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미국 대공황 시기의 갱스터이다. 실존 인물이다. '딜린저 갱'의 우두머리였다. 당시 가장 저명한 무법자였다고 한다.
은행 34개, 경찰서 4개를 턴 전적이 있다. 많은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다.
'존 딜린저'는 미국의 '로빈 후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사람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퍼블릭 에너미'를 보면, 당시 이 인물에 대한 사회의 분위기를 얼추 파악할 수 있다.
당시는 미국 경제가 극심히 어려운 시대였다.
'존 딜린저'는 일반 서민들을 강탈하지는 않았다. 은행 또는 경찰서 등의 기관들만을 대상으로 범죄행각을 했다. 당시 미국인들의 심리는, 정부를 못 미더워했었고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악명 높은 '존 딜린저'임에도, 대중에게 영웅 대접을 받았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이용해 영리한 처세술을 하기도 했는데, 수갑 차고 감옥 가는 와중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경찰을 적으로 돌리면 살 수 있지만, 대중을 적으로 돌리면 살 수 없다."
그의 스타성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하나 더 있다. 자신을 기소한 검사의 어깨에 손을 걸치는 배짱을 부린 사진이다.
'존 딜린저'는 3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극장에서 나오던 그를 FBI 요원들이 사살한다.
여담으로, 우리가 잘 아는 'FBI'는 '존 딜린저' 때문에 생겨났다. 원래는 'BOI'라고 불리던 검찰국이 개편된 것이 연방수사국, 'FBI'이다. '존 딜린저'가 워낙 다른 주들을 넘나들며 도망쳤던 탓에, 수사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주를 연합하여 권한을 인정받게 된 FBI가 탄생했다.
그가 사살되기 직전, 극장에서 감상했던 영화는 '맨해튼 멜로드라마'라는 흑백영화였다.
그 영화에는 사형수가 나온다.
극 중, 그 사형수가 사형을 당하러 가는 길에 내뱉는 대사가 있다.
Die the way you lived, all of a sudden. That's a way to go.
살던 대로 살다가 갑자기 죽는 거야. 그냥 그렇게 죽는다고.
Don't drag it out.
구질구질하게 굴지 마.
Living like that doesn't mean a thing.
그렇게 사는 건 아무 의미 없는 거야.
범죄자를 추켜세우는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맨하탄 멜로드라마'에 나온, 사형수의 대사에 감명을 받아서 이번 글을 쓰고 있다.
지금 시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유복한 시대이다. 경제 중하위에 머무는 삶이라 할지라도, 과거 시대에 비해볼 때 그러한 시기임이 맞다.
나는 클래식을 좋아한다. 장르가 무엇이 되었든, 고전을 좋아한다. 영화, 음악, 소설, 미술, 철학 등에서도 그러한 것들을 좋아한다. 이유는 그 내용에 있어서 또는 그 표현에 있어서 인간의 가장 궁극적인 재료들을 화자 저마다의 관점으로 서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리에 가깝기 때문이며, 정수에 가깝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되었지는 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이 시대를 사는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고전적 마초성이 결여되어 있다.
인간이라는 종족은 원래 근본이 '개척자'였다. 보장되지 않는 안전과 무수한 위험 속에 뛰어들어 삶의 터전을 일궈내는 게, 인간이 하는 일이었다.
풀숲을 헤쳐나가다 독 있는 가시덩굴 밟고 죽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호랑이가 뛰어들어 먹힐 수도 있는 것이었다. 풍토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었다. 다른 부족의 습격으로 무리 전체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별 오만가지로 생명을 빼앗길 수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했다는 것이다. 가다가, 하다가, 죽으면 죽어야지 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클래식 마초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클래식 마초성을 가진 주도적인 모험을 통해, 인간은 자신이 살아있는 존재임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그러한 마초성이 낭만적이라고 느껴질 만큼의 밋밋한 일상들이 보인다.
퇴근길 대중교통 안을 보면, 대부분 유튜브 쇼츠를 본다. 쿠팡 쇼핑을 한다. 폰 게임을 한다. 인스타그램을 본다. 소수의 사람을 빼고는 집에 가서 밥 먹고 또 그런 거 하다 잔다. 그냥 다음날 다시 출근할 것이다. 주말 오면, 주말 온다고 좋아하고. 여자친구 생기면, 여자친구 생겼다고 좋아하고. 헤어지면 헤어졌다고 괴로워하고.
나는 평생을 그러한 쳇바퀴를 살다 허무하게 죽는 것에 저항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나는 평생을 그러한 쳇바퀴를 살다 소모되어 죽는 것에 저항하기 위해 주식 투자에 적극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나는 평생을 그러한 쳇바퀴를 살다 세상에 획 한자 긋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에 저항하기 위해 사업다운 사업을 해보려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이다.
고작 30년 남짓 짧은 삶을 살다 간, 극악무도한 살인자 따위도 세상에 저런 임팩트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