을 잘해야 하고, 사람들 앞에서 빛나야 하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해야 한다’를 스스로에게 주입하고 살아왔는지 생각하면 마음이 슬퍼져. 상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새로운 상처를 입히고, 또 입혔나 봐. 그렇게 나를 미워하고 싫어했던 시절이 있었네.


그럴 때 너가 있어주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나 몰라. 새로운 사람들과 수십 번을 부딪히면서도 마음 놓을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나랑 같이 어디 가볼래?, 나랑 같이 놀러 가자, 그런 말들로 어린 나를 돌봐주어서 정말 고마워. 덮어놓고 내 편을 들어주어서 고마워. 이십 대는 그런 시절인 것 같아. 성인이 되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미성숙한 사람들이 모여서 고군분투하며 성장하는 시기. 아직 성숙하기보다 성장하는 시기. 혼란스러웠던 우리 이십 대에 서로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시간이 이만큼이나 지났잖아. 내가 나를 싫어하고 미워했었다고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을 참으려고 손톱으로 반대쪽 손가락을 쥐어뜯고 있었어. 어쩜 우리는 각자 이렇게 비슷한 고통의 구덩이에 빠져서 발버둥 쳤을까. 그 모든 시간을 뒤로 보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기억도 잘 안 나는 그런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오지 않았을까. 이제 다정하고 따뜻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모두.


이 사람과 함께 있는 순간이 정말로 즐겁다는 말을 들으면서 정말 엉엉 울고 싶었어. 지금도 눈물이 나려고 하네. 외롭고 지쳤던 너에게 좋은 사람이 생겨서 정말 다행이야. 약속한 것처럼 내가 일 년에 4일은 아기를 봐줄게! 앞으로 어쩌면 이렇게 자주 보지 못하겠지만, 마음속으로 너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고, 사랑할게.


너의 행복과 기쁨, 너의 절망과 좌절에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나를 너의 인생에 초대해 주어서 고마워. 가 걸어갈 새로운 앞날에 박수를 보낸다. 사랑하는 내 친구, 결혼 정말 축하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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