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가족 해외여행을 가는 이유

식스센스여행기 8 - 아내입장에서 쓴 식스센스 여행기 / 아내편 1

by 구르는 소

남자가 울 때는 딱 세 번이 있다고 하는데 태어났을 때, 군대 갈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라고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엔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인식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질 때가 있었다. 우스갯소리 같아 보여도 군대 갈 때랑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는 정말 큰 눈물 날 정도로 슬프긴 하다. 군대를 안 가야 사회지도층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시대에 군대 가는 게 정말 슬픈 일이기도 하거니와 나를 낳아준 이가 세상에 없으니 가슴 한편 쓰라린 마음에 눈물이 한가득이다. 남자로 살기 쉽지 않다.


여자는 어떤가? 딱 세 번의 눈물을 찾아본다면 태어났을 때, 출산할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성의 인권이 많이 신장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사회적 약자인 여성으로 태어나면서 남자보다 눈물이 더 날 수도 있겠다. 또한 출산하면서 그 고통과 기쁨의 양가감정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요즘엔 출산을 많이 하지 않으니 다른 상황을 찾아봐야 하나..) 애틋했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아들보다 딸이 더 많은 눈물을 보이는 게 사실이긴 하다. 여자로 살기도 쉽지 않은 듯하다.


여행기 초반에 기록했지만 나는 19살에 아버지를, 아내는 28살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다 컸다고 하지만, 어린 나이었고 감내하기 어려운 일들이 겹쳐 둘 다 힘들게 그 시기를 보냈다. 내겐 어머니가 남아 계시지만, 아내에게 가족이라곤 동생밖에 없으니 아내한테 가족의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가정을 꾸려 잘 살아보려는 아내의 의지는 아이를 3명이나 낳으면서 지속적으로 강해졌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애틋했던 자기 어머니를 젊은 나이, 결혼과 동시에 하늘나라로 보내드린 상실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마음이리라.


2008년 방송에서 '구당 김남수 선생의 침과 뜸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방송을 보니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구당선생님한테 와서 무릎을 꿇고 울고 있더라.

"제발 우리 어머니 뜸한번 놔주세요"

"전재산 다 드릴 테니 우리 아버지 침 한번 놔주세요"

당시 구사(침놓는 사람) 자격증 없이 침을 놓는다면서 한의학계가 70여 년간 침과 뜸을 놓아온 93세의 노인을 무면허의료행위로 고발해 구당선생이 진료를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당시 그 화면을 보면서, 아내와 난 이렇게 얘기했다.

'세상에 정말 우리가 모르는 분야가 많구나. 우리 아빠, 엄마 돌아가실 때 저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우리도 저기 가서 무릎 꿇고 울면서 밤낮으로 빌고 있을 텐데...




비슷한 공감대를 가져서인가. 둘이 처음 간 유럽여행에서 앞으로 여행은 아이들과 함께 하자고 마음먹었고 아이들이 기억을 못 하거나 돈이 없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함께하는 그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 가족과의 여행은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을 가슴속에 눌러 담고 걷는 여정이라는 것을 느꼈다. 나중으로 미뤄놓으면 그때는 또 다른 핑곗거리가 생기고 후회할 일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아버님의 죽음을 통해서, 아내는 어머님의 죽음을 통해서 배웠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고 건강은 때가 있으며 시간은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와 자녀들의 관계에서 그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여행을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아내와 나 둘 다 매년 바쁜 직장생활을 했고 아이를 돌봐주시는 어머니에게 감사의 표시도 해야 했다. 둘 다 7말 8초의 극성수기에만 1주일간의 휴가를 쓸 수 있었는데 같은 집에 사는 시어머니와 더운 여름날을 함께 보내기도 아내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을게다. 이러저러한 핑계김에 5개월 된 둘째를 데리고 온 가족이 홍콩과 태국으로 향했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대부분의 예산과 여행준비를 남편이 부담하니 아내는 맘 편히 따라나서기만 하면 되는 것이어서 여행을 반대할 이유도 없었다. 잦은 해외출장으로 집을 비운 남편이니 가족들 해외배낭여행도 크게 문제없을 것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국내에 갇힌 본인의 시야도 넓히고 아이들에게 보다 넓은 세계를 보여주고 싶은 엄마로서의 마음가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아내가 시어머니를 포함한 6명의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이다.


한가족을 이루었으니 여행을 같이 가는 게 맞다고 할 수도 있다. 인생의 반려자가 되었으니 어딜 가던지 같이 가는 게 상식적이겠으나, 그렇다고 여행을 반드시 같이 가야 할 필요까진 없다. 여행의 취향이 다르면, 결혼해서 각자 취향대로 여행을 다니면 될 일이다. 시끄러운 클럽, 농도 짙은 음주와 춤, 다이내믹한 스포츠, 복잡한 도심과 군중 등 좋아하거나 체험하고 싶은 여행의 영역이 다 다르다. 우리 부부도 각자의 취향이 있었겠지만,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면서 어머니와 아이들 쪽에 여행초점을 맞춰나갔다. 가끔 나와 아내의 취향대로 추진된 적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속도를 조절했으니 큰 사고 없이 진행된 듯하다. 물론 여행기획자인 내 취향대로 대부분의 여행이 진행되었지만, 아내는 종종 자기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가면서 자기 취향대로 스트레스를 풀었으니 그걸로 보완되었으리라.


시어머니와 같이 가족여행을 다니면서 자기의 취향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고 나와 가족들 취향에 맞춰준 아내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다. 애들 때문에 힘들어도 시어머니 잠자리와 먹거리를 챙겼고 여러 레포츠를 섭렵하려 했던 나를 이해해 주면서 현지에서 기다려주기도 했다. 매년 여행 중 화를 한 번씩 냈던 나에 비해 아내는 화한번 낸 적이 없다. 물놀이를 즐기던 가족들을 위해 본인도 평소에 열심히 수영을 배워 지금은 성인키만큼의 수영장과 강물에 뛰어들 정도가 되었다. 이제 집라인이나 발리의 절벽그네에 도전해 보면 된다. 60세 되기 전에 좀 더 역동적인 활동체험을 하는 여행에 도전해봐야 하지 않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