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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인간사슬

by 박순영

날은 맑아졌는데 컨디션은 다운되었다.

어제 오늘 일이 좀 있어서 계속 신경을 썼더니 금방 탈이...

큰일이다 파주가면 의료인프라가 열악해서 안그래도 걱정인데 이래서야.

빨리 운전을 하는수밖에.

급할때 어느병원이라도 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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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심각한건 아닌데 이런저런 뒤얽힌 관계가 주는 스트레스가 만만치가 않다.

건 그렇고, 오늘도 짐정리는 계속될테고 내일이 분리배출이라 책도 끄집어내야 한다.

누차 애기했지만 책은 이사의 적이다. 어쩌면 반이 아니라 거의 2/3를 버리고 갈듯하다.

손이 안가면 다 폐지일 뿐이다.


사랑이 사라진 맞잡은 손가락이 그저 얼어붙은 나물에 불과하다고 쓴 어느 미국시인의 시구(詩句)처럼

온기가 사라진, 마음이 다한 상태의 인간은 그냥 단순한 유기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목숨만 붙어있지 기대나 희망, 바람과 지속성을 상실한 그림자일뿐.


단순하게 사는거 같아도 나도 인간사슬에 얽힌 인간이다.

정말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인것도 같고..

그래도 늘, 그 '경계허물기'를 하면서 아주 가끔은 치열하게 저항하고 갈등한다. 이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익현의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쯤 메시지가 온다.

"몸이 이렇다보니 성 기능도 망가진 거 같아"라는.

차를 세우고 온유는 그 문장을 반복해서 읽어 본다.

그리고는 마지막 결심을 하고 물어 본다.

"날 사랑은 해?"

그 말에 익현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결혼이 꼭 섹스를 의미하는 건 아니잖아"라는 온유의 말에

"그래도 너 한창땐데...그거 없이 살 수 있어?"라는 답문이 온다.

익현이 원하는걸 정확히 알고나니 온유는 오히려 홀가분해진다. 그녀는 차를 돌려 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그날따라 평소엔 안 보이던 별들이 촘촘히 하늘에 박혀있다.-별이 빛나던밤 그들은



원고가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이 이처럼 홀가분하게 와닿은 적도 없다. 그리고는 자고 있는 동욱의 옆에서 다 식어버린 가락국수를 집어 전자레인지로 가져가 잠시 덥힌 뒤 경혜는 허기진듯 먹어치운다. 그러다 힐끔 쳐다본 창밖으로 오랜만에 눈이 내린다. 그리고는 다시 침대로 눈을 돌린다. 예전 동욱과 함께 뒹굴던 그 침대가 지금은 텅 비어있다. 그래도 그녀는 마치 그가 있는 것처럼 시트를 가지런히 하고 베개 두 개를 나란히 붙여놓는다. 그리고는 "자?"하고 중얼거린 뒤 널따란 침대의 한 켠을 차지하고 누워서 마치 동욱이 옆에 있기라도 한 듯 그의 베개를 어루만지다 그 속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고 그녀는 죽음 같은 깊은 잠에 빠진다.-겨울에 부르는 이별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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