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푸페>

갈색에 키도 비슷하고 스탠더드 푸들이 맞다.

by 박순영




“이 녀석 맞나요?”

남자는 품에 안고 있는 푸들을 보여주며 지원에게 묻는다. 얼마 전 지원과 집 근처 천변에서 조깅을 하던 애완견 푸페가 지원이 잠깐 화장실을 간 틈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뒤 지원은 광고를 낸 것이다. 종은 스탠다드 푸들이고 체고는 50정도, 갈색.

그리고는 사흘 만에 한 남자가 천변 근처에서 발견했다며 낯선 개를 데리고 온 것이다.

남자는 하얗고 여윈 얼굴에 가는 금테 안경을 끼고 있다. 아마도 머리 쓰는 직업인가보다, 지원은 생각한다.

“잘 보세요 맞는지”

지원은 푸들을 꼼꼼히 살펴본 후 맞다고 거짓말을 한다.

“다행이네요”하며 남자가 푸들을 지원의 품에 안긴다.

“제가 답례라도”지원이 말하자 남자는 손사래를 치며 가겠다고 한다. 그렇게 남자는 가고 지원은 푸들을 한참 바라본다..


아마도 남자도 이 동네 사람일 거라 지원은 생각한다. 그 천변은 아는 사람만 아는 길로 나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원은 내리 사흘 개를 데리고 천변으로 조깅을 나간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아침, 반대편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 남자가 마주 오는게 보인다. 지원의 가슴은 뛰기 시작한다. 지원은 남자 앞에 멈춘다. 그러나 남자는 지원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려 한다. 용기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지원은 “저기요”하고 말을 건다. 그러자 남자가 돌아보며 궁금해하는 얼굴로 되묻는다. 저요?


그렇게 둘은 천변 작은 까페에 마주 앉는다. 이른 시간임에도 까페는 문을 열었고 지원은 지난번 일에 보답하는 의미로 자기가 커피를 사겠다고 한다. 남자는 한사코 그럴 필요 없다고 하지만 지원은 커피 두 잔을 받아서 날라 온다.

“한기준입니다. IT회사에서 기획일 해요”기준은 낯선 여자 앞에서 자기 소개를 하는게 조금은 쑥스러운가 보다.

“양지원이예요. 피아노 가르쳐요 학원에서” 지원이 대답하자,기준은 “아 네..”하며 말끝을 흐린다. 우리 푸페 찾아주셨는데 제대로 보답도 못하고 죄송했어요...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까지 지원이 말을 하자, 동네 이웃인데 돕고 사는 거죠, 라고 그가 대답한다. 그리고는 잠깐 몸을 일으켜 지원 옆에 얌전히 웅크리고 있는 가짜 푸페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러자 녀석은 수줍은 듯, 끙, 소리를 낸다. 귀엽네요, 라며 기준이 웃어 보인다.



그 다음날, 기준과 지원은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천변에서 다시 만난다. 기준은 위 아래 블랙 트레이닝 차림이었다. 안 그래도 야윈 몸이 한층 더 말라보였다. 개는 벌써 아는 체를 한다. 그렇게 셋은 개천을 따라 조깅을 시작한다. 개는 이젠 익숙한지 지원이 잡고 있는 목줄을 팽팽히 하며 둘을 앞서 간다.

“여기 비 오면 진짜 이뻐요” 지원이 말하자,

“나 이사온 지 얼마 안돼요. 그럼 비오는 날 꼭 한번 와야겠네...”라며 지원을 쳐다본다. 그렇게 둘은 왕복 한시간 거리 운동을 마치고 함께 아침을 먹기로 한다.

“남자 친구 없어요?”기준이 국밥을 한술 떠넣으며 묻는다. 눈을 마주치기 쑥스러운지 애먼 데 눈길을 준다.

“그러게요”라며 지원은 엷게 웃는다. 그러자 기준의 따스한 눈길이 지원의 미소에 와서 꽂힌다.

“예전에 알던 여자 이름도 지원이었는데”라며 기준이 남은 국밥을 먹으며 말한다. 근데 전혀 달랐다고. 자기가 그녀 생일선물로 애완견을 선물하려 하자 질색을 하더라는 이야기를 한다. 지원은 그 말에 기준이 혼자라고 생각한다.


“웬 강아지야?” 보름 만에 지원을 찾은 석우가 낯선 푸들을 보며 놀라서 묻는다.

“비슷하지?”하고 지원이 개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부빈다.

푸페 잃어버렸어? 라며 석우는 내심 서운한 기색이다. 그래서 비슷한 놈으로 입양했냐고.

“이번 공사 언제 끝나?” 지원이 저녁을 차리며 묻는다.

