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소득을 앞당겨 쓰는 두려움

식스센스 여행기 9 - 아내입장에서 쓴 식스센스 여행기 / 아내편 2

by 구르는 소

식스센스 여행기, 이번엔 '돈' 얘기다. 6명의 대식구가 매년 해외여행 다니면서 돈을 어떻게 모으고 얼마나 쓰고 다녔는지 알려드릴 테니 관심 있는 부부들은 잘 보시라~!^^


보통의 여행기들과 여행방송프로그램에선 맛있는 거 먹고, 멋진 풍경 관람하고, 재미난 체험을 보여주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돈은 잘 얘기하지 않는다. 아주아주 절약해서 적은 예산으로 알뜰여행을 했다거나 반대로 이번 여행은 플렉스와 럭셔리콘셉트이었다고 대부분 얘기한다. 간혹 1인 입장료 얼마, 길거리에서 먹은 간식이 얼마라고 알려주기도 하지만 여행객 전체의 간식비 총합을 알려주진 않는다. 입장료 5천 원은 싸 보이지만 6명이라면 3만 원이니 4군데 입장료만 해도 12만 원이다. 알아서 계산하라는 얘기다. 여행지에서 물건을 분실했다거나 내 가족이 글로벌 호구로 등극한 사실들도 잘 얘기하지 않는다. 좋은 추억만 남겨도 모자랄 판에 창피하고 안 좋은 기억을 남겨서 뭐 하겠는가. 여행기의 추억에서 돈얘기는 대접받지 못하는 소재일 뿐이다.


결론을 미리 얘기하면, 우리 부부는 여행을 위해 '빚'을 냈다. 다소 허무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복지사와 보육교사로 활동하는 부부의 소득이 그리 많지 않은데, '빚'말곤 답을 찾기 어려웠다. 다만 감내할 수 있는 빚을 냈다. 내 연봉의 6~8% 내에서 6명 가족들의 해외여행경비를 지출하려고 했다. 집 등 다른 영역의 빚도 있으니 '여행빚'의 포션을 크게 가져갈 순 없었다.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거나 재테크를 잘해서 부를 많이 쌓았다면 다른 방법도 있을 터였지만, 우리 부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들이었다. 그냥 신용카드 등을 활용하여 여행전후 여행경비를 몇 개월 할부로 결제한 뒤, 다음 여행까지 천천히 갚아나가는 '단순한' 방식을 택했다. 가정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빚이라면, 여행을 위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우리 집의 경제는 '부부 따로 경제'다. 각자의 월급은 각자가 관리한다. 솔직히 지금도 서로의 정확한 급여 수준을 알지 못한다. 아내의 급여명세서를 본 적이 없고 나도 아내한테 그것을 보여준 적이 없다. 결혼하면서 딱히 정한 것은 아닌데,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하나로 합쳐서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누군가 꼼꼼하게 관리하면 더 큰 부를 쌓을 수 있을 거라고 주변에서 얘기하던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투자로 돈을 잃으면 아내한테 돈이 있어야 가족들이 먹고살 수 있지 않겠는가? 성공하는 재테크 법칙에서도 '계란을 한 바구니에 넣지 말라'라고 하지 않았던가!


다행스럽게도 아내와 나는 '소비'에 욕심이 없고 '절약'엔 도가 튼 사람들이다. 현 4~50대가 대부분 그렇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아껴야 잘살죠'를 외우며 자랐다. 근검절약과 저축만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여행유니폼을 입은 듯 10년간 여행복장이 똑같아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같은 해에 여러 장소를 다닌 걸로 착각할 수도 있다. 여행지 숙소에서 쓰고 남은 비누를 챙기는 건 아내 몫이고 서비스로 넣어준 인스턴트커피 2개를 챙기는 건 내 역할이다. 나는 가끔 무모한 투자와 과감한 소비로 '절약'에서 일탈을 하기도 하지만 아내의 근검절약 생활태도는 결혼생활 20년 동안 바뀐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발비용이 아까워 집 근처 미용학원에서 수습생들한테 공짜로 이발을 하곤 했던 내 절약방식은 아내의 생활습관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치약은 끝까지 돌돌 말아 올려 쥐어짠 뒤 칼로 찢어 안쪽의 치약까지 다 쓰기 전까지 쓰레기통에 들어가지 못한다. 여러 번 리필된 샴푸통은 마지막엔 물로 헹구어 희석된 샴푸액을 죄다 토해놓아야 재활용 수거함에 들어갈 수 있다. 커피음료를 여러 개 담아 온 휴대용 종이케이스는 집안 곳곳 물품정리도구로 비치되어 있다. 지구환경을 위한답시고 우리 집은 쏘카를 이용 중인데 가끔 차를 가지러 가는 불편으로 '차를 사면 어떨까?'라고 얘기하면 '차 가지러 걸어갈 수 있을 때까지 쏘카이용하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새우깡 과자 한 봉지가 50원 하던 시절, 당시 집에 돈이 없어 유리병에 새우깡 한 봉지를 뜯어 넣어두고 2주 동안 조금씩 꺼내먹었던 내 기억과 하교 후 귀가한 집에서 빨간딱지 붙은 자기 책상과 맞닥뜨린 아내의 기억은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추억일 게다. 나의 잦은 이사경험과 아내의 남의집살이 서러움은 소비와는 담을 쌓고 절약하는 습관을 갖게 해 주었다.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면서 정직한 노동으로 돈을 버는 것이 건강한 삶의 정석이자 축복의 길이라고 믿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강한 생활력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났고 결혼생활에서 아낌없이 근검절약의 습관들을 보여주었다.


