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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Jan 16. 2024

잘 지내세요

연애한다고 글을 쓸 시간이 없었는데 이제 다시 생겼습니다

  연애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과정이라는 말을 알겠다. 헤어졌으니까. 헤어짐을 고려해 오는 동안 내가 어떤 사람이고, 상대는 어떤 사람인지를 끝없이 생각했다. 원망의 마음이 솟다가도 또 그이의 기질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사실 별로 화가 안 난다. 이젠 속상하거나 서운하지도 않은 것 같아. 감정의 주가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이제는 잔 파도만 이는 해변에 내린 느낌이다.


  주변에는 건강한 이별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주에 짧은 만남이 어렵겠다고 연락을 받았고. 오늘 저녁에 반차를 쓰고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러 간다. 자잘한 짐정리도 좀 하고. 슬프고 아쉽겠지만 결정을 존중할 수 있는 사이. 내일부터는 모르는 사람, 혹은 그보다 좀 더 어색한 사람이 되겠지요.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 같다. 인연에도 차고 이지러짐이 있나 봐. 사랑과 애정, 미움과 속상함을 주고받다가도 어느새 저 멀리서 서로의 따뜻한 행복만을 빌어줄 수 있게 되는 마음일까. 초등학생 때는 한 학년이 끝나고 새로 반편성을 할 때마다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울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흘러와서, 이제는 어떠한 이별에도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웃음 지을 수 있는 마음이 되나 보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들은 것 같다. 감정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질 수는 있지만, 그것을 자연스럽게 좁히기는 힘들다고. (오은영 선생님이셨던가?) 헤어지고 나서도 친구로 지내고 싶었던 때가 무수히 많았는데, 그때그때 연이 닿음에 감사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바람처럼 손에 잡히지 않아서, 보낼 때도 그저 손가락 사이로 살며시 빠져나가는 것을 바라보면 되겠지. 


  서로의 결핍을 잘 채워줄 수 없었어서 아쉽다. 상대의 결핍을 내가 자연스레 채워주고, 또 그 반대가 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배워가는 과정이고, 앞으로 같은 순간을 반복하지 않으면 되는 거니까. 비슷한 결핍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서로를 애틋해할 수 있어도 완전히 끌어안을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공허를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 자신을 억눌러가면서 그 자리에 날 욱여넣으려고 하지 않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한다. 뻑뻑하게 안 돌아가는 헬스장 락커 같은 것 말고, 윤활유를 칠해놓은 듯 부드럽게 들어가서 찰칵, 사람의 마음에 걸린 잠금쇠를 열 수 있는 그런 순간이 오겠지요.


슬픔은 지나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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