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진이>

아이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경수와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인다.

by 박순영


가능하면 여주인공 유영아와 닮은 아역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경수는 늦게까지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선이 여리면서도 이목구비가 또렷한 그런 10살 내외를 찾아야겠다고 맘 먹고 다들 퇴근한 TV제작국에 붙어있는걸 보면서 , 야외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동료PD 세림이 , 여태야? 라며 자판기 커피 한잔을 내민다. 땡큐, 하고는 , 쉽지 않네,하며 경수는 좀 봐봐, 하면서 아역들의 사진을 보여준다.

어디보자, 하다 세림이, 이 친구 비슷하지 않어? 하고 하나를 가리킨다. 그런가? 하고 경수는 사진과 프로필을 본다. 나이는 경수가 바란 열 살이었지만 프로필이 너무 빈약했다.연기가 될까? 라고 세림에게 묻자, 리딩시켜보면 알지,라고 그녀는 수고, 하고 퇴근준비를 한다.


김진. 나이 열 살, 2년전 아침 일일극 출연,이 이력의 다였다. 진수는 고민하다 실물이나 한번 보자는 심정으로 진.에게 연락한다. 진.의 휴대전화도 기재돼있지만 경수는 보호자인 미정에게 전화를 한다. 리딩 한번 해보겠냐는 말에 미정은 상기된 반응을 보인다.

진.은 나이는 열 살이지만 여섯 살 정도의 배역도 어울릴만큼 베이비페이스였다. 리딩은 제작국 앞 로비에서 이루어지고 진.은 보호자인 미정이 긴장해 있는것과는 달리 차분하게 주어진 대사를 또박또박 읽어나간다. 경수는 내심 이정도면 됐다고 생각한다. 그후 두엇을 더 리딩시켜본 결과 진.이 제일 낫다는 결론을 내리고 미정에게 전화를 건다. 전체 리딩때 오라고. 미정은 , 정말요?하더니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좋아했다.

경수가 이번 특집극 여주인 영아에게 진.의 사진을 보여주자, 어머 나 어릴때랑 똑같네,라며 맘에 들어한다. 그렇게 전체 리딩이 열리고 진.은 무리없이 자기 대사를 소화해낸다. 리딩이 끝나고 작가인 선정 역시 ,어디서 저렇게 똘똘한 친구를 찾았냐며 흡족해한다. 진이 잘합니다,라고 밖에서 기다리는 미정에게 경수가 이야기하자 자기가 연습 많이 시켰다며 우쭐댄다. 그러면서 감독님 점심 사드리고 싶다는 말을 해온다. 하지만 촬영전엔 사적인 만남은 되도록 안하는터라 경수는 에둘러 거절한다. 미정은 조금은 섭섭해하며 그럼 다음에 꼭,요 라며 진.을 데리고 승강기에 오른다. 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승강기 문이 닫히기 직전, 경수에게 손을 흔들어보인다. 그런 진.이 귀엽다고 경수는 생각한다.


첫촬영때 여주인 영아가 한시간이나 늦는 사태가 발생한다. 광고촬영이 지연됐다며 영아는 경수에게 사과한다. 경수는 영아에겐 눈길도 주지않은채 촬영에 들어간다. 리허설땐 잘만 하던 진.도 경수의 처음 보는 굳은 표정에 잔뜩 위축돼서 대사를 중간에 잊어버리거나 버벅댄다.

“진이 너 그렇게 할래?”경수가 지적하자 진은 다시할게요, 라고 자기분량을 다시 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중간에서 막히고 경수는 험상궂은 얼굴이 된다. 저만치서 촬영을 지켜보던 미정은 안절부절하고 대기중인 영아가 와서 진.을 다독인다. 그러자 진.은 참았던 울음을 드디어 터뜨린다. 그걸 본 경수는 내심 진.에게 미안하지만 내색 않고 10분있다 다시 들어간다며 촬영장을 나가버린다.

계속 울먹이는 진.을 한쪽 구석으로 끌고간 미정이 아이를 야단친다. 너 그렇게 하며 짤려,라며. 그 말을 들은 영아가 ,아이를 잘 달래세요,라며 거들자, 경수의 심기가 불편한게 다 영아의 지각때문이라는 듯 미정은 그녀를 쏘아본다. 그 눈길에 당황한 영아는 대본을 체크하는척 하며 세트로 돌아간다.

