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규 Dec 15. 2022

소주가 필요한 사이

장녀는 아빠와 얘기하기 위해서는 술이 필요하다.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


집안에서 말이 별로 없는 것도

누가 봐도 아닌 일에 고집을 부리는 것도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조용히 못 들은 척 넘겨 버리는 것도

굳이 힘들었던 일을 내색하지 않거나 축소시켜 별 거 아닌 일처럼 말해버리는 것도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남을 배려하느라 주변 사람을 오히려 답답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도


술을 마시면 말이 좀 더 편하게 나오는 것도


가족 내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담당하는 엄마와 귀여움을 담당하는 막내가 없을 때 나와 아빠 사이에서는 사실 큰 대화가 오가지 않는다. 기껏해야 최신 뉴스 트렌드, 아빠가 잘 아는 자동차 관련 얘기 등.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묻기에는 각자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조리 껏 얘기할 줄을 모른다. 


그런 아빠와 나는 가끔 술친구가 된다.


나는 아빠한테 술을 배웠고 여전히 제일 편한 술친구도 아빠다. 제일 편한 모습으로 술을 마시고 제일 주량을 넘기면서 마시는 것도 아빠와 마실 때인데, 사실 그때도 그다지 많은 대화를 하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고 다 마셨다 싶으면 자연스럽게 자리를 치운 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자거나 할 일을 한다. 


최근 아빠와 함께 몇 시간을 함께 보낼 일이 있었는데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었으면 짧은 시간 동안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잠깐의 아이쇼핑도 하다가 집에 들어갔겠지만 아빠와는 차량 점검을 하고 술을 곁든 식사를 한 뒤 집에 왔다.


아빠에게 식사를 마친 뒤 차를 마시자고 얘기해봤지만 깔끔하게 거절을 당했다. 근데 차를 굳이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았다. 그 당시 나도 그냥 술이나 더 마시고 싶었다. 이것도 좀 닮은 듯.


아빠는 철저하게 딸 둘에게 다른 모습을 보인다. 간단하게 퇴근하고 나를 보면 '어, 왔어?'라고 하고 막내를 보면 '왔어~?'라고 하면서 얼굴 한 번 더 들여다보려고 방까지 찾아 들어가서 괜히 한 소리 듣고 나온다. 그래도 저렇게 다르게 대해놓고 막상 내가 필요할 때가 되면 막내 대하듯이 은근슬쩍 와서 '하자~'라고 한다. 나는 이것도 닮은 것 같다. 


아무튼 가끔 아빠의 답답한 모습을 보면 왜 저럴까 싶다가도 어느샌가 내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으면 어쩔 수 없는 아빠 피를 물려받은 딸자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아빠와 나는 술을 좀 줄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은 매일 한다. 그리고 매일 눈앞에 모든 게 안주로 보인다. 큰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떻게 살고 있냐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