앞선 식스센스 여행기에서 썼듯,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을 우리 부부가 결심하면서 돈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돈이 모아지면 여행을 했고 모자라면 얼마간 빚을 내어 여행 후에 조금씩 갚아 나갔다. 6명 가족의 첫 필리핀여행에서 꽤 큰돈을 지출하고 난 뒤 어려움을 겪고선 궁하면 통한다고 여행경비를 아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갔다. 값싼 항공권을 안전하게 구입하는 요령을 배우고 호텔멤버십을 저렴하게 갖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여행고수들이 활동하는 온라인 카페를 알게 되면서 정보를 취득하고 분석하는 노하우도 갖게 되었다. 삶의 우선순위가 정해지고 7말 8초의 여행일정이 고정되니 그에 맞는 준비와 결정을 할 수 있었다. 돈은 여행을 만들 뿐 여행이 돈 때문에 망가지지 않게 했다.


전체적인 여행경비를 내가 부담하고 관리하다 보니 매해 가족들의 해외여행일정에 아내도 선뜻 참여했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여행경비를 알지 못하니 아내는 예산지출에 대한 부담이 덜 했을 것이다. 여행경비를 미리 알았다면 아내가 여행을 가자고 했을까? 확고한 신념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법이다.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같이 쌓는 추억이 중요했고 함께하는 순간이 소중했으니 돈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근검절약의 여신'에게 굳이 돈얘기부터 먼저 할 필요가 없었다. 일단 함께 여행지로 떠나는 게 중요했다.

신념과 생활습관에 따라 근검절약만 했다면 돈은 조금 모았겠지만 아이들과의 여행추억은 없었을 것이다. 돈이 부족해 여행 중 머뭇거리는 일정이 있으면 아내는 선뜻 자기돈을 내어 여행설계자의 자존심을 살려주고 가족들의 만족도를 높이고자 노력했다. 숙소에서 아이들이 쓰고 내팽개친 비누를 전부 챙기는 알뜰함에서도 현지 맛집을 찾아 과감히 쓸 줄 아는 여유를 보여주기도 했다. 여행 후 청구되는 카드값을 갚는데 아내한테 돈을 여러 번 꾸었으니 사실 여행경비를 내가 다 부담한 것도 아니다. 미래소득을 앞당겨 쓰는 것에 근검절약의 여신은 분명히 두려웠을 것이다.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 준 것은 앞서 말한 '함께하는 순간들'의 중요성이 아니었을까? 알면서도 속아준 아내덕에 6명의 대가족이 해외여행을 수년간 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흥청망청 쓰지만 않는다면, 가계상황이 감당할 정도에서 저축과 빚을 활용해 여행을 떠나보자. 돈이 모이면 떠나고 돌아와 다시 갚아 나가면 된다. 절약과 저축이 중요하고 큰돈 모아 나중에 떠나겠다고 하면 말리지 않겠다. 미래소득을 당겨서 여행경비로 쓰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다. 다만, 그땐 아이들이 다 커서 엄마아빠와 한방에서 같이 잔다고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친구들하고만 여행을 간다고 가족여행에는 따라나서지 않는 사춘기 자녀일 수 있다. 아빠엄마와 수영장에서 같이 노는 것보다 스마트폰 보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고 늙은 모친은 여행지에서 걷는 것조차 힘들어하실 수 있다. 지나고 보니 그런 순간이 금방 다가온다.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함께하는 시간을 나눈다는 행복감이 미래소득을 앞당겨 쓴다는 두려움보다 훨씬 크다. 부부 중 한 명은 도전하고 나머지 한 명은 지지하면 된다. 한 명은 적당히 여행돈을 쓰고 또 다른 한 명은 근검절약하면 된다. 부부가 마음먹기에 달렸다.


뭘 망설이나. 곧 떠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