“몰라. 건축주가 변덕이 심해. 제일 고약한 케이스지. 나 고파”라며 석우가 지원에게 다가온다. 빨리 먹어,라고 하자 석우는 그게 아니고,라며 지원을 안으려 한다. 그러자 지원은 저만치서 둘을 멀뚱하게 쳐다보는 푸들에게로 재빨리 가며 석우를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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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만난 지 2년하고도 몇 개월이 지났다. 지금 지원이 강사 일을 하는 피아노 학원 원장이 알음알음해서 소개한 자리에 지원이 도착했을 때 석우는 라탄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건축기사라더니 현장에서 곧바로 왔구나 싶게 작업복 차림에 군데군데 흙이 묻어있는 모습이었다. 지원이 적잖이 실망해 그냥 돌아서려는데 뒤에서 석우가 말을 걸어왔다. 양지원씨죠?

그렇게 둘은 사귀기 시작했고 1년째 되던 날 석우는 청혼을 했다. 그날 이후로 지원은 석우를 집에 들이기 시작했고 석우는 틈이 나는대로 지원을 찾아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고 석우는 목마른 사자처럼 서둘러 지원을 안고는 바쁘다며 다시 일하러 나가는게 다였다. 그런 관계가 반복되다보니 지원은 이 사람이 과연 내 짝이 맞나 싶은 의문이 생겼다.


니네 권태기 아냐? 친구 해미가 전화로 그렇게 말했다. 그거 잘 넘겨야 돼. 안그럼 헤어진다?

권태...라는 말이 석우와 자기 사이에 끼어들 줄 몰랐던 지원은 적잖이 당황했다.

“우리 권태기야?”라고 석우에게 직접 물은 적도 있다. 그러면 석우는 “뭐래니”하며 허허 웃고 만다. 그리고는 봉긋한 지원의 가슴을 매 만지곤 했다.

“결혼해도 나 피아노는 계속 가르칠 거야” 지원이 말하면 “맞벌이 좋지”라며 석우는 그녀의 입술을 자기 입술로 덮어왔다. 그러자 어느순간부터 지원은 석우와 자기 사이엔 섹스 이외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 둘의 관계를 고민하며 집 근처 천변을 돌다 유기견으로 보이는 강아지 한마리를 보게 되었고 일주일 간 주인 찾는 광고를 내보았지만 연락이 없어 지원은 “푸페”라는 이름을 붙이고 기르기 시작했다.

녀석은 처음에는 유기견 특유의 경계태세를 보여 서너 번 지원의 손을 물기까지 하였지만, 한밤 갑작스런 고열로 병원을 다녀온 뒤부터는 지원을 받아 들이는 눈치였다. 그렇게 푸페와 지원은 가까워졌고 어느 날부턴가 지원의 유일한 낙은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섰을 때 요란하게 짖어대며 자기를 반기는 가짜 푸페를 보는 것이었다.


“자자”하며 석우가 지원의 블라우스 단추를 풀려 한다. 하지만 지원은 왠지 내키지가 않아 그의 손을 뿌리친다. 왜 그래?라는 눈으로 석우가 쳐다보자, 피곤해서 그래,라며 지원은 석우에게 그만 가라고 한다. 어? 나 없는 동안 바람 난 거야? 라며 석우가 반은 농으로 반은 진지하게 지원을 주시하며 물어온다. 그래, 바람났다,하자 석우는 씩 웃으며, 오늘은 그냥 갈게,라며 지원에게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 지원의 집을 나간다. 그가 나가고 한참을 멍하니 있던 지원은 자기 휴대전화에 저장된 기준의 번호를 물끄러미 본다. 만약 진짜 푸페가 아닌 걸 알게 되면 기준은 어떤 얼굴이 될까, 지원은 상상하다 옆에서 새근대며 자고 있는 녀석의 작은 꼬리를 만지작거린다.

“오늘은 외곽으로 나가볼까요?”지원의 원룸 앞에 차를 대고 기다리던 기준이 물어온다. 그렇게 해서 기준과 지원, 그리고 가짜 푸페는 강과 갈대가 어우러진 서울 외곽으로 드라이브를 나간다.

“왜 여태 남자 친구 없어요?” 기준이 커브를 틀며 물어온다. 운전하는 모습이 나이스하다고 지원은 생각한다.

