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1 - 6명의 가족과 함께한 10여 년간의 해외여행
내 나이 19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4남매 중 막내인 나는 혼자되신 어머님과 같이 살면서 결혼 후에도 계속 어머님을 모시고 살았다. 결혼 후 3명의 아이를 낳아 현재 6명의 식구들이 한집에서 살고 있다.
첫째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2살이 되었을 때, 아내와 내가 각자 직장에서 2주간의 근속휴가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둘 다 직장을 다니다 보니 평소 아이 양육을 어머니가 해주셨는데, 어머니는 흔쾌히 아이를 봐줄 테니 경제적 여건만 허락한다면 아내와 둘이 여행을 다녀오라고 허락하셨다.
2002년 결혼하면서 괌으로 신혼여행을 간 게 첫 해외여행이었는데, 2주간 우리 부부가 두 번째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물론 신혼여행 이후 직장에서 해외출장을 몇 번 다녀와서 해외 방문에 대한 두려움은 갖고 있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와의 여행 기억이 많지 않다. 서울에서 자동차 매매상으로 적지 않은 돈을 버셨던 부모님은 나이 40이 다 되어서 기독교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해 학교를 다니느라 가진 전 재산을 다 처분하셨다. 가난한 목사로 전라도의 시골 깡촌에서 목회를 시작한 부모님과의 생활에서 어디 여행을 가는 건 쉽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간혹 전라도 섬 지역을 버스와 배를 타며 가족들과 여행한 기억이 있는데 자가용이 없어 매번 무거운 철재 텐트와 식자재 도구들을 온 가족이 짊어지고 걸어 다녔다.
아버지하고 단 둘이 간 여행이라고는 초등학교 6학년 졸업을 앞두고 영암 월출산에 등산을 간 것뿐이다. 이때 아버지가 월출산 중산간에서 다리에 쥐가 나서 약 40분간 꼼짝없이 앉아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아빠 몸무게가 90kg이 넘는데 내가 어떻게 업고 이 산을 내려가지?'라고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항상 강할 것 같았던 아빠의 연약함을 처음 보면서 그 당시 꽤 당황했기에 30여 년의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가 않는다.
아내와 단둘이 2주간의 유럽여행을 떠나서 1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6일간 돌아다녔으니 하루는 교회를 갔다가 쉬자고 하여 오후엔 일찍 영국의 숙소에 머물렀다. 창밖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집에 놔두고 온 2살짜리 아들 녀석이 생각났다. 지갑과 핸드폰 속 아들 사진을 찾아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내 옆에서 아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웃어제꼈다. 하지만 아내의 마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여행은 즐거웠지만, 집에 두고 온 아들이 보고 싶었다.
여행의 기쁨도 좋겠지만, 2살짜리 아이 얼굴 보는 것도 아주 큰 기쁨이다.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월출산에서 아픈 다리를 이끌며 13살짜리 아들과 처음 여행 온 내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왜 내 아버지는 그때 굳이 나와 단둘이 월출산을 가자고 하여 산행을 하게 되었을까?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또 한 번은 그리스에 도착하여 아테네 시내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신을 만나려면 머리를 조아리고 겸손해야 하듯, 아테네 시내에서 오르막길을 계속 올라가야 파르테논 신전을 만날 수 있다. 아테네에 왔다는 흥분과 여행의 감격으로 시내를 걷다 보면 슬슬 오르막길을 걷게 되는데, 뜨거운 햇볕 아래 배낭가방을 멘 여행객들은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파르테논 신전에 이르면 또다시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게 되는데...
숨을 돌리며 길가에서 잠시 휴식을 하는데 특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당시 아시아계 사람들을 여행지에서 많이 볼 수는 없었는데, 마주치는 아시아계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 배낭여행하는 사람이거나 젊은 커플, 혹은 단체여행객들이었다. 의자에 앉아 신전으로 향하는 여행객들을 보고 있는데 웬 백인 꼬부랑 할머니 두 명이 자기 덩치보다 큰 캐리어 가방을 질질 끌면서 올라오는 게 보였다.
'아이고 이런 더위에 여행도 다니시네... 건강하시구만'라고 생각하면서 아내한테 얘기했더니 아내가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 할머니들뿐만이 아냐. 좀 전에 올라간 어르신 5명도 큰 배낭에 지팡이 짚고 올라가더라고. 저 뒤에 또 백인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도 있고. 단체여행객은 아닌 거 같은데..."
가만히 살펴보니 정말 서양의 나이 든 어르신들이 자기 덩치보다 큰 배낭과 캐리어를 메고 끌면서 올라오거나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주변을 살펴보니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젊은 부부, 아이를 업고 올라오는 엄마, 어린아이를 목 위에 태우고 한 손으로 다른 아이를 안고 내려가는 아빠 등 내가 보기에 독특한 서양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바로 그때 깨달았다.
아. 여행은 죽을 때까지 저렇게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구나.
그리고 여행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가족, 특히 아이와 함께 하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이후 그리스뿐만 아니라 여러 유럽 여행지에서 자기 몸보다 큰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수많은 꼬부랑 어르신들과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젊은 백인 부부들을 많이 만났다. 복지가 잘된 연금 혜택이라고 쳐도 나이 드신 분들의 개별여행은 너무 부러웠다. 또한 어린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유명 관광지를 아무렇지 않게 방문하는 배낭여행 부모들의 모습은 나도 할 수 있다는 도전의식을 불러일으켰다.
멀리 유럽까지 와서 내 아이 보고 싶다고 여행중 눈물짓는 내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나는 왜 아이를 데리고 오지 않았던 걸까?
아이를 데려오는 돈도 없긴 했지만, 돈이 전부이진 않나? 여행지에서 만난 가족여행객들은 모두 부자였을까? 과거 힘들었던 살림에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여행기억은 얼마 없지 않은가?
내 아들과 나는 어떤 여행 기억을 공유할 수 있을까?
당시 한국에선 생소한 저가항공기를 타고 유럽일주를 계획한 나를 칭찬하며 여행초보로서 직접 여행일정을 짰다고 자신만만해하던 나 자신이 초라해졌다.
아이는 기억을 못 하겠지만 부모는 기억할 테고, 나아가 추억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가족과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중요하고 소중한 것일 테다.
한국으로 돌아와 집에 처음 들어가는데, 첫째 아들이 집 밖에서 우리 부부를 기다리다가 달려 나오던 중 언덕길에서 넘어져 코피가 났다. 피를 흘리며 엄마품에 안겨서 우는데 반가워서 우는 건지 아파서 우는 건지 알 수는 없었다. 그때 마음속으로 나는 단단히 결심했다.
다음부터 너를 남겨두고 절대 혼자 여행가지 않겠다고!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아프거나 늙어서 못 걸을 때까지 함께 여행 다니자고!
그때 그 결심이 지금까지 6명의 가족이 매년 해외여행을 하게 된 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