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이 되니 역시 여기저기 한글에 대한 자랑, 자부심, 우리말 사랑, 한글 사용자의 글로벌 확산 등에 대한 기사와 글이 넘쳐난다. 이 날만이라도 한글을 주목하니 감사하고 환영할만하다. 올해는 어떤 소식이 한글날의 언론매체를 뒤덮을까 보았더니 한 매체에서 요즘 아이들의 문해력에 대한 문제를 다룬 보도가 눈에 띄었다. 두발 자유화가 두 다리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한다는 거냐고 되물었다는 학생, 심심한 사과라는 말에서는 사과가 맛있지 왜 심심하냐라고 따지는 학생들이 있었다고 한다. 시발점을 얘기하니 왜 선생님이 욕을 하냐고 되묻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디지털교과서가 보급되는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의 문해력 저하에 우려감을 느끼는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보여주는 보도였다. 결론은 요즘 학생들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과거보다 떨어졌다는 얘기였다. SNS 사용이 늘어나며 디지털기계를 활용한 일상생활과 교육이 진행되면서 요즘 아이들의 어휘력, 문해력 등은 예전만큼 높지 않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바이다. 교육현장, 아이들을 마주하는 사업현장에서 체감하고 있는 문제상황이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손으로 잘 쓰지 않고 눈으로 보면서 짧은 영상 중심의 정보들만 집중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일상이 된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이전 세대만큼의 문해력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의 문해력이 문제인 것은 맞지만, 이게 그냥 아이들의 문제일까? 그리고 아이들만의 문제일까? 한자를 의무적으로 배우지 않으니 아이들이 한자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모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다시 한문을 의무적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냥 진심 어린 사과라고 표현하면 될 것을 굳이 심심한 사과라고 표현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는지 다르게 생각해 수도 있겠다. 머리카락 혹은 머리숱이라고 얘기해도 되는데 두발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아이들의 문해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심한 걱정을 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일까? 우리 사회가 좀 더 깊이 생각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이걸 고급진 표현으로 숙의라고 한다지 아마.
해파랑이라는 단어의 뜻은 어른 세대가 잘 알고 쓰고 있는가? 가온누리라는 단어의 뜻은 우리 세대, 지금 사회가 잘 알고 쓰고 있는가? 고운 한글표현이라고 하지만, 정작 어른들, 현실 사회에서 잘 쓰지 않는다. 저런 우리말을 모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문해력이 딸린다는 얘기를 하지는 않는다. 언어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잘 활용해서 써야 한다. 어른들이 고급지다고 생각하며 각종 한자어와 영어 등의 표현을 쓰면서 정작 우리 아이들이 그걸 이해 못 한다고 그들의 문해력을 걱정하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디지털세대에 맞게 복잡하지 않은 표현과 어휘, 혹은 간단히 줄인 말을 사용하는 아이들의 언어를 우리 어른들은 얼마나 존중해 주고 이해해 주며 바른 언어생활로 이끌어 주고 있는지 고민을 같이 해보면 좋겠다. 아이들의 문해력이 떨어지니 걱정하고 문제점을 정확히 되짚어서 해결책을 찾는 것은 분명 필요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강압적인 교육방식이나 의무수강 과목들이 학생들에게 강요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어른들의 말과 생각은 옳은 게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의 말과 생각이 틀린 건 아니다. 조심히 접근해야 할 것이다.
과거 공문서를 한글화 한다면서 행정관서의 공문 내 여러 표현을 한글로 바꾸기 위해 사회 각계가 노력한 기억이 난다. 한창 행정부서에서 일할 때에 이에 부합한다며 여러 한자어 중심의 표현을 한글로 바꿔 양식을 만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요즘 공공기관에서 발송되는 문서나 직장 내 문서에서 다시 한자표현이 눈에 많이 띄기 시작했다. 영어 중심의 외래어는 더욱 많아졌다. 정부의 보도자료를 보면 이해가 안 되는 외래어 투성일 경우가 있다. 어떤 교육에 갔는데 사회자가 '작일엔 이러이러했고 금일 중식, 석식은 이러이러합니다 '라는 말을 하고 그런 표현이 적힌 문서를 보여주었다. 나중에 그 직원한테 어제, 오늘, 점심/저녁식사라는 표현을 쓰지 왜 저런 표현을 썼냐고 물었더니 '표현이 멋있지 않나요?'라고 했다. 아무래도 한자를 의무적으로 배운 세대가 아니니 한자어가 새롭고 멋있어 보인 모양이었다. 물론 한자문화권의 나라에서 한자어가 우리말이 아니라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오늘, 어제 같은 쓰기 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단어를 놔두고 굳이 작일, 금일이라고 표현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금일이 금요일인 줄 알았다는 학생들에게 너희들의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일방적으로 치부해선 안된다는 말이다. '00베일리센트럴파크리움캐슬' 등 요런 아파트단지 이름이 멋지다고 사용하면서 상대방에게 이 이름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 하니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할 순 없는 일이다.
어른이 되면, 혹은 공부를 많이 하면, 전문인이 되면, 일반적으로 외래어를 많이 쓴다. 아무래도 최신기술과 정보가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이나 넓은 인구와 영토를 가진 나라에서 넘어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경향이 조금씩 사회에 반영되다가 문화가 되기도 한다. 이제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하는 장소는 '00 센터'라고 명명하는 게 일반화됐고 운동장 혹은 체력단련장은 잘 쓰지 않는 단어가 되어 버렸다. 헬스장이라는 표현은 사라졌고 짐, 스포츠클럽, 피지컬센터 등의 단어가 멋져 보이는지 일반화되었다. 좀 산다는 지역의 비싼 아파트는 이해도 잘 안 되는 국적불명의 멋진 단어들을 모아 붙여놓는다. 길거리에 나가면 대부분의 간판이 외래어 투성이인 우리나라이다. 어른들이 무분별하게 외래어를 사용하고 이게 멋져 보인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이걸 이해 못 하고 알아듣지 못한다며 일방적으로 문제로만 몰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심심한 사과는 이런 뜻인데 앞으로는 우리 진심 어린 사과라고 얘기해 보자', '시발점은 이런 뜻인데 앞으로 우리는 시작점이라고 표현해 보는 것은 어떨까?'라고 서로 웃으며 얘기해 보면 아이들도 신나 하지 않을까? 문제를 문제로 보면 보면 문제지만 문제를 답으로 보면 해결책이 보이기도 한다.
아이들의 떨어진 문해력을 걱정하기 전에, 나는 과연 아이들의 언어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어른들은 '희연사', '아차찹쌀떡'의 표현을 알고는 있나? 쿠웨액, 비활탄자, 잼예 등의 신조어는 이해하고 있을까? 요즘 아이들은 나와 내 동년배 세대를 보며 문해력이 떨어지고 어휘력이 형편없다며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것은 아닐까? 세종대왕이 만든 과학적인 한글로 자기들은 이것저것 신조어도 만들어서 효율적으로 쓰고 짧은 영상에 잘 활용도 하고 있는데, 어른 세대는 한자어와 영어를 써가면서 아무도 보지 않을 길고 긴 글이나 쓰고 있다며 우리 아이들이 오히려 어른들을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