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세명과 어머니를 모시고 총 6명의 대가족이 해외여행을 하려니 소소한 이야기거리들이 있다.
1. Are you Korean?
외모가 이국적으로 생기다 보니 종종 국적이 필리핀이나 파키스탄쪽 아니냐는 질문을 받는데 해외 여행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6명이 함께 첫 해외여행을 했던 필리핀 팔라완의 한 숙소에서 체크인을 하는데 옆 빌라동에 한국인 가족이 묵었다. 가족중에 중학생 정도 돼보이는 아이들 2명이 장난치며 떠들고 있었다. 나중에 인사도 할 겸 같이 숙소 문을 열면서 우리 가족들과 한국말로 크게 얘기하고 숙소로 들었갔다. 다음날 아침 식당에서 그 청소년이랑 마주 쳤다. 나는 반갑게 '안녕~ 어디서 왔니?'라고 인사하려는데 그 아이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Hi~ Good morning!"
(아니 이 녀석이!! 어제 내 한국말 들었을터인데!)
식사후 숙소를 둘러 볼 겸,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다소 외진 곳에 스파동 건물이 있었다. 현지 종업원이 나를 보더니 영어로 뭐라뭐라 말하는데 대충 이해하기로 싸게 해줄테니 마사지를 받고 가라~ 뭐 이런 말 같았다. 그냥 가기도 뭐하고 잘 알아듣지도 못해서 '미안. 내가 영어를 잘못해. 아줌마 하는 얘기 잘 못 알아듣겠어'라고 영어로 간단히 얘기했더니 갑자기 이 사람, 따갈로그어로 나한테 얘기하기 시작한다.
'OMG! NO! NO~ I'm not pillpino. I'm Korean! I don't speaks tagalog.' 했더니,
이 종업원이 빵터졌다.
"아임쏘리, 아임쏘리. 너 필리핀 사람인줄 알았어!"
(ㅠㅠㅠ 나 한국에서 온 손님이란 말이에요!!)
팔라완의 도스팔마스 리조트. 작은 섬 전체가 리조트인데 꽤 낡은 리조트엔 정말 '자연'뿐이다.
방에 돌어와 얘기를 하니 온 가족이 웃었다. 아내는 결혼할 때부터 나를 외국인 취급했는데 이제 어머니도, 아이들 셋도 나의 외모를 한국인으로 보지 않는다.
2. 아빠의 너무나 찰진 욕설
여행을 다니면서 현지말이 서툴고 가격 흥정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숙소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가격이 딱 정해진 것을 주로 이용한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여행을 마치고 가족들과 발리에 도착했는데, 신용카드 결재가 가능한 우버택시를 사용해보기로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전세계에서 여전히 우버나 그랩같은 혁신서비스들은 기존 택시기사들의 강력한 견제를 받는다. 우버를 부르고 나서 공항주차장의 외진 곳으로 오라는 기사와 통화를 한뒤 그쪽으로 이동하는데, 택시기사들이 계속 호객행위를 하며 뒤따라 왔다. 어렵게 우버기사를 만나 차량에 탑승했는데, 갑자기 택시기사가 어디선가 차를 갖고 나타나더니 우리 가족이 탄 우버택시앞을 딱 가로막는게 아닌가.
택시기사는 자기 차량으로 우버택시 앞을 가로막아 놓고선 차에서 내려 손가락질을 하면서 내가 듣기에도 불편한 말들을 우버 기사에게 쏟아 내었다. 우버기사가 내렸다가는 몇 대 맞을 분위기였다. 젊은 우버기사는 차안에서 고개만 숙이고선 시동을 끈채 한 10분여동안 그 택시기사의 욕받이가 되주었는데, 뜨거운 태양볕에서 차안에 갖힌 우리 가족들은 무더위와 무서움과 함께 식은땀을 흘리며 꼼짝 10분동안 갇혀있었다. 슬슬 옷이 젖고 숨도 막히면서 화가 치밀더니 결국 나도 폭발하고 말았다.
운전석 옆에 앉았던 내가 차 문의 잠금장치를 풀고 나와 우버택시에서 짐을 다시 뺀후 그 일반택시 앞뒤로 막아버렸다. 그리고 나는 한국말로 그 택시기사한테 엄청난 욕을 쏟아부었다. (너무 심해서 여기다 쓸 수는 없음) 특수부대 출신이라 험한 욕도 할 줄 알지만, 사회적 지위와 배운사람의 교양이 있어~... 평소 항상 바른말을 사용하고자 노력하는데, 이 날만큼은 군대제대이후 처음으로 한껏 욕설을 퍼부어주었다. 인상험악하고 덩치큰 외국인이 갑자기 큰소리로 소리를 지르니 운전기사도 당황했다. 말은 달라도 내가 욕설을 하는 것임을 택시기사도 알 터였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슬그머니 자기 택시 안으로 들어가버렸고 가방을 치우면 떠나겠다는 제스춰를 취했다. 난 계속 욕설과 함께 경찰을 부르겠다고 마구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한참있다가 아내가 그만하라며 아들과 앞뒤 가방을 치우고 나를 진정시킨 다음에야 기사는 황급히 차를 몰고 떠났다. 나의 화난 모습과 욕설을 내뱉는 모습을 처음 본 가족들은 다소 충격이었나 보다. 숙소로 이동하는 우버택시안에서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우버택시 안에서 다소 마음속 긴장이 풀리자 8살 막내딸이 한마디 했다.