10분있다 이어진 촬영에서 진.은 가까스로 자기 분량을 해내고 경수는 마지못해 OK를 놓는다.

“진이 잘했어?”라며 동료 세림이 묻자, “미스 캐스팅”이라며 경수는 한숨을 내쉰다. 아직 애기잖아,세림이 진.을 두둔하자 ,열살이 무슨 애기야,라며 경수는 바꿀까?하며 다시 아역들 프로필 파일을 연다. 그걸 본 세림은 ,독하다 진짜, 하며 야외촬영한다며 제작국을 나간다. 경수가 진.을 대체할 아역을 고르고 있는데, 누군가 쥬스박스를 옆에 내려놓는다. 누구?하는 표정으로 보면 미정이 민망하게 웃고 있다.


계속 이런식이면 배우교체할수도 있다고 하자, 미정은 다음번엔 완벽하게 할수 있도록 진.을 연습시켜 오겠다고 한다. 어머니,시죠? 하고 자판기 커피를 홀짝이며 경수가 미정에게 묻자, 이모예요,라며 미정이 대답한다. 언니가 암으로 진.이 세 살때 갔고 이후 형부는 반년도 안돼 진.을 놔두고 재혼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이후로 미정이 계속 진.을 키워왔다고 이야기한다. 그말에 경수는 왠지 진.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죄송했어요,라며 미정이 또다시 식사대접 한번 하겠다고 한다. 그러고 있는데 저만치서 혼자 앉아있는 진.이 보인다. 아이는 경수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시선을 돌린다.

조연출 강.으로부터 야외촬영장소 섭외가 얼그러졌다는 이야기를 듣는 경수는 짜증이 치민다. 건물주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장소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연락을 해온 것이다. 경수는 다른 데라도 빨리 알아보라며 강.을 채근한다.




그렇게 새로 섭외된 곳은 아랍풍의 이국적인 대저택과 그 앞에 분수가 화려한 그런 곳이었다. 진.은 치솟는 분수를 보자마자 아이답게 그리로 달려가 물장난을 치며 좋아라 한다. 미정은 경수의 눈치를 보며 진.을 다독여 촬영에 임하게 한다. 그런 진.을 보며 경수는 자기도 그녀와 아이를 낳았으면 저또래라는 생각에 부드럽게 진.에게 이야기한다. 우리 진.이 오늘 촬영 잘하면 감독아저씨가 아이스크림 사준다,라고 . 그러자 진.은 정말?하고 웃는다.

그렇게 그날 촬영은 무리없이 진행되고 촬영이 끝났을땐 어느새 해가 지고 있다. 진.과 한 약속을 잊어버린 경수가 그냥 가려하자 진.이 옷소매를 잡아끈다. “아이스크림”이라며 진.은 시무룩해한다. 그제야 생각난 듯 경수는 주머니에서 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 진.의 손에 쥐어준다. 아저씨가 바빠서...이모랑 사먹어,하자 진.은,같이 안가요?라며 섭섭해한다.

그렇게 촬영팀과 배우들을 먼저 보내고 경수는 진,미정과 근처 아이스크림 샵으로 향한다. 진은 시럽을 잔뜩 얹은 호두 아이스크림을 선택했고 아이는 있는대로 얼굴에 묻혀가며 먹는다. 우리 진.이 애기네, 하고 경수가 냅킨으로 진.의 입가를 닦아주자 미정이 유심히 그런 경수를 본다. 그러다 문득, 힘들었겠어요,라며 경수가 미정에게 말을 건넨다. 애가 순해서 그닥...이라며 미정이 말끝을 흐린다.

