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665번지
업무상 대전의 서점에 전화를 걸 때면
나는 언제나 계룡문고부터 찾았다.
대전에서 살아남은 향토 서점이라는 이유만으로
늘 반갑고, 궁금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결국 폐업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허전함은 오래 이어졌다.
성심당처럼 굳건하게 버텨주길 바랐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던 모양이다.
없어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 중
가장 진한 것은 ‘신촌’이라 불리던 동네다.
공식 지명도, 지도에 표시된 이름도 아니었지만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통하는 이름이었다.
동네 초입에 살면 누구든 ‘신촌 누구네’라 불렸고,
안쪽 동네는 문자 그대로 ‘안동네’였다.
그 신촌에서 아버지는
붉은 슬라브 지붕이 얹힌 회색 시멘트집에
사십 년을 살았다.
안채에는 총 세 개의 방이 있었는데,
방 두 개는 우리 가족이 쓰고
나머지 한 방은 월세를 놓아
농사만으로 부족한 수입을 메웠다.
세를 준 것은 안채의 방 하나만이 아니었다.
방 두 칸과 부엌이 딸린 별채에도 세입자를 들였다.
엄마는 그 살림을 암팡지게 꾸려나갔다.
별채에는 십여 년을 조가네가 살다 갔고,
그 뒤로 방가네가 6년 넘게 살았다.
그들이 떠난 뒤, 별채를 부수고 안채를 넓혔다.
복숭아나무가 무성해져 과수원 규모가 커지자
안채에 내어주던 방 하나도 우리 차지가 되었다.
그제야 온전히 윤씨 가족만의 집이 되었다.
여름이면 대문에는
주황빛 능소화 덩굴이 흐드러졌다.
꽃 끝의 달큰한 꿀을 빨아먹다
“배탈 난다”는 엄마의 성화에
몰래 하나 더 따서 손에 숨기곤 했다.
마당에서 송아지가 태어나는 모습을
처음 본 날도 또렷하다.
미끄덩한 몸을 일으키려 애쓰던 송아지의
엉거주춤 떨리던 다리.
팔꿈치와 손가락 사이에 난 사마귀를
마당에서 기른 보라색 가지로 문질러
없애주던 엄마의 손길.
봄이면 꽃잔디가 마당을 덮었고,
겨울이면 창 너머 눈 덮인 마당을 보며
밤새 책을 읽었다.
반세기 넘게 사람이 살던 그 집은
아파트가 들어서며 사라졌다.
능소화 덩굴과 송아지 울음,
꽃잔디와 눈 내린 밤.
그 모든 것은 사라졌지만,
내 기억 속 신촌 665번지의 마당은
아직 그 자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