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이야기-6

우울증 환자의 정신과 이야기

by 으농

최근까지의 정신과 의사를 만난 이야기를 다 적었다.

오늘은 정신과를 다니고 우울증 약을 먹은 이후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나는 머릿속의 생각을 쉬어본 적이 없다.

이렇게 글을 적을 때는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내 말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들릴지를 걱정한다.

사람들과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할 때는

그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마음을 유추한다.

내 말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지

내 이야기를 잘 듣고는 있는지 살핀다.

혼자 있을 때는 과거의 순간이 떠오른다,

주로 내가 어떤 사람에게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 순간이 떠올라 후회하고 자책한다.

그럴 때면 입에서 '사랑해'라는 말을 뱉는다,

남편을 만난 뒤 생긴 습관이다.

사랑해라고 말을 하고 나면 그런 생각을 한다.


'이런 말실수를 하는 나이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여기 있어.'


속으로 괜찮아, 그 사람은 다 잊었을 거야.

그 사람은 기억도 못할 거야.

괜찮아. 지나간 일이야. 돌이킬 수 없는 일이야.

라며 마음을 진정시켜 준다.


나는 이렇게 쉴 틈 없이 머리가 복잡하다.

생각을 쉬어본 적이 없다,

잠드는 순간까지 머릿속이 늘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그런데 약을 먹으면

생각들이 조금 잠잠해진다.


약을 먹지 않을 때는 너무 여러 생각들이 쉬지 않고 튀어나와

한 가지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힘이 들었다.

약을 먹고 난 뒤 자리에 앉아 하나의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됐다.

아직 하나의 이야기라지만,

이야기 안에 글들이 정신없이 얽혀있는 것 같다.


아직은 약을 먹어도 무기력할 때가 많다.

그나마 하나 나아진 것이 있다면,

사람을 만나는 게 좋아졌다.

사람들에게 만나자는 말을 먼저 하지 않았다.

거절당하는 게 싫어서였다.

요즘은 누구에게 만나자는 말을 먼저 하는 게 좋다.

승낙받는 기분이 좋다.

거절하면 다음으로 다시 제안한다.

그때라도 승낙해 주면 그걸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웃기는 한 가지.

내가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니니,

주변에 나 같은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속으로

저 사람도 병원에 가보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병원에 가고 상담을 하고 약을 먹으니

그동안 왜 미뤘을까 왜 진작 병원에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도 모두 나만큼 우울한지도 모르고

병원에 간다고 다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면서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기 전에는 티브이나 영화에서 사람들이 울면

꼭 그렇게 따라 울었다. 눈물이 공감 가서 운다 생각했다.

가슴 아픈 뉴스를 보면 거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올해 병원을 다시 가기 얼마 전, 나라에 큰 일들이 많이 생겼다.

비행기 사고가 나고, 산불이 나고...

매일매일 그 뉴스들을 찾아보면 울고 또 울었다.

그 감정에 매몰되어 삶이 더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약을 먹고 나니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그 감정에 묻혀 하루를 망치지 않았다.

뉴스 속 사연에 가슴 아파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청원이나 동의 같은 걸 찾아보고

나는 내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파란 하늘이, 푸른 산이, 흔들리는 강물이

슬퍼서 울지도 않는다.

내가 가여워 혼자 꺼이꺼이 울지도 않는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 과거는 똥을 밟은 경험이 뿐이라고.

똥 밟은 걸로 현재를 망치지 말라고.

그건 지나간 거고 지금은 지금의 나를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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