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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는 소 Sep 25. 2022

다름이 있는 여행길

구르는 소는 아름답다 - 제주 본태박물관 방문기

추석 연휴를 전후로 하여 아내와 같이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결혼 20주년이기도 하고 아내가 1달간의 휴가를 받은 김에 겸사겸사 다녀왔습니다.

태풍 힌남노의 위협도 있었지만, 숙소에서 높은 파도를 구경하고 제주 곳곳의 카페 구경에 현지인들의 식당을 방문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왔습니다.


이번에 방문했던 곳들 중에 기억에 남는 곳이 서귀포시 안덕면에 위치한 제주 본태박물관입니다.

안도타타오라는 건축가가 설계한 박물관 이래서 유명하기도 하지만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이 전시된 곳이기도 하지요.

박물관 입구 근처에 위치한 방주교회도 너무 멋져서 본태박물관에 대한 기대치를 낮출까 봐 약간 걱정이 되었지만, 박물관의 구조물과 전시작품들이 알차서 매우 흡족했습니다.


전날 안덕면의 제주 곶자왈 도립공원을 방문한 터라, 이런 곶자왈을 밀어내고 세워낸 본태박물관의 존재 이유가 못내 미덥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연과 인공의 어울림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거기에 기댄 인간의 겸손함과 순응을 느껴보면서 숙연해지는 순간들이 몇 번 있었습니다.

철재, 목재, 플라스틱 등 다양한 건축자재가 있겠지만 시멘트를 선택/사용한 건축가의 생각,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여낸  채광과 물의 흐름, 관람객의 동선과 눈높이에 대한 건축가의 도전의식  등을 느껴보는 건 전시작품들을 보는 것만큼이나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추석 당일 오전에 방문해서 여유롭게 박물관을 둘러본 것도 본태박물관에서의 좋은 추억을 남기는 것에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오후가 되나 가족단위로 많이들 오시더라고요.


여행을 가면  박물관을 종종 가는데요. 이번 박물관 탐방 중에는 색다르게 그림 그리기 체험을 했습니다.

입장권을 끊으려는데 '본태 드로잉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있더라고요. 도화지와 크레파스, 연필, 지우개, 돗자리, 앞치마로 구성된 드로잉 kit를 무료로 1시간 동안 대여해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갑자기 아내가 "이거 해보자"하더니 결국 관람을 다 마친 후 키트를 받아 드로잉을 했습니다.


전 그림을 잘 못 그리고, 여행 중 이런 활동을 하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작품 보고 딴 데 가서 빨리 다른 일정해야지, 가만히 앉아서 잘하지도 못하는 그림 그리기라니요.

그런데, 해보니까 나쁘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였을까요? 한두 곳 못 보면 어떻습니까?

 못 그리면 어떻습니까?

그 과정 자체가 여행인걸요^^


제 그리기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아내의 그리기 실력이 좋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연필로 스케치만, 아내는 크레파스로 색칠까지 하며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인공과 자연, 시멘트와 물, 폐쇄된 공간의 어둠과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 연필 스케치와 크레파스 드로잉, 낙서하듯 그림과 화가스러운 그림, 자연을 그린 아내와 시멘트 인공 구조물을 그린 남편, 남자와 여자, 가공의 커피음료와 자연의 천혜향 스까지.


다름이 있는 본태박물관  여행. 그러나 즐거움과 행복함이 묻어나는 여행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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