미정네와 헤어져 택시를 잡아타고 오는 경수는 왠지 아득해지는 느낌이다. 자신 역시 외가에서 컸다는 것이 새삼 떠올랐다. 아버지의 파산으로 경수의 부모는 경수가 딱 지금 진.이만 할 때 갈라섰던 것이다. 그리고는 경수는 나몰라라 하고 새사람들과 재혼했다. 진.이가 외롭게 컸구나, 라는 생각이 경수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촬영이 없는 날을 택해 경수는 진.의 집으로 차를 몬다. 집은 다세대 2층이었고 미정은 뜻밖이라는 얼굴로 경수를 맞이한다. 경수는 순간 쑥스러워 , 그냥 지나는 길이라며 둘러댄다. 미정은 누추하지만 들어오시라고 경수를 안으로 들인다. 경수는 오늘 셋이 드라이브라도 가겠냐고 넌지시 물어온다. 그때 화장실에서 배를 문지르며 나오던 진.이 경수를 보고는 사뭇 긴장된 얼굴이 된다.


경수가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미정은 공들여 화장을 한다. 그런 미정을 보며 진.은 나두, 라며 자기 얼굴을 가까이 들이댄다. 그러자 미정은 비비를 살짝 진.에게 발라준다. 진.은 끈적거린다며 손등으로 닦아내고 미정은 그런 진.을 보며 웃는다.

그렇게 그날 경수는 진과 미정을 태우고 외곽으로 드라이브를 나간다. 진.은 계속 신기한 듯 바깥 전원풍경에 눈을 준다. 제가 아직 차가 없어서요,라며 미정이 말한다. 그말에 경수는 애가 답답하겠네, 하며 뒷자리 진을 돌아본다. 오늘 뭐뭐 하고 싶어? 라고 경수가 묻자, 진.은 음, 하며 상상을 해댄다. 그런 진.이 경수는 마냥 귀엽다. 경수는 자기 역시 이런적이 있다고 기억해낸다. 오랜만에 어린 경수를 찾은 아버지 강.의 차 뒷자리에 타고 잠깐 외곽으로 나갔던 적이 있다. 앞엔 강.의 새여자가 타고 있고 경수는 그녀의 눈치를 보면서도 바깥에 펼쳐지는 낯선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지금 진.이가 그당시 자신과 흡사하다고 느낀다. 저 작은 가슴속에 어떤 상처들이 자리잡고 있을까, 그는 짐작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은 쉬는 틈을 타서 지미집 감독 민.의 품에 안겨 리모콘을 작동하며 논다. 그걸 보는 경수의 마음이 왠지 불안해진다. 그래서 경수는 민.에게 와서 지미집을 철저히 점검하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리고는 촬영은 재개되고 경수는 그날따라 계속 NG를 걸어온다. 그바람에 같은 신을 몇 번씩 되풀이해서 찍고 진.은 지쳤는지 미정의 품에 안겨 잠이 들어있다. 간신히 마지막 씬을 끝내고 다같이 방송국앞 고깃집에서 모이기로 하고 세트장을 나온다.

배우들과 어울려 앞서가던 경수는 순간 진.이 안보이는 걸 알아채고 미정을 찾지만 그녀 역시 안보인다. 그는 본능적으로 서둘러 세트장으로 돌아간다. 두꺼운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경수는 자신이 예상한 참사가 벌어진걸 보게 된다. 미정은,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 진.을 부여잡고 어쩔줄 몰라하고 있다.

아이가 지미집에 올라가 놀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졌다는게 미정의 설명이었다. 그럼 빨리 병원으로 옮겼어야죠!라며 경수가 발끈 화를 내자 미정은 무안해한다. 의식없는 진.을 들쳐업고 경수는 근처 병원으로 달려간다. 그 뒤를 미정이 불안한 얼굴로 따라간다.

진.은 이마에 열다섯 바늘을 꿰맨채 붕대를 감고 누워있다. 경수는 조연출 강.에게 진의 분량을 최대한 뒤로 빼라고 전화로 지시한다. 계속 죄송해요,를 연발하는 미정이 경수는 너무나 짜증난다.제가 잘 봤어야 하는데,라며 미정이 울먹거린다. 그말은 들은체도 않고 경수는 진.의 링거 꽂친 작은 손을 꼭 쥐어본다. 아이손이 이런거구나,라며 그가 낮게 뛰고 있는 진.의 맥박을 느껴본다.

