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스센스 여행기 10 - 아내입장에서 쓴 식스센스 여행기 / 아내편 3
첫 번째 "가도 될까?", 두 번째 "가려고 해~", 그리고 세 번째 "간다~"
아내는 결혼 후 친구들과 함께 총 3번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 친구 및 후배들과 여행적금을 들어서 매달 조금씩 적립하더니 사이판과 동남아, 동유럽 등지로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결혼생활의 무덤덤함 혹은 익숙함이 강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떠나는 아내의 말투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결혼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친구들이 사이판을 가려고 하는데 자기가 다녀와도 되는지 내게 의견을 구했다. 신혼 무렵이고 시어머니도 모시고 사니 눈치를 보며 남편한테 허락을 요구했을 수도 있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남편한테 허락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겠지만, 결혼한 부부로서 상대방 배우자에 대한 예의를 보여주었던 게 아닐까? 어쨌든 여행가게 나한테 돈을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이성친구들이 따라가는 것도 아니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쿨한 척(?) 아내한테 다녀오라고 했다.
두 번째 여행은 동유럽으로의 패키지여행이었다. 결혼 후 많은 시간이 지나 다들 직장과 가정이 있어 바빠선지 패키지여행을 계획하는 것 같았다. 여자들끼리 한번 가는 게 어렵지 두 번째 가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듯했다. 여행준비뿐만 아니라 남편과 소통하는 것까지 막힘이 없었다. 첫 번째 여행을 갈 때의 '허락'은 존재하지 않았다. 동유럽여행을 준비한다며 이것저것 바쁘게 움직이다가 아내는 아무렇지 않게 여행을 떠났다.
세 번째 여행은 대학교 동기 및 후배와 같이한 동남아여행이었다. 가족여행에선 남편이 정한 일정과 음식, 숙박지만 따라다니던 사람이 이것저것 알아보고 일행들과 역할분담을 해서 여행을 준비했다. 가까운 나라라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해외인데 저렇게 준비해서 나가도 되나 싶을 정도로 걱정됐다. 하지만 아내는 여행 날짜가 되자 '나 다녀올게'라고 한마디 하고 여행지로 떠났다.
아이들하고 해외로 가족여행을 가기가 쉽지 않다. 특히 아이가 3명이나 된다고 하면 이것저것 신경쓸이 많으니 여행의 시작을 엄두조차 내기 어려울 수 있다. 게다가 시어머니까지 여행을 함께 간다면? 대부분의 아내들이 그럴 거면 아예 안 가겠다고 하지 않을까? 아내는 오랫동안 공동육아의 보육교사로, 방과 후 돌봄 교사로 일해왔다. 매일 전투적인 하루 일과를 보내고 귀가하면 끙끙 앓으며 잠에 들곤 했는데, 그런 힘든 일과에서 벗어나 진한 추억을 가족들과 만들 수 있는 것은 매년 여름의 가족과 해외여행이었다. 더운 여름날 7말 8초의 정해진 휴가일에 6명의 가족이 집안에 땀 흘리며 처박혀있는 것보다는 견문을 넓히고 가족 간 추억을 쌓자며 떠난 해외여행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행 중 남편과 혹은 시어머니와의 스트레스 및 갈등이 어찌 없었을까? 아내는 그걸 묵묵히 참아내고 가족들과 추억을 쌓아가면서 매년 해외 가족여행을 준비하고 동참하였다.
가족여행이 완성되고 난 뒤엔 그 속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공허함, 그리고 또 다른 추억과 즐거움을 친구들과의 떠남으로 다시 충족시켜야 했을 것이다. 누군가 돌봄과 양육의 십자가를 지지 않고 편안히 방조자로서의 여행일정도 때론 필요한 법이니까. 즐거움과 행복이 가족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않으니까. 그래선가? 나도 아내가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간다고 할 때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았다. 나름 여성우선주의자라고 생각하지만 고리타분한 생각도 많은 내가 여성들만의 해외여행을 반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 마음속에 그 반대의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색하지 않았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아내이고 엄마이자 며느리이지만 자기 친구들하고 여행을 가는 것을 왜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눈치를 볼 일인가?
첫 번째 "가도 될까?", 두 번째 "가려고 해~", 그리고 세 번째 "간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가족들에게 얘기하는 아내들의 화법도 변하는 것 같다. 20년 전보다야 여성인권과 사회참여가 훨씬 커졌고 다양해졌다. 과거 유부녀들이 친구들끼리 가족여행이라도 가려면, 특히 해외여행이라도 가려면 많은 갈등과 제약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요즘에는 엄마와 딸들의 해외여행도 무척 많아졌고 기혼여성 혼자 제주도나 해외 등지에서 한 달 살기 체험에 나서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가족들과 함께라면 금상첨화겠지만 혼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가족을 내팽개치고 그게 뭐 하는 짓이냐고 비난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다. 20년 같이 사는데 한 달 잠깐 따로 산다고 큰일 벌어지지 않는다. 아내도 1달간의 근속휴가 때 혼자서 제주 한 달 살기를 계획했다가 안전 및 여러 문제 등으로 남편과 둘이서 2주간의 제주여행을 하였다. 덕분 제주에 사는 친구도 같이 만나고 색다른 문화 체험을 여행에서 함께 할 수 있었다.
(참고글 / 다름이 있는 여행길 (brunch.co.kr))
어떻게든 떠날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가족들과 여행은 삶의 연속이라면 친구들과의 여행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 가정일과 육아에 매여 여전히 남편보다 더욱 많은 고생을 하고 있는 아내들한테 삶의 활력소를 느끼게 해 주면 어떨까? 아내가 스스로 알아서 활력소를 찾는다면 뭐 할 말 없지만, 여행을 떠나려는 아내를 막아서는 일은 없기를. 설령 아내 혼자서 다녀오겠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나저나, 네 번째 친구들과의 해외여행 때 아내는 뭐라고 말을 한 뒤 떠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