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여덟 _결실

by 언더독

자산은 목표했던대로 쌓여 있었다.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왔다. 항해사로 근무하던 때에도 꿀렁거리는 선박에서 투자공부를 꾸준히 했다. 펀드를 정리하고 직접 투자에 돌입했다. 해운대의 마리나 요트 경기장에서 요트를 운항하는 일을 시작했다.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이젠 어느정도 힘을 가지고 본가 상태를 살폈다. 집안 꼬라지는 똑같았다. 수술을 할 차례였다. 여전히 아버지는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변호사와 함께 민사소송을 준비했다. 가장이 집안 경제에 책임을 전혀 하고 있지 아니한 점, 폭력적인 행동을 일삼았던 점, 외도를 했던 점 등등 자료를 은밀히 수집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고, 어머니를 통해 선전포고를 했다. 모든 법적 제반비용은 내가 대기로 했으며, 곧 민사 소송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내용을 전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어머니와 연락이 두절되었다.


2주정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날 연락이 되었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용서하고 마지막 기회를 줘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는 길길이 날뛰었다. 어머니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내 아버지를 완전히 도려낸 뒤 어머니와 동생을 챙겨서 건실한 삶을 개척하고자 했다. 잃어버린 10년이었기 때문이다.


소송의 원고 당사자가 의지가 없다는데 제 3자인 내가 날뛴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지켜보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었다. 나는 이 가정의 수호자로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가며 아버지는 일자리를 구하셨고, 어머니에게 잘 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뒤, 전반적인 상황이 아주 좋아졌다. 회사 대표님의 배려로 어머니와 동생은 내가 모는 요트에 타시게 되었고, 어머니는 그날 내게 옛날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 하셨다. 요트에는 어머니가 튼 가수 임영웅의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많이 피게 되었다. 집안에는 질서가 잡혔다. 동생은 이제 고등학생이 되어 자기가 만들고자 하는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부부 사이도 많이 나아졌다. 나는 장남으로서 내 역할을 다했다.


이정도했으면 내 인생을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근로노동자가 되기보다는 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장 처음 시작한 것이 글쓰기였다. 본격적으로 작가활동을 하기 위해 부산 생활을 정리하고 상경했다.


내 나이 스물 아홉 1월에 생애 첫 서울 시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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