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여행기 2 - 어머니, 아이와 함께 해외여행하기

by 구르는 소

2006년 아내와 둘이 간 유럽여행에서 둘째가 생겼다. 영국 일정에서 아내가 감기기운이 있어 감기약을 먹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임신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아이는 지금껏 잘 크고 있는데, 그때 감기약을 먹은 것에 대해 우리 부부는 아직도 둘째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다. 쿨한 성격의 둘째는 엄마가 감기약 먹고 괜찮아져서 여행 잘 다녔으면 됐다며 자기는 영국산이냐 체코산이냐며 가끔 농담을 한다. 잘 키운 딸아이 열아들 안 부럽다고 하던가. 어쨌든 잘 커줘서 고맙다.


아내와 단 둘이 갔던 유럽여행에서, 아이와 함께하는 해외여행에 꽂힌 나는 가까운 태국을 가족여행지로 정했다. 같이 살며 거의 무료로 아이들을 돌봐주시던 어머니한테 감사의 표시도 할 겸, 어머니와 함께 온 가족이 해외여행에 도전해보기로 한 것이다. 너무 어린아이가 비행기를 타도 괜찮을지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비용, 일정, 여행경로 등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무모했지만 젊었으니까 가능했으리라. 결국 남은 건 여행에 대한 자신감과 영아를 데리고 다니는 여행경험, 가족들과의 추억, 그리고 약간의 빚이었다.


<내가 알게 된 Tip>


1.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장시간 비행은 다소 무리. 아이가 투정이라도 부리면 주변 사람들은 곤혹스럽다. 비행시간 2~3시간 정도의 근거리로 시작해 아이들이 크면서 점차 비행거리를 늘려가는 게 좋다.


2.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중간기착지에서 1~2일 여행을 하는 것도 좋다. 체험해 볼 수 있는 것들도 풍부해지고 가족들의 피곤함도 덜 수 있다. 우리 가족은 비행티켓을 끊을 때 항상 stop over 프로그램을 이용해 중간기착지를 둘러보면서 여행 시작을 하고, 마음에 들면 아예 다음 기회에 경유지를 장시간 여행으로 방문하는 것으로 활용하였다.


3. 어머니와 아이들의 시계는 반대로 간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어머니는 비행시간이 길어도 견디셨지만, 아이들이 커서 긴 비행시간을 감내할 수 있을 때, 어머니는 비행시간을 힘들어하셨다. 아이들은 10대 후반부터 잘 안 따라다니려고 하고 어머니는 70대 초반부터 해외여행 동반을 힘들어한다. 3대가 모두 만족하면서 같이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태어난 지 5개월 정도 지난 둘째 아이를 데리고 나간 해외여행은 많은 것을 일깨워줬다. 아이들도 힘들고 부모도 힘들다는 아주 기본적인 가르침을 배웠고, 그렇지만 체력이 뒷받침될 때 아이와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아이가 1명일 때는 괜찮지만 아이가 2명 혹은 3명일 때는 돌보는 손길이 부지런하고 활동적이어야 한다. 여행동안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제일 중요한 요소니 한 살이라도 부모가 젊을 때 아이와 여행을 같이 하는 게 마음 편히 몸도 편한 길이다.


같이 여행길을 나선 어머니의 체력과 입맛도 매우 중요하다. 최대한 손자와 손녀의 컨디션에 여행을 맞추지만, 여행 주관자인 아들은 어머니의 컨디션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3대가 여행을 함께하려면 숙소와 이동동선, 볼거리와 먹거리를 다각도로 고려해서 여행준비를 해야 함을 배웠다.

바자회에서 1만 원 주고 산 휴대용 접이식 어부바가방 / 가볍고 튼튼한 제품을 찾아야 한다.


2년 미만의 영아를 데리고 다니면 공항에서부터 항공기, 숙소, 길거리 등 여행지에서 귀빈대접을 받는다는 것도 배웠다. 한국에선 유모차를 끌고 다니더라도 배려를 많이 받지는 못했는데, 2007년의 홍콩과 태국에선 너무 많은 배려를 받아서 선진국으로 진입한다던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기도 했다.


