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바다로 나갔다. 돈을 벌기 위해.
고등학생 때 가난을 경험했다. 그때부터 성공과 부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그 무렵부터 돈에 대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돈의 역사와 정치 체계, 자산의 종류와 부자들의 일대기를 탐독했다. 투자 서적을 읽었다.
항해사의 직급을 가지고 첫 배에 승선했다. 벌어 들이는 돈은 대부분 펀드 투자 계좌로 흘러들어 갔다. 바다로 나가면 인터넷이 안되기에 직접 투자는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목숨값이 들어있던 돈이었다. 또래보다 많은 돈을 받았지만, 한 푼도 새어나가지 못하게 했다. 그 시작점이 23살 겨울이었다.
그곳은 총성 없는 전쟁터였다. 길이 약 300M, 폭 50M 정도 되는 철갑 덩어리의 배를 몰았다. 항해사는 선박을 운전하는 것 말고도, 화물 작업을 감독해야 하는 업무가 있다. 항구에 도착하면 선박을 항만 크레인과 평행되게 주차시키는 작업을 '접안'이라고 하는데, 이때 선박 앞 뒤에서 굵다란 홋줄을 컨트롤하는 일도 한다. 이 두 가지는 갑판에서 중장비로 벌이는 일들이기에 상당히 위험하다. (주로 이 작업 중 사람들이 사망한다.)
무언가 사고가 벌어지면 최소 중상이며, 현장에서 사망하게 된다. 운이 좋아 생명은 붙어있더라도 육지에서 먼 대양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며칠 몇 주간 병원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앓다가 사망할 확률이 높다. 선박에는 중학교 양호실 정도의 간단한 의무시설만 있을 뿐이다.
태풍이나 헤일 또는 암초를 만나면 선박이 아예 침몰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큰 선박이지만 근무하는 인원은 한국인 사관 8명 남짓에 열댓 명의 외국인 선원이 전부다. 본사에서 위성메일을 통해 전달되는 업무들은 미어터지며 소수의 작업자들이 이를 일정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한다. 강도가 상당하다. 강도가 상당하고 사람이 부족하면 안 위험할 일도 위험해지는 법이다.
커다란 컨테이너에 깔릴 뻔한 적도 있었으며, 인도양 한가운데서 갑판 밖으로 추락할 뻔한 적도 있었다. 커다란 폭풍을 만나 며칠간 황천항해를 겪은 적이 있었다. 해적 출몰 지역에서 해적에게 쫓긴 적이 있었다. 내가 탔던 선박의 항로는 주로 위험한 제3세계를 다녔기에, 외국 항구에서도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곤 했었다.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을 무렵, 그 부근을 들어가면 선박에는 수색이 진행되었다. AK 47 자동 소총과 산탄총으로 무장한 군바리들이 내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코로나를 강하게 다루던 때, 중국에서는 체온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커다란 권총을 찬 중국 공안들이 나를 포함한 선원들을 체포해가려고 했었다. 그런 일들도 있었다.(여름에 갑판에서 작업했는데 체온이 낮을 리가 있나.)
한번 승선하면 7개월에서 10개월 간의 항해가 이어졌다. 수면부족과 신경쇠약은 늘 달고 다니던 증상이었다. 누군들 그런 고립된 환경에 장기간 노출되게 되면 정신병자가 되는 법이다. 내 심신은 서서히 무너져갔다.
우리에게는 국가 기간산업에서 3년간 의무 근무한다는 조건으로, 해군에서 특례 전역을 시켜주는 제도가 적용되었다. 따라서, 복무 기간을 채우기 전에는 여기서 나갈 수 없었다. 아무리 위험하더라도,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아무리 부조리하더라도 음악이 끝날 때까지 춤을 춰야만 했다.
스물일곱이 되던 해 1월, 나는 한국에 살아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