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연코 쓰레기를 버린 적이 없다. “에이 거짓말 하지마!” 혹은 “뻥 치시네”라고 불쑥 마음의 소리를 뱉어내고 싶은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진짜니 믿어주시라 구차하게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들이 중1 때 부산 화명생태공원으로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다. 참가자들이 숲해설가와 함께 생태공원을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환경 정화 활동이었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온 아들이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까지 살면서 쓰레기를 한 번도 버린 적 없는 사람 있나요?” 활동가님의 질문에
아들이 손을 들었고, 15명 중 혼자였다고 한다. 그러자 정말 대단하다며 칭찬해줬고 모두에게 박수까지 받았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내 기분까지 좋아졌다, 역시 내 아들이다.
그날 아들이 받은 박수는 오랫동안 가슴속에 저장되었을 것이다. 사소한 일이지만 자신의 행동을 잘하고 있는 일이라 인정받았으니 스스로 뿌듯했을 것이다.
작년 6월 도서관에서 <1일 1 환경 1챌린지>라는 ‘지구환경의 날’(6월 5일)을 기념하고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나의 관심 분야이기도 하여 바로 참여를 희망했다. 매일 지구를 위해 한 가지씩 각자 할 수 있는 실천을 인증하고 커뮤니티에 사진을 공유하면 되었다. 나 역시 쉽고, 간단한 것부터 실천해 보면서 인증샷을 남겼다.
1일차 외출 시에 텀블러 휴대하기, 2일차 일회용 비닐 사용 안하기, 3일차 유리병, 지퍼백 재활용하기, 4일차 환경 관련 그림책 읽기, 5일차 대중교통 이용하기, 6일차 자투리 종이 활용해서 책갈피 만들기…먹을 만큼 음식 조리해서 먹기, 우유 팩 씻어 말린 후 배출하기, 마스크 끈 잘라서 버리기, 포장 음식 주문 시 다회용기 사용,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기 등등. 매일 매일 새로운 인증샷을 올리기 위해 고민하게 되었다. 매일 똑같은 활동이어도 상관없었지만, 참여자들은 서로 앞다투어 신선한 아이디어의 인증샷을 위하여 노력하는 듯했다. 아이디어가 바닥났을 때 비로소 ‘플로킹’(걷기와 쓰레기 줍기의 합성어)이 생각났다.
‘플로킹’은 산책을 통해 건강을 챙기고, 쓰레기를 주으며 환경을 지키는 환경보호 운동이다. 하지만 챌린지 기간 동안 고작 두세 번밖에 하지 못했다. 부러 시간을 내어, 지속적으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챌린지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에 정답 같은 결과가 나에게 나타났다. 한 달 동안의 프로그램이 마무리될 때까지 모든 참가자가 최선을 다했고, 도서관에서는 선물도 준비해 주었다. 휴지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손수건, 재생 펄프 연필, 그리고 고급볼펜이었다. 개인적으로 잘 해내어 기분 좋은 일인데, 선물까지 받게 되니 금상첨화였다. 한 달 동안의 챌린지는 마무리되었지만 커뮤니티에 공유했던 내용은 지금도 계속 실천 중이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려는 의지를 다진다. 작년 챌린지의 영향 때문인지 올핸 1주일에 한 번 정도 플로킹을 할 것이라고 정했다. 계획과는 달리 쉽지 않았다. 벌써 6월이다. 올해 절반의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꼽아보면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정도이니 민망하다. 계획했지만 실천한 것은 한 달에 겨우 한 번 정도였다.
플로킹은 마음이 내키는 날, 갑자기 하러 갈 때가 많다. 집을 나서 아파트 입구에서 인근 공원을 지나 초등학교와 연결된 인도까지가 나의 플로킹 주 무대다. 더 멀리까지 가고 싶어도, 이내 20리터 종량제봉투가 가득 차버린다. 흐르는 땀은 덤이다.
쓰레기를 줍는 날이면 아는 사람을 꼭 만난다.
“유민 엄마 뭐해요?”
“안녕하세요! 쓰레기 줍고 있어요.”
“쑤니 이모, 뭐 하는 거죠?”
“쓰레기 줍는 거야.”
만나자고 약속한 것도 아닌데, 자주 만나진다.
처음 플로킹할 때는 남의 시선도 의식이 되었다. 쓰레기 줍는 나를 동물원의 동물을 바라보듯 쳐다보는 것 같아서였다. 칭찬을 들으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칭찬이라도 듣게 되면 부끄러웠고, 남이 내 행동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 불편했다. 여러 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다른 이가 덜 신경 쓰였고 점점 편안해졌다.
오늘, 내가 플로킹을 한번 한다고 해서 그 길이 일주일 동안 깨끗하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반나절만 지나도 그곳은 또 쓰레기가 버려져 있는 길이 되어버린다.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다음엔 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버린다. 그러다가 ‘그래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또 나를 지배한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라면,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라면 좀 낫긴 하겠다.
길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를 볼 때면 간혹, 이러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쓰레기 줍는 일자리를 만들어 나를 고용하고, 임금을 주면 좋겠다고. 돈도 벌고 거리도 깨끗하다면 나에겐 일거양득일 텐데 말이다. 오로지 내 희망 사항일 뿐이다. 그것보다 우선 쓰레기봉투와 집게라도 지원된다면 플로킹하기 좀 나아지지 않을까? 분명 더 자주 하게 될 것이다. 쓰레기봉투 지원해주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좀 알아봐야겠다. 매일 플로킹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쓰레기 버리지 않는 일은 매일매일 실천할 수 있다. 무엇이 더 쉬운 일인지 모든 이가 생각했으면 한다.
기후 위기는 이제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되어버렸다. 기후비상사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지구환경 전문가는 아니다. 그렇지만 환경을 지키기 위해, 더 심각해지지 않도록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먹을 만큼만 음식 조리하기,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고기 없는 밥상 차리기 등 작고 작은 실천에 불과하다. 눈에 띄는 변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해답은 없고 질문만 자꾸 하게 된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이 시대의 어른이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노력은 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작은 실천가들이 많을 것이라 믿고 싶다. 그래야만 힘이 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20리터 종량제봉투와 부엌에서 쓰다가 플로킹용으로 용도 변경된 스텐 집게를 들고 문을 나선다. 나는 우리 동네 쓰레기 줍는, 자칭 환경운동가이다.
2022년 <뭐가 될 줄 알고 > 쑤니x와이주 수록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