"엄마, 나 아까 무서워서 진짜 오줌 쌀뻔했어. "
"그럴만도 하지. 그 택시기사가 이 무더위에 너무했지. 엄마도 긴장했었어~"
"아니. 아저씨가 아니라 아빠때문이었다니까! 아빠 개무서웠어. 아빠 욕설이 너무 찰지던데?"
내 덕에 위기순간을 모면했던 우버택시기사는, 결국 택시비 에누리없이 요금 다 받아갔다.
좀 깍아줄 것이지....
어찌되었든, 세계시민으로서 품위를 잃어버리고 못하고 험악한 욕설을 퍼부은 당시 발리의 택시기사한테는 미안함을 전한다. (외국에서 함부로 욕설하면 큰 일납니다^^;;)
스트레스 받았으니 실컷 먹어야지! 발리에서 아이들이 쿠킹클래스에 참여해서 직접 만든 음식들~
3. 여행 첫날, 모든걸 털리면 온 가족이 두렵다
가족들과의 여행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평소에도 조심성이 많아 일정상 불안요인은 없는지 점검하고 여행중에도 각종 소지품과 돈 등을 잘 챙기는 편이라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큰 사건사고가 없었다. 2018년 필리핀 보홀로 가족여행을 떠나면서 마닐라에서 여행첫날을 시작하였다. 숙소에 바로 짐을 풀고 어머니가 배고프다고 하셔서 서둘러 아이들을 챙겨 숙소 지하에 있는 식당가로 저녁식사를 하러 나갔다. 보통은 여행첫날 숙소에 도착하면 아내한테 여행경비 일부를 나눠주고 가족들 여권과 신용카드 등 귀중품은 숙소금고에 따로 나눠서 보관하는데, 이날은 서두르다 보니 한국에서 떠난 그대로 내 손가방에 가족들 여권과 여행경비 전부가 들어 있었다.
여행첫날 130만원 가량의 가족여행경비를 몽땅 잃어버렸다. 필리핀 경제성장을 위해 기부했다고 위안삼기로 했다.
사건은 이런 날 터지기 마련이다. 평소 여행중엔 절대 손가방을 몸에서 분리시키지 않는데, 이날은 저녁을 먹으면서 의자에 가방을 걸어놓았다. 배고파서 그런지 정신없이 밥을 먹었고 직원이 와서 음식맛이 어떤지 물어봐줘서 기분도 좋았다. 그런데 식사후 계산을 하려니 내 손가방이 없어졌다. 아뿔싸! 거기에 3명의 가족들 여권과 여분의 증명사진, 여행경비 현금전액, 신용카드가 든 지갑, 운전면허증 등이 다 들어있었다. 음식맛을 물어준 그 식당직원의 소행인지, 손님이 도둑인지 알길이 없는 가운데 식당 주인은 경찰을 불렀고 일단 식사비용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식당주변을 경찰과 돌았지만 형식적인 절차였고 결국 아들과 함께 경찰서에 가서 이것저것 조서를 쓰고 마무리되었다.
한국대사관은 주말이라고 전화연결이 안되어 결국 실례를 무릅쓰고 우리기관의 현지지부에서 일하는 지부장님한테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지부장님은 다음날 숙소에 방문하겠다고 했고 돈한푼 없이 6명의 대가족은 필리핀 시내 한복판에서 두려워하며 밤을 맞았다.
조서를 쓰고 숙소로 돌아온 밤 1시쯤, 경찰이 여권등 분실물을 찾았다며 확인해보라고 했다. 불행중 다행인지 도둑은 현금과 지갑만 챙겼고 3명의 여권과 증명사진, 운전면허증 등은 그대로 돌아왔다. 식당인근의 외부 쓰레기통에서 쇼핑몰 청소원이 회수했다는데 믿을 수 밖에. 신용카드는 이미 정지시켰고 월요일 아침에 보홀행 비행기를 타야했다. 여권이 없으면 임시발급을 위해 대사관에 가야해서 일정이 다 엉망이 될 터인데 그나마 여권을 찾았으니 다행이었다. 보홀숙소와 차량편, 비행편 모두 예약과 비용결제가 완료 돼있어 가족들 밥먹일 돈만 있으면 힘들더라도 여행은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날인 주일날 아침, 숙소로 필리핀 현지 지부장님이 찾아왔다. 그나마 여권은 찾아서 다행이라면서 현지 치안이 안좋아 잘못하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며 위로해주고 가족들을 안심시켜 주었다. 나는 너무 부끄럽지만 현금좀 일부 빌려줄 수 있는지 물었고 고맙게도 지부장님은 기꺼이 현금을 빌려주었다. 한국에 와서 그 지부장님한테 높은 이자로 갚아드렸는데 과하다며 오히려 망고를 선물로 보내주셨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금 감사의 뜻을 전한다.
여행첫날, 여행경비 전액을 도둑맞은 추억이 우리 3대가 같이한 여행중 가장 큰 사건이다. 여행중 돈과 귀중품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항상 주의하자. 한국인 여권은 위조브로커들한테 고가에 거래되기도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족의 안전이 최고다. 돈은 다시 벌면 되고 여권은 재발급받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