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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는 소 May 07. 2024

모두가 어린이날을 응원해

우리 아이들을 응원합니다!

얼마 전 모임에서 다양한 사회분야의 활동가들을 만났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아이들과 관련한 이야기가 오가던 중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한 말씀하셨다. 


"이제 우리나라 아이들은 세계 선진국답게 잘 살고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 아동들의 권리가 선진국에 비해 낮지 않다. 예전처럼 학교에서 몽둥이로 맞길 하나 총을 들고 제식훈련을 하길 하나? 지금 우리나라에 굶어 죽는 아이들이 있나? 조금만 맞거나 어려움이 있으면 부모와 교사를 고발하고 고소하는 아이들이 사회에 많아졌다. 깜짝 놀랄 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이 촉법소년이라며 경미한 처벌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자꾸 아이들 권리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제는 우리 아이들의 권리보다는 그 책임과 처벌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책임의식을 높이고 잘못된 행위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논의가 더 필요한 시대이다"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100%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다 맞는 말씀도 아니다. 지금의 우리나라 아이들이 정말 행복할까? 아동권리가 100% 보장받고 있을까? 지금 아이들이 교련이라는 단어를 알기는 알까? 학교와 가정에서 몽둥이로 맞지 않으니 아동권리가 향상되었다는 명제가 수립이 될 수 있을까?


권리와 의무, 자유와 책임, 개인과 사회, 존엄과 배려 등의 단어는 항상 같이 붙어 다닌다. 아니, 항상 붙어 다녀야만 한다. 하나만 강조되어선 곤란하다. 각 단어 자체로 아름답고 이상적일 것 같지만 혼자선 속으로 곪아갈 수 있다. 아이들의 권리를 주장함에 있어서 책임과 그 연령대에서 담당해야 할 의무에 대해서도 소홀히 하면 안 될 것이다. 


다만, 아이들의 권리와 권리인식을 위한 제반 활동에 대해 얘기할 때, 소수의 사례행위와 일탈행동으로 인해 제약과 처벌을 먼저 얘기하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 현실에서 성급한 부분이 있다. 과연 우리나라 아이들이 선진국답게 "잘" 살고 있는가? 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제는 어른들한테 몽둥이로 맞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권리가 잘 보장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의문에 우리나라 국민 중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권리, 인권이라는 것은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와 가치를 갖고 태어난다. 인종, 사상, 종교, 장소 등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이다. 또한 이 권리는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가족과 사회에서 상호존중의 사실에 기반한다. 무인도에 떨어진 로빈슨크루소에게는 인격체로서 스스로의 자아는 있지만, 상호인지활동할 상대방이 없으니 자신에게 권리는 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무인도에선 아무 옷도 걸치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지만 구조되어선 옷을 입어야 한다. 무인도에서도 권리는 갖고 있었고 구조되어 타인과 같이 살아 나가야 할 때부터는 자신의 권리를 남한테 주장함과 동시에 타인의 권리에 대해서도 존중해줘야 하는 것이다. 


이제 굶어 죽는 아이들이 없기 때문에 권리가 신장되었다는 얘기는 세계 10위 권의 경제대국에서 논할 주제는 아니다. 먹고 살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기본 권리는 확보되었겠지만 이제 제대로 먹고 있는가에 대한 상대적 권리가 중요해졌다. 굶어 죽는 아이들 통계보다는 매끼 굶거나  영양분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통계를 들여다봐야 한다. 선진국답게 아이들의 권리지수가 높다는데 왜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 상위권인지 들여다봐야 한다. 전 국민 의무교육의 높은 수치를 얘기하기 전에 왜 학교밖 청소년의 숫자가 매년 늘고 있는지 꼼꼼히 점검해봐야 한다. 한민족의 높은 교육열을 자랑하기 전에 왜 아이들이 밤 10시까지 강제로 학원뺑뺑이를 돌 수밖에 없는지 파악해야 한다. 과거를 보면서 아이들의 권리를 이야기하면 우리나라 아이들의 권리가 높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타 선진국들과 비교하거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보면 우리나라 아이들의 권리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깜짝 놀랄 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이 많을까? 학대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많을까?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촉법소년 범죄건수는 2018년 7,364건에서 2022년 1만 6,435건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2018년과 2022년만 보면 2배 이상 늘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6,058건이던 아동학대 판단건수는 2022년 3만 7,605건으로 지난 10년 동안 6배 늘었음을 알 수 있다. 단순 수치만의 비교로도 범죄를 저지르는 아동보다 범죄피해를 받는 아동의 수가 월등히 많다.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 범죄(아동학대)의 증가율도 더욱 높다. 


2022년 아동학대 전체 신고건수는 46,103건이었다. 스쿨존에서 여전히 연간 4~500건의 어린이 교통사고가 나고 있다고 한다. 촉법소년들의 처벌 강화를 논하기 전에 음주운전과 과속을 일삼는 성인들의 처벌강화를 더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 아이들의 권리도 제대로 보장을 해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일부 심각한 아동범죄의 사례를 근거로 아이들의 책임을 먼저 강요하는 것은 그리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범죄가 왜 증가하는지 이유를 분석하고 예방책을 세움과 동시에 어른들로부터 학대받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잘 양육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이 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아이들의 권리를 증진시키고 보호하면서 더욱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과 제도를 만들어줘도 모자랄 판에 아이들한테 처벌과 책임의식부터 먼저 강요하는 건 순서가 잘못되었다.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더욱 많은 관심과 어른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올해는 어린이날이 102주년 되는 해란다. 과거 전쟁을 겪은 세대보다야, 보릿고개가 있던 시기보다야 우리 아이들의 권리가 한껏 신장되었다는 것엔 이견이 없다. 청소년 범죄의 심각성이 높아지고 있음에 다 같이 우려하며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도 옳다. 다만, 아직 우리나라 아이들 권리의 수준과 보장을 위해서는 사회적 숙의와 제도적 마련이 계속 강화되어야 한다.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잘못된 행위에 대해 처벌과 규제를 강요하기보다는 마음껏 놀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면 좋겠다. 아이들때부터 행복하고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 이 사회를 더욱 아름답고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어른들이 먼저 생각을 바꾸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권리가 존중받고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과 응원이 가는 사회를 꿈꾸며!

우리 아이들과 102회 어린이날을 응원하며! 

모두가 우리 아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마음껏 응원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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