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둘 _기쁘지아니한가

by 언더독

무늬는 대학이지만, 대학은 아니었다. 산업력군 양성소라고 보는 게 맞다. 해양대는 항해사와 기관사를 배출하는 고등교육기관이다. 제복을 입고 해군 제식을 했으며 여러가지 훈련을 받았다. 가혹행위는 덤이었다. 입학과 동시에 내무반 기숙사 근처의 이발소에서 머리를 박박 밀렸다. 대학 생활 첫 1년 내내 체력 훈련을 받았다.


수없는 팔 굽혀 펴기와 피티 체조가 이어졌고, 접대 문화가 중요한 업계답게 강제 음주는 언제나 존재했다. 수업시간을 제외한 시간에는 늘 구보와 체력훈련, 밤에는 선배들의 술시중을 들어야 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수업을 듣다 보면 졸기 일수였는데 그게 보기 싫다는 이유로 교수님 백을 돌아 행보관에게 전달되어 또 다른 기합을 받게 되는, 마술 같은 곳이었다.


2학년에는 해군 특수부대 SSU가 학교로 왔다. 해양훈련이라는 것을 진행했다. 한 여름 뙤약볓에 기수 피티를 한다. 7000회 정도 했던 것 같다. 엠뷸런스는 훈련받는 우리를 따라다녔고, 이따금씩 입에 게거품을 물고 자지러지는 동기들이 있었다. 장거리 바다 맨몸수영, 11M 공중에서 뛰어내리는 이함훈련, 선박 침몰 시 격실을 탈출하는 훈련 등이 이어졌다.


대학 생활 중 실습을 나가기도 한다. 실제 운항 중인 컨테이너선, 유조선, 벌크선 등에 견습사관으로 탑승해 반년 이상을 근무하고 오는 것으로, 대학에서는 이것을 한 학기로 취급한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8개월가량 지구를 2바퀴 돌고 왔다.


고학년이 되자 한국의 한진해운이 파산했다. 다른 업계에도 타격이 컸지만, 해운업계에는 직빵타격이었다. 취업률이 짱짱하던 이 학교에서 마저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졸업생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보다 한 해 위의 선배들 중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던 학생들도 두세 단계 아래의 회사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들어가야 했다.


또다시 목숨을 걸고 공부했다. 밀리면 답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방학을 맞아 간간이 돌아갔던 집은 여전히 개판이었다. 아버지는 전혀 소득이 없었으며, 외도를 일삼기도 하였다. 대학 방학에는 공사판을 다녔는데, 헤어진 작업복을 입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내 앞으로 조수석에 왠 엉뚱한 여편네를 태운채 날 못 본 척 지나갔던 아버지의 차를 보았던 분노의 기억이 있다.


벼랑 끝에 매달린 기분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극한의 퍼포먼스를 내었다. 하늘은 미천한 나를 구제해 주었고, 졸업과 동시에 컨테이너선을 운항하는 중견기업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입사하게 된다.


다행스러웠다 뿐이지 그렇게 기쁘지만은 않았다. 나는 바다로 나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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