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스센스 여행기 11 - 아들입장에서 쓴 식스센스 여행기 / 아들편 1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의 고통과 기쁨의 과정을 직접 체험한 엄마의 느낌이야 말로 표현하기 힘들겠지만 첫 생명을 안아보는 아빠의 느낌도 그에 못지않다.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며 생겨난 생활력은 배우자가 10개월 동안 품고 있다가 안겨준 작은 생명을 안으면서 2배가 된다. 가정을 책임질 온전한 성인으로서의 책임감이 생기는 것이다. 뱃속의 아이를 품에 안으며 '내가 너의 평생 바람막이가 되어 줄게'라고 흐느끼는 엄마의 첫 마음과 다르지 않다. 작은 핏덩이가 응애하고 울어댄다. 이제 아빠가 된 것이다.
첫아이는 무탈하게 태어나 할머니와 엄마의 많은 사랑을 받고 컸다. 딸이 귀한 집안이라 첫째는 딸이길 원했지만 낳고 보니 아들이었다. 딸아들 상관없다던 할머니는 그래도 첫 손은 아들이길 원하셨는지 아들이라는 말에 매우 좋아하셨다. 그렇게 첫째는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어른들의 기대와 관심 속에 잘 성장해 주었다.
모유수유의 장점에 강한 확신을 갖고 있던 아내는 아이가 2살이 될 때까지 모유수유를 멈추지 않았다. 둘째와 셋째 아이도 각각 1년 이상 모유수유를 했을 정도로 엄마는 아이들과의 애착관계형성에 공을 들였다. 그래선가. 세명의 아이들 모두 크게 모난 성격 없이, 착하고 순하게 잘 자라주었다. 첫째가 3살이 되던 무렵, 둘째가 태어났으니 첫째는 자기의 사랑파이를 나눠줘야 했다. 금방 셋째가 태어났으니 나눠줘야 할 사랑파이가 더 많아졌다. 오로지 혼자 받았던 사랑을 동생들에게 나눠주면서 동시에 어린 동생들도 조금씩 돌봐야 하는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첫째는 한 가정의 고독한 장남이 되어간다.
첫째가 만 3살, 둘째가 생후 6개월일 때 가족이 홍콩과 태국으로 첫 여행을 갔는데 우리 부부의 관심은 6개월짜리 둘째에 쏠려 있었다. 떠날 때부터 도착할 때까지 이 어린 영아가 덥지는 않은지, 아픈 데는 없는지, 땀띠는 안 생겼는지, 배변은 잘하고 있는지, 잠은 잘 자는지 등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아들은 주로 할머니가 챙겼는데 밤에 잠을 주무실 때도 손자와 함께 자고 여행지에서의 체험과 사진촬영, 식사 등에서도 손자와 함께였다. 그래선가. 아들은 성장하면서 가족여행할 때면 할머니를 꼭 챙기고 항상 할머니의 숨은 여행친구가 되어 주었다.
셋째가 태어나면서 6명이 함께 한 가족해외여행은 어른 1명당 아이 1명이 배치되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이 조금씩 크면서 점차 아이들 3명이 같이 놀고 함께 움직이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 중심으로 배치되었다. 자기들끼리 밤새 재미나게 놀고는 싶지만 여전히 보호가 필요했다. 할머니도 말이 안 통하는 해외에서 혼자 방을 쓰는 것에 대해 일말의 두려움을 갖고 있어 아이들이 할머니와 같은 방을 쓰게 했다. 셋째 막내는 아빠엄마와 같은 방을 쓰다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오빠언니와 함께 같은 방 투숙객이 되었다.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부부는 2인실을 배정받아 여행일정에서 조금씩 쉴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동생들을 둘러 모으고 할머니를 챙기며 아빠의 엄한 잔소리와 엄마의 온갖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자리. 이게 장남인 아들의 역할이자 숙명이다. 수년간 여러 여행지를 돌며 얼마나 장난치고 자유롭게 놀고 싶었겠는가? 본인이 부여받은 시간에 재미와 놀이를 조금씩 내려놓으면서 타 가족들의 기분과 일상을 챙겨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매년 가족여행을 통해서 조금씩 쌓였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중이염으로 고생을 하던 아들이었다. 본인도 여행 중 귀가 아파서 고생을 하면서도 투정 부리는 동생들 앞에서 아픈 기색을 크게 낼 순 없었다. 묵묵히 이러저러한 것들을 참아내던 어린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애처로움과 대견함, 자랑스러움을 매년 느꼈다. 아프니까 다음엔 여행 가지 말자고하면 그때까지 다 나을 테니 다시 여행 가자며 환하게 웃던 아들이다.
내 나이 스무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20년 동안 많은 곳을 같이 다녔겠지만, 돌아가신 뒤 다시 20년이 지나가니 기억 속에 남아 떠오르는 장면은 이제 많지 않다. 무거운 텐트를 짊어지고 가족들과 섬 순례여행을 한 임자도 캠핑, 아버지와 단 둘이 갔던 월출산의 갈대밭 풍경, 아빠랑 누나와 함께 관람한 영화 E.T의 감동 등이 자주 떠오른다. 무언가 좋았던 것이 있고 그 당시 내게 특별한 인상을 주었으니 기억에 남았으리라.
내 아들은 첫째이자 아들로서 나와의 어떤 기억을 남겨놓을까? 발리숙소에서 본 원숭이들의 몸놀림과 나비들의 날갯짓, 아빠와 단둘이 떠났던 일본에서 자전거를 타고 촌길을 누비며 느꼈던 바람숨결, 롤러코스터에 매달려 아빠와 손을 잡고 바라본 유니버설스튜디오의 밤풍경, 비바람과 높은 파도를 헤치고 탐방했던 필리핀 지하강동굴의 박쥐눈빛, 라오스 방비엥에서 먹었던 길거리 샌드위치의 맛 등등...
내게는 매년 가족 해외여행을 통해 여러 개의 모습들이 기억 속에 남았는데 아들의 기억 속엔 어떤 것들이 남았는지 모르겠다. 성인이 된 이후 어떤 것들이 계속 남아있을지도 궁금하고. 싱가포르 국경을 넘어가는 버스 안에서 계속 잤던 기억과 PMP(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휴대용 소형미디어기기)의 게임화면만 머릿속에 남았으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
하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면 어쩌랴. 가족들과 함께한 그 찰나의 순간이 기억이자 추억인 것을.
아이들은 금방 큰다. 첫째는 금방 성숙해지고 말이 없어진다. 고민하지 말고 일단 같이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