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하는 문장은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준다. - 알랭 드 보통-
책을 읽다 보면 유난히 마음에 걸리는 문장이 있다.
어떤 문장은 '내가 작가라면 도저히 생각해 낼 수조차 없을 것' 같아서, 어떤 문장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이렇게 확 꽂히게 쓸 수도 있구나'를 깨닫게 해 줘서, 또 어떤 문장은 수려하지도 않고 대단해 보이지도 않지만 유독 내 마음에만 꽂히는 것 같아서.
이렇듯 각각의 문장은 시시때때로 내 마음을 파고든다.
이런 문장을 만날 때 스스로에게 되묻곤 한다.
"왜 이 문장이 좋니?"
"딱히 특별한 문장도 아닌데"
"그냥.. 자꾸 생각이 나는데?"
그건 그냥이 아니다. 내가 그 문장에 반응을 하는 것이리라.
예를 들어본다.
"햅쌀에 찹쌀을 섞은 거라 잠결에도 밥 냄새가 달았다. <비행운>"
이 문장이 내게 닿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배가 고파서일 수도 있고, 햅쌀에 찹쌀을 섞으면 밥이 더 달아지는가 보구나를 배울 수 있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 문장에 밑줄을 그은 건 이 평범한 사실 (햅쌀과 찹쌀을 섞은)을 감각적이고 감성적으로 (잠결에도 밥 냄새가 달았다) 풀어내는 작가의 문장력에 감탄해서였다.
잠결인데 밥 냄새를 맡을 수 있지만, 단잠을 자는 것인지 문자 그대로 잠결에도 맡는 다디단 밥냄새의 평화로움을 표현하는 것인지, 어쩌면 그 둘 다일수도 있고 말이다.
"우리는 이번 생에서 배운 것을 통해 다음 생을 선택한단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면 다음 생은 이번 생과 똑같아. <갈매기의 꿈>
이 문장의 경우엔 인사이트를 얻었기 때문이다.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이런 문장을 만나면 '그래, 나는 정말 잘하고 있는 거구나' 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스스로가 대견해지기도 하고, 자랑스러워지기도 한다. 애써 누군가로부터 칭찬받고 싶어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이렇게 문득문득 책 속에서 만나는 칭찬이 그저 좋아서 밑줄을 긋는다. 이번 생보다는 더 나은 생을 원하는 마음이 있어서일 수도 있고, 내가 부지런히 배우는 모든 것들이 결국엔 더 나은 다음 생을 위해서라는 생각을 하면 왠지 준비를 잘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무수히 많은 책에서 '나다움'을 찾기 위해선 나 자신과 대화를 많이 하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몇 번이고 계속해서 질문하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위해 오롯이 내 마음과 대화하는 시간을 따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필요하겠지만,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밑줄을 긋는 그 문장들을 보면 지금 내 마음 상태가 어떤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필사를 하기 위해서, 독서 노트에 옮겨 적기 위해서 내가 고르는 문장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그 문장이 내 마음을 대변한다는 것을 눈치채야 한다.
그리고 그 물음에 답을 해야 한다.
너는 지금 왜 이 문장이 좋으니? 에 대한 대답. 이 문장을 통해 너는 무슨 생각을 하니? 에 대한 대답.
그 답들을 문장 아래에 적다 보면 결국엔 나다움을 찾는 자기 계발적인 행동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씩 내가 모아두었던 문장들을 한 번씩 들여다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대개 필사노트에는 필사를 한 날짜를 적어두기 때문에 그날이 몇 달 전이건, 몇 년 전이건 지금의 내 모습과 비교해 보기에 이만한 것이 없다.
아~ 1년 전에는 내가 사랑을 하고 싶었나 보구나.
어머, 불과 2개월 전인데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그때그때 놓치지 않았던 문장들이 모이면 또 결국엔 내가 된다.
일기보다 더 근사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