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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휘 Apr 19. 2024

시간은 삶이다.

시간의 꽃 : 모모 -미하엘 엔데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는 문제는 전적으로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니까. 또 자기 시간을 지키는 것도 사람들 몫이지.
 나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나누어 줄 뿐이다. -모모 중에서




키는 작았고 대단한 말라깽이에다가 아무리 봐도 겨우 여덟 살짜리인지 아니면 열두 살이 된 소녀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모모.

머리는 칠흑같이 까만 고수머리에 한 번도 빗질이나 가위질을 한 적 없는 듯 마구 뒤엉켜 있고, 깜짝 놀랄 만큼 예쁜 커다란 눈은 머리색과 같이 까만색인 모모.

언제나 맨발로 돌아다녀 발도 까만 모모.

이탈리아의 한 도시, 회색 사나이들이 지배하는 곳, 화려한 극장이 아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원형극장에 어느 날 모모가 나타났다.


현자 같은 청소부 할아버지 베포, 언제나 끊임없이 이야기가 샘솟는 청년 기기, 사람들에게 시간을 주는 호라 박사, 거북 카시오페이아, 그리고 언제나 자기 시간을 자기가 가장 재밌게 쓸 수 있는 아이들…… 바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찾을 줄 알고 가장 재밌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모여사는 이곳 원형극장.

끊임없는 이야기와 모험과 상상력 속에서 행복과 풍요로움을 즐기던 사람들한테 시간을 빼앗아 목숨을 이어가는 회색 신사들이 나타나 그 즐거움을 모두 빼앗아 간다. 

모모는 호라 박사와 거북 카시오페이아와 함께  일생일대의 모험을 벌이며 사람들에게 시간을 되찾아 주는 이야기.


모모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가져다준다.

모모의 호기심과 동심에 미소를 짓게도 되고, 소설 속 사람들이 시간을 쓰는 일과 호라박사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들은 현실세계와 소설세계를 구분 지을 수 없도록 만든다.

시간을 이야기할 때 '모모'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나의 시간은 점점 더 빨라지는 듯하다.

작년보다 올해가 유독 급하게 흐르는 듯하고, 몇 년 전보다 작년의 시간이 더 급속하게 지나간 듯하다.

호라박사의 말을 따르자면 시간을 지키는 것도 나의 몫인데,

그렇다면 나의 시간은 왜 이토록 빠른 걸까?

너무 앞만 보며 달린 것은 아닐까. 소설 속의 사람들처럼.

모모의 친구들은 회색 신사의 방문을 받은 후 돈을 벌기 위해 또는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기 위해 자신들의 시간을 아껴가며 목표만 향해 나아간다.

예전의 따스한 정도 잊고 점점 차갑고 삭막한 사람들이 되어 간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좋은 현상이고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모의 친구들처럼 주변을 돌아볼 시간을 아끼고, 자연을 느낄 시간을 아끼고, 진정으로 나를 위한 시간을 아껴 목표에 도달한다면 행복할까?

모모의 친구들과 지금 우리의 모습은 결코 다름을 찾을 수 없다.

모모와 호라박사가 시간을 찾아주자 사람들은 다시 예전처럼 매 순간을 즐기며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내가 그토록 빠르게 흐른다고 생각하는 나의 시간은 결국 잃어버린 시간일까?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할 일이 많아진다.

할 일이 과도하면 시간은 당연히 모자란다.

나는 늘 시간이 모자란다.

그렇다면 나는 과도하게 많은 할 일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과도하다면 무엇을 빼야 할까, 무엇을 줄여야 할까.

결국엔 욕심이다.

이것도 잘하고 싶고, 저것도 잘하고 싶은 마음. 다만 마음에서 그치지 않고 할 일로 만들었다는 건 나의 실행력이 갑이라는 소리이기도 하다.

실행력이 좋은 건 백번 칭찬한다.

하지만 그렇게 과도하게 일을 만들어 내는 이유는 뭘까 생각하니 급한 마음이다.

그렇다면 왜 급할까? 나는 아직 10년이나 더 내 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뭐가 그렇게 급해서 지금부터 나를 들들 볶는 걸까


아이가 크면 나는 독립을 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서 지금 나는 시간을 쓰고 있다.

하지만 성급해서 될 일은 단 한 가지도 없다.

모두 긴 시간이 필요한 일들이다. 하지만 10년까지 걸리지 않는 일들이기도 하다. (적어도 내 생각엔)

그러면 지금 이렇게까지 여유 없이 시간을 쓸 필요도 사실상은 없다.

조금 더 긴 호흡으로, 기인~~~~ 시간을 잡고 약간은 천천히 해도 되는 일인데, 마치 낼모레 있을 시험을 대비하듯 몇 년을 달려왔다.

문제는 당장은 지치진 않는데 지칠까 봐 두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런 두려움이 있다는 건 지칠만하게 시간을 쓰고 있다는 것을 나도 무의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게 아닐까?


모모를 다시 읽으면서 깨닫는다.

시간을 아끼며 아등바등 사는 게 행복한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간은 쓰려하는 사람의 목적과 마인드에 따라 달리 쓰인다.

누군가는 힘들게 시간을 쓰면서도 시간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시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 

그건 나는 힘들게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깔려있다는 증거다. 

2년 전 제주에 한 달 살기를 떠났을 때가 떠오른다.

나는 평생을 그때처럼 시간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얼마쯤은 여유를 부리고, 얼마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또 얼마쯤은 할 일을 위해 쓰는 것.

시간 분배를 적절하게 잘해서 함부로 쓰는 것도 아니고, 아끼고 아껴 쓰는 것도 아니게.

다시 그렇게 시간을 써야 할 것 같다.

지금 나의 시간은 눈 한번 감았다 뜨면 하루가 지나간다.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그렇지만 멈춰있지 않은 상태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내가 시간을 잘 나눠야 하는 이유이다.

 별안간 모든 사람들이 한없이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당연히 모두 기뻐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들이 아낀 시간이라는 것,
그 시간이 신기한 과정을 거쳐 되돌아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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