“그냥요...”라고 하는데 뒷자리에서 낑낑대는 소리가 들린다. 안돼 푸페!라며 지원이 소리를 지르지만 일은 이미 벌어진 뒤였다. 세탁비 주셔야 합니다! 라며 기준이 포기한 듯 개가 있는 뒷자리를 보며 말한다. 기준은 차를 정차시키고 지원은 개가 저질러놓은 뒷처리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어차피 세차할 때 됐다며 기준이 녀석을 안고 쓰다듬는다. 녀석도 딴에는 민망했는지 꼬리를 살살 흔들어 댄다


“거긴 개는 못들어가요”라며 기준이 며칠후 문자를 보내온다. 퇴근후 같이 영화를 보자며 표를 샀으니 푸페를 놓고 나오라는 내용이다. 지원은 그 문자에 가슴이 설레인다. 그 영화를 석우에게 보자고 했던 적이 있다. 그러자 석우는 뭔 영화,라며 귀찮아했다. 그런데 기준은 표까지 끊어놨다며 보자고 하는게 아닌가. 완전 여성 취향의 멜러인 걸 보면 기준이 지원을 배려한 것이다.

지원은 공들여 화장하고 기준이 조금은 화려하다 싶은 플라워 패턴의 쉬폰 원피스를 차려입는다. 그리고는 고데기로 머리에 웨이브를 넣는다. .그런 지원의 행동을 개는 재미 있다는 듯이 쳐다 본다.


영화 결말이 슬펐는지 지원은 두 눈을 꾹꾹 눌러가며 기준과 나란히 상영관을 나온다. 그러다 로비에서 다른 여자와 함께 걸어오는 석우와 맞닥뜨린다. 지원과 석우는 처음엔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얼마나 됐어?”라며 석우가 지원을 몰아세운다. 영화관 근처 까페로 자리를 옮긴 지원과 석우는 처음 만난 사람처럼 어색하기만 하다. “그러는 자기는?”하고 지원은 발끈한다. 그렇게 둘은 답이 없는 공방을 벌이다 헤어지기로 합의보고 까페를 나온다. 그리고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기준과도 이제 끝이라고 지원은 생각난다. 남자가 없다고 거짓말 한 게 들통이 났으니...그리고는 기준을 만나온 날짜를 세어본다. 얼마 안되는 그 기간에 그와 거의 매일 조깅을 하고 근교로 드라이브를 나가고...

기준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둘이 처음 갔던 그 천변 까페에 들어선다. 다른 테이블이 모두 비어있어 금방 지원을 찾는다. 마주 앉은 둘은 말이 없다..그러다 기준이 어렵게 입을 연다. 남자친구 있는줄 알았더라면...하자 지원이 그의 말을 막는다. 헤어졌어요 우리,라고 한다. 그러자 기준이 빤히 지원을 본다...남자는 남자가 알아요. 그 사람, 지원씨 많이 좋아하는 거 같던데, 라며 기준은 식고 있는 커피로 눈을 준다. 두분 잘 어울리던데...라며 기준은 짐짓 시간 보는 척을 한다. 바쁘세요?지원이 안타까워 묻는다... 푸페, 잘 키우시고요...라고 하자 지원은 두 손에 얼굴을 파묻는다. 그러자 기준은 당황해서 그녀를 달랜다. 그러자 지원이 털어놓는다.실은 푸페가 아니예요. 내 강아지가 아니라고, 하면서 지원은 울먹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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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기준은 당황하며 무슨 말이냐고 조금 경직돼서 묻는다. 지원은 당신이 좋아서 거짓말 한 거라고. 그러자 기준은 처음 보고 좋고 나쁘고가 어딨냐며, 테이블 위의 냅킨을 집어 이마의 땀을 닦다가 조심스레 물끄러미 지원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결심한 듯, 그 사람 당신 좋아해요. 내가 느낀걸...하고는 우리, 또 만나면 좋은 친구해요, 하고 커피값을 내고 까페를 나간다. 지원은 드디어 흐느낀다.

기준과 헤어져 집에 도착하자 먼지를 뒤집어쓴 석우의 그린 색 경차가 서 있다. 지원을 본 석우가 차에서 내려 다가온다. 지원은 그를 무시한 채 안으로 들어가려 하고 그런 지원을 석우가 뒤에서 안아온다. 미안하다고. 두 번 만난 여잔데 방금 정리하고 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올가을 결혼하자고 다시 청혼한다. 지원은 자기 허리를 안고 있는 석우의 두툼한 손을 보다가 자기 손을 그 위에 갖다 댄다. 그래, 결혼해.

기준은 분명 푸페가 맞다고 생각한다. 갈색에 키도 비슷하고 스탠다드 푸들이 맞다. 분명 그녀, 지원이 잃어버린 '진짜 푸페'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원과의 시간들을 곱씹는다. 그리고는 잔뜩 겁난 표정으로 천변 숲에 웅크리고 있는 푸페를 가슴에 안는다. 녀석은 처음엔 네발을 버둥대며 저항했지만 이내 힘이 없는지 스르륵 잠에 빠진다. 기준은 가만히 불러본다 푸페라고..그러나 녀석은 대답이 없다. 푸페야...푸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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