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행해야 독서한 것이다.
나는 책을 왜 읽는가?
책을 읽는 목적은 다양하다. 예전에는 독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재미있으니까 읽었다.
그래서 대개 읽는 책들이 전부 소설이었고, 그 스토리만으로도 나에게는 독서의 목적이 충당되었다.
그때 나는 소설은 오로지 허구일 뿐이라는 생각이 강렬했다. 소설을 통해 사고를 확장시킨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책은 참으로 진기하다. 아무 생각 없이 스토리만 흡수하며 읽는 건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이 하나 둘 생기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경숙의 <깊은 슬픔>을 읽고 내 할 일을 하다가도 문득 '은서는 어째서 그토록 완을 못 잊는 걸까' '세상에 그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다고?' 내가 사랑의 한복판에 있을 때에도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사랑이 떠오르곤 했다.
그때는 몰랐다. 이런 스쳐 지나가듯 훅 들어왔다 나가버리는 생각들이 점차 나를 책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끌어당기고 있는 것임을.
그러다 보니 나는 책을 왜 읽는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남들은 왜 책을 읽는지도 궁금해졌고,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헤르만 헤세나 최재천 교수님, 박웅현 대표님, 대니얼 디포, 벤자민 프랭클린 등등 책을 사랑하는 그들에게서 독서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제대로 배웠다.
그들은 모두 정독하기를 권하고 있었고, 헤세는 책을 취미로 읽는 것만큼 고급진 시간낭비는 없다고 했다.
그동안 나는 아주 고급지게 시간낭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독하는 이유는 사유를 하기 위함이다. 한나 아렌트가 강조하듯 인간은 '사유해야' 한다. 생각하지 않고 흘려보내듯 마주하는 모든 것들에서 사유를 하기 시작하면 단순히 흘려보낼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지만 그때는 알 지 못했다.
"책 속에 무슨 길이 있어, 길은 밖에 있지'라고 일갈했던 김훈 선생님의 말처럼 독서는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행함에서 그 빛을 발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엇을 행해야 할까.
책을 읽다가, 혹은 책을 다 읽고 난 뒤 머릿속에는 생각이 그득하다. 당장 실천해야 할 목록도 주르륵 생기고, 더 깊이 사유하고 싶은 주제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이 생각들을 끝내 머릿속에 그냥 둬버리면 어떻게 될까? 몇 시간만 지나면 사라진다. 마치 다음 물살에 묻혀버리는 파도처럼.
우리의 머릿속에는 매 순간마다 새로운 생각들이 들이닥치고,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생각은 구석으로 밀려나가다가 종국엔 쫓겨나버린다. 인간의 기억력이 유효한 시간이 단기적으로는 15초에서 30초라고 했던가. 이 단기 기억을 반복하고 24시간 이내에 복습하고 맥락을 연결시키고 감정적인 자극을 도입하는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을 실행하지 않으면 결국은 30초 이내에 사라져 버리는 셈이 된다.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따라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은 다른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독서노트이다.
망각곡선을 실천하는 방법으로는 복습하기, 내용 정리하기, 자기 테스트 반복하기, 연결시키기등이 있는데 딱 봐도 보이지 않는가? 전부 독서노트를 채울 내용들인 것을.
책을 덮고 3일 후 복기하면서 독서노트에 기록하는 자체가 이미 복습의 단계이다. 당연히 책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요약하고 정리를 할 수밖에 없고, 이렇게 써 놓은 독서노트는 반복해서 들여다보는 것으로 자기 테스트 과정을 거친다. 또한 책과 책이 연결되기도 하고, 생각과 생각이 연결되기도 하는 그 모든 과정이 바로 독서노트를 쓰는 것이다.
내 머릿속의 기억을 붙잡아두는 일, 그것은 결국 삶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독서로 확장이 될 수밖에 없다.
독서노트는 단순히 책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내 삶을 심어 가는 농사다. 생각이라는 씨를 뿌리고, 확장이라는 과정을 지나 결국 삶을 추수하는 일. 나는 그것이 독서노트라고 믿는다.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해 생각을 하고 내 삶에 적용해 보는 것, 그것을 적용했을 때의 비포와 애프터를 기록하는 것, 이런 것들을 반복하다 보면 실행할 것들과 사유할 것들은 점점 폭넓어지고, 그것들이 스스로 다른 그것들을 끌어당겨오면서 나는 변화된 삶을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고 그것은 곧 힘이 될 수 있으며 그 힘은 밖으로 향해 이타적인 사람으로 이 생을 살아갈 수 있다. 죽음 앞에 떳떳해지는 삶을 살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죽음도 두려워지지 않을 것이다.
헤세를 비롯 많은 작가들과 성공가들이 말했듯 독서는 그렇게 전투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며, 취미로 하는 독서가 시간낭비인 이유는 내 삶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그래서 나는 속독으로 다독을 하는 사람보다 느리더라도 정독하는 책친구를 좋아한다.
독서는 내 삶을 충분히 바꿀 수 있다. 다만 읽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내가 책을 읽는 이유와 그 한 권의 책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항상 생각하자.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독서노트에 기록해 보자. 반드시 또렷한 애프터가 생길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