그걸 보던 미정은 갑자기 낯빛이 어두워지며, 여긴 제가 있을게요,라며 은근 경수가 가주빌 바라는 내색을 한다. 하지만 경수는 아랑곳않고 진.만 쳐다본다. 그러자 감독님, 하고 미정이 다시 채근하고 경수는, 아이는 한눈 팔면 금방 사고치는거 몰라요?라며 버럭 화를 낸다. 그리고는 시트를 정리해주고 다시 진.의 조그만 손을 꼭 쥔다.

그러자 새된 소리로 미정이 말한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라며 경수를 질타한다. 경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미정을 쳐다보고 미정은 경수로부터 아이의 손을 거칠게 떼어놓는다. 경수는 발끈 화를 낸다. 당신이야말로 무슨 짓을 하는거냐고. 그러자 처음부터 이상했어,라며 미정이 냉소를 흘린다. 경수는 그말의 함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는 다음날, 특집극 담당 연출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경수는 cp 조.에게서 듣게 된다. 왜냐고 묻자, 아역배우 보호자의 탄원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말에 경수는 아역...아역..하다 미정을 떠올리고 그녀가 흘리던 비웃음을 상기한다. 도통 이유를 모르겠다는 경수의 말에 조가 화난 듯이 말한다. 너 그런거였어? 라며.

경수는 정당한 사유없인 특집극 연출자리를 내줄수 없다고 항변한다. 너, 애 건드렸다며,라고 조.는 경수를 툭 때리며 말한다. 건드...경수는 어이가 없다. 그렇게 말하든가요? 라고 하자 조.는 세상 달라졌어. 손조심을 했어야지,라며 책상위에 쌓여있는 대본더미를 들고 저만치로 옮겨앉아 훑어본다

.

경수는 결국 특집극 연출을 후배 환.에게 내어주고 한달 정직 처분을 받는다.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오던 경수는 자신이 진.에게 했던 행동을 되짚어본다. 아무리 복기를 해도 자기가 정직을 받을 만한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결심한듯 진.의 집으로 향한다. 여러번 벨을 누른 후에야 굳은 표정의 미정이 문을 열어준다. 진인 ?하고 경수가 들어서려 하자 미정은 그가 못들어오게 막는다. 밖에서 이야기하자,며 그를 근처 놀이터로 데려간다.

그렇게 둘은 그곳에서 말다툼을 한다. 아동 성추행이 얼마나 중범죈줄 모르냐며 cp.조가 머릴 조아리며 사과를 해서 최소한 고소는 안했다며 미정은 경수를 몰아댄다. 경수는 계속 오해라며 미정에게 이야기하지만 다신 그러지 말아요! 라며 미정은 먼저 놀이터를 벗어난다.

일주일을 꼬박 오피스텔에 처박혀있자니 갑갑도 하거니와 진과 자기사이엔 더이상 허락된게 아무것도 없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그러자 금방 우울해져서 그는 무작정 차를 몰고 나간다. 그러나 얼마 못가 갓길에 차를 세우고 담배를 한 대 피운다. 그리고는 진정 세상이 말하듯 자기가 진.을 희롱한건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러고 있자니 화가 복받친다. 해서 그는 차를 돌려 진.의 집으로 향한다.

지난번 미정과 다퉜던 그 놀이터를 지나는데 진.이 또래 남자 아이와 정글짐을 타며 놀고 있는게 보인다. 진.이 오르기 버거워하자 남자아이가 진.의 손을 잡아준다. 둘은 그렇게 미소를 주고 받는다. 순간, 경수는 화가 치밀어 차문을 거칠게 열고 차에서 내려 진에게로 간다. 뒤늦게 경수를 본 진.의 이마엔 이젠 붕대대신 대형 반창고가 붙어있다.

“아찌, 나 인제 다 나았어. ”하는데 경수는 진.을 번쩍 들어 정글짐에서 내린다. 그러자 진.이 울먹거린다. 무섭다고...하자 경수는 그런 진.을 가슴에 안는다. 마치 어미새가 새끼새를 품듯이. 그러자 진.이 몸을 비틀며 말한다. 숨막혀... “아찌 좋아?”라고 경수가 진.을 바라보며 묻는다.. 그러자 아이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경수와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인다.



hommage to <Sundays And Cybele ,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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