아내는 갓난아기인 둘째를 슬링(우리나라 아이포대기 같은 천)에 넣거나 메고 다녔는데 대중교통에선 항상 자리를 양보받았다. 관광지에서 배를 탈 때도 제일 마지막에 태우고 제일 좋은 자리에 앉게 해 주었다. 당연히 내릴 때는 제일 처음이었다. 계단에서는 첫째 아이를 목에 올리고 있던 아빠를 한번 쳐다보더니 다들 흔쾌히 아내의 유모차를 들어주었다. 홍콩과 태국공항, 관광지에서 긴 대기줄에 서있는데, 갑자기 저 앞의 사람이 오라는 손짓을 해서 가보니 아이가 몇 살이냐고 묻더니 바로 처리해 준다. 다들 이런 걸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여행지에서 유모차는 권력이구나!


아내의 슬링(아기포대기의 일종)은 아이를 안거나 업을 때 사용하며 수유 및 햇빛/에어컨 바람을 막는데 아주 유용하였다.


15여 년이 지나고 나서 한 의사분한테 들었다. 2세 미만의 아이가 비행기를 타면 귀의 근육들이 많이 파열되어서 건강에 좋지 않을 수 있다고. 당시 오가는 비행기에서 둘째 아이는 요람에서 편하게 자며 오갔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멀미가 나서 잠을 잔 게 아니라 귀가 아파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후회도 들었다. 고맙게도 둘째는 건강히 잘 컸고 어릴 때부터 해외물을 먹어서인지 어디론가 나가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여행을 다녔으니 하나님께 축복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2007년 이후 가족들과 함께 해외여행은 잠시 멈추었고 국내여행으로 대체하였다. 이후 셋째가 태어나 이 아이가 5살이 되던 2014년부터 다시 본격적인 가족 해외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알게 된 Tip>


1. 동남아의 8월은 한국보다 훨씬 덥고 습하기에 어린아이들이 힘들어한다. 4세 아들은 딱 30분만 걷고 그다음부턴 칭얼대었다. 아이들을 등뒤에 멜 수 있는 접이식 경량형 가방을 휴대하면 칭얼대는 아이를 편하게 업고 다닐 수 있다.


2. 어린아이는 가벼운 슬링으로 안거나 멜 수 있어 엄마한테 유용한 도구였다. 가끔 여행짐을 넣는 도구로도 활용할 수 있고, 아이한테 차가운 에어컨 바람을 막는 담요역할도 해주기도 한다. 접이식 유모차는 항상 휴대했는데, 긴 줄에서 아이를 안고 대기하다가 힘들 때 유모차를 펼치면 의외로 배려의 손길이 많아진다.


3. 아주 어린 영아가 있다면 저가항공보다는 FSC(Full Service Carrier/대한항공 같은 대형 항공사), 그중에서도 국적기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미리 항공사에 연락하면 요람도 준비해주고 편한 앞자리로 좌석을 배치해 준다. 과거 여행당시 이용한 항공사 기내에선 아이의 이유식과 선물도 준비해 줬는데, 생후 5개월 된 아이가 그 기체에 처음 탔다고 승무원들이 신기해하면서 엄청 잘 돌봐주었다.


비행기 요람에 누은 둘째 아이. 비행시간 내내 울지도 않고 잠을 잘 잤다. 승무원들도 자주 들여다보면서 돌봐주었다.




인터넷으로 항공편과 숙박을 검색/예약하고 론리플래닛 같은 여행전문 서적을 보면서 현지 여행일정을 짜다 보니 비용도 과다 지출하고 현지 일정도 효율적이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2007년 이후 가족들과 해외여행은 잠시 중단했지만 계속 해외출장이나 국내 가족여행은 지속되었기에 여행경험과 노하우는 조금씩 쌓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2014년에 온라인 포털에서 여행전문카페를 알게 되어 활동하다 보니 저렴한 항공권을 구매하는 법, 3대가 묵을 수 있는 숙소를 찾는 요령, 국제적인 호텔티어 멤버십을 저렴하게 획득하는 법, 현지의 최신 유명한 볼거리와 맛집의 위치 등을 찾을 수 있는 노하우를 가질 수 있었다. 역시 대한민국은 인터넷강국. 인터넷을 뒤지면 모든 게 다 있다. 전 세계와 실시간으로 접속도 되고.


너무 많은 고민은 필요 없다. 일단 여행하고자 마음먹었다면, 어떻게든 무엇이든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일을 하고 있는 아빠엄마에게 1년은 금방 지나가고 아이들은 금방금방 큰다. 부모님들은 나이 들어감이 하루하루가 다르고. 3대 가족에겐 시간이 다르게 간다. 일단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