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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행복

✒️ 2025.11.07. 라라크루 금요문장

by 안희정

1. 오늘의 문장

오늘의 행복이 지금까지의 평균치로 결정되는 건 아니다.

어제까지 계속 마이너스 였더라도 오늘 즐거운 일이 있고

웃을 수 있다면 행복의 총 수치가 플러스인 것처럼 느껴진다.

평균의 지배를 받지 않은 것 그게 행복의 미덕이다.

<아웃렛> 송광용



2. 나의 문장 나의 삶

“엄마, 나도 몸이 좀 이상해.”

이번 주 딸이 다니는 학교가 독감으로 비상에 걸렸다. 그 소식을 알고 있었기에, 금요일 저녁 아이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체온계부터 찾았다. 열을 확인해 보니 정상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열은 없으니 좀 더 지켜보자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출근 전, 아이의 이마를 만졌는데 순식간에 손끝으로 열기가 전달되었다. 체온계로 다시 재보니 역시나 고열이었다. 남편에게 상황을 알리고 출근했다. 하필이면 남편도 치과 진료를 예약한 날이었다. 남편과 내가 집을 비운 사이 혼자 누워있을 아이를 생각하니 일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지난 주말에는 내가 몸살로 끙끙 앓았는데, 이번에는 아이가 아프다니. 요즘은 어째 주말마다 앓는 소리로 보내는 듯하다. 퇴근 후 서둘러 근처 소아청소년과에 가서 진료 접수부터 했다. 대기 번호는 71번.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환절기 주말, 병원에서 진료받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요즘에는 실시간 대기 순서를 알려주는 앱이 있다. 덕분에 병원에서 마냥 기다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 오니 남편은 치과 치료 후 후유증으로 방에 누워있고, 아이는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 아이의 이마 위에는 젖은 수건이, 곁에는 물이 담긴 대야가 보였다. 남편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었다. 일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몸은 여전히 열로 후끈거렸다.


집에 있는 해열제를 먹이려다가 의사를 만나면 바로 검사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2시간쯤 지나자 대기 번호가 20번이 되었다. 서둘러 나갈 채비를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는 독감일 가능성이 있지만, 증상이 시작된 지 최소 12시간은 지나야 독감 검사를 정확히 할 수 있다고, 일단 약을 먹이며 지켜보자고 말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이에게 약부터 먹였다. 30분쯤 지나자 아이의 열이 서서히 내려갔다. 저녁 무렵에는 완전히 기운을 차렸다. 딸은 얼굴에 생기를 되찾고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기쁜 마음으로 얼른 밥상을 차렸다.

오늘 아침, 아이의 상태는 한결 좋아졌다. 나는 참치 죽을 끓여 아이와 남편에게 부지런히 날랐다. 약 먹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는 모습조차 반가웠다. 이만하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프면 내 일상은 그대로 정지 화면이 된다. 어제 있었던 일도, 오늘의 계획도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온 신경이 바싹 곤두서서 오직 아이에게만 쏠린다. 작은 기침 소리에도 심장이 죄이듯 괴롭다. 아이의 상태가 좋아지자 내내 긴장했던 마음도 아까 만든 죽처럼 하물하물 풀어졌다.


사실 힘든 한 주를 보냈다. 며칠 전 직장에서 자존감을 끌어내리는 말을 한 움큼이나 들었다. 화나고, 억울하고, 속상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아이가 나으니 그 모든 일들이 사소한 먼지처럼 작아졌다. 나를 조금도 흔들 수 없는 그런 하찮고 가벼운 일들 되어버린 것이다. 나를 향해 공격의 언어를 던진 이는 내게 큰 타격을 입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가시 돋친 몇 마디 말에 무너질 만큼 내 인생은 허약하지 않다. 내가 가진 행복이 더 단단하기에.


결국 무엇이 중요하리란 말처럼. 힘든 날, 감당하기 버거운 날이 무수히 많이 찾아온다고 해도 그런 건 단지 스쳐 지나가는 순간일 뿐이다.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랑하는 가족의 평안이다. 우리 가족이 웃을 수 있다면 나머지는 모두 견딜 수 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내 인생.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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