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어쩌다 PM

체대생이 PM이 된 이유

나도 사람들의 생활 습관을 바꿀 만큼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by 최PM

나는 HR플랫폼을 만드는 IT 회사에서 일하는 2년 차 초초초주니어 PM이다.


이건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주제였다. 회사 면접을 볼 때도,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할 때도 사람들이 항상 나에게 궁금해하던 것이 있다.


"체대 나왔는데 어쩌다 PM으로 일하게 됐어요?"


여러 번 이 질문을 받고 답을 하다 보니 느낀 건 이 안에는 여러 궁금증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 부분들에 대한 답을 이제는 말이 아닌 글로 적어보려 한다.






1. 체대랑 전혀 관련 없는 PM을 꿈꾸게 된 계기가 뭐예요?

처음부터 구구절절 얘기하면 하루 종일도 얘기할 수 있지만,, 최대한 줄여볼게요


축구 전력분석관을 꿈꿨던 나

PM에 대한 꿈을 키운 나의 스토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교환학생부터 시작된다.

고등학생 때부터 축구를 너무 좋아했던 나는 당시에 너무 좋아했던 스페인 'FC바르셀로나'라는 팀의 축구 전력분석관이 되기로 마음먹고, 무작정 스페인 교환학생을 꿈꾸며 젊은 날의 패기를 발휘한다.


1) 스페인어학 복수전공 시작

2) 1등으로 합격해 졸업까지 전액 장학금 예정이었던 ROTC 교환학생 불가하다고 해서 바로 포기 각서 작성

3) ROTC 포기 후 2달 만에 군대 입대

3) 상병 때부터 매일 2시간씩 스페인어 공부(시원스쿨 Gracias)

4) 졸업하고 1년간 골프 캐디로 일하면서 교환학생 비용 손수 마련

5) 결국 스페인 Las Palmas 입성


그리고 당시 한국인으로 영국, 스페인에서 일하는 사람이 세 분 정도밖에 안 계셨고 그분들에게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를 보냈었다(용감했던 당시의 나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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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당시 운 좋게 U-20 월드컵이 한국에서 열렸고, 소속 선수 점검차 한국에 와 계셨던 분석관님과의 인터뷰 진행(을 핑계로)과 만나 여러 이야기를 진행했었다. 이후 유럽 여행을 갈 때마다 연락을 드렸고 결국 영국 프리미어 리그 팀의 축구 분석관이 되셨던 이 분께서 감사하게도 팀 경기 티겟을 구해주셔서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외의 관련 종사자분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알고 있던 축구 전력분석관의 모습과 현실은 많은 괴리감이 있었고, 결국 축구 전력분석관이라는 꿈을 접었다. 하지만 충분히 내가 시도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 보았고 그 다름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꿈을 위해 달려가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후회는 전혀 없었다.



한국식 마인드를 깨버린 계기


스페인어로 모든 수업이 진행되는 대학교에서 나 같은 스페인어 쪼렙은 따라가기가 너무 벅찼고, 과제는 뭔지, 시험은 언젠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는데 그 와중에 한 줄이 빛처럼 착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은 수업 중간에 뭔가 중요한 내용을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면 아련한 눈빛으로 내가 쳐다봤고, 수업이 끝나면 항상 그게 어떤 내용이었는지 알려주었다. 고마워 칭구들(__)


그래서 밥도 같이 자주 먹고, 친하게 지냈었는데 교환학생이 거의 끝날 때쯤 알게 됐던 건 그중에 한 친구가 36살이었던 것이었다. 당시 26살 한국식 마인드로 꽉 차 있던 나에겐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우리나라였으면 나이대마다 돈은 얼마 모았어야 되고, 결혼은 언제 해야 하는지가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는 반면 여기는 모든 사람들의 선택과 그 선택의 순간을 나이라는 잣대로 옳고 그름을 평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존중받고 정말 본인의 행복을 위해 선택을 한다고 느꼈다. 이때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정체성과 가치관에 큰 변화가 일어났던 것 같다.


그렇게 교환학생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나도 이해진, 김범수, 이승건, 김봉진이 될 테야


한국에 돌아왔을 때 꿈이 사라진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던 찰나 최근 들어 사람들의 생활 습관이 많이 변화하고 있다고 느꼈다.


토스로 송금하는게 당연해지면서 ATM이 하나 둘 사라지고, 전단지를 보고 음식을 주문하는게 편하다던 사람들이 이제는 배달의 민족 없이 못 사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세상에 없던 서비스로 사람들의 생활 습관을 바꿀 만큼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조금 오글거릴 순 있지만 진짜다. 여전히 이 꿈은 유효하다.


그래서 만들기 시작했다. 단기 유학생 전용 중고거래 플랫폼, 셀앤어스.

겨우 한 학기 교환학생을 하는데 외국인인 탓에 현지에서는 중고거래를 주로 어떻게 하는지 알기 어려웠고, 중고거래 플랫폼을 알아도 사용하기가 언어적으로도 불편하다 보니 결국 새 물건을 다 샀던 나는 다른 단기 교환학생들도 비슷한 불편함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가설을 가지고 야침 차게 시작했다.


스펙업, 독취사, 에브리타임, 기타 사이드 프로젝트 플랫폼 및 카페 등등에 팀원 구인글을 올렸다.

어쩌다 보니 개발자 1명, 디자이너 1명, 그리고 나 이렇게 3명이서 시작하게 되었다.


기획의 ㄱ자도 몰랐던 나는 유튜브, 강의 등을 찾아가며 기획을 했고, 사업계획서도 작성해 보고 지원사업에도 운 좋게 붙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론 실패했다. 이유는 창업에 대해 너무 몰랐고, 역량도 너무 부족했고,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교환학생들이 돌아가다 보니 환경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팀이 해체된 이후에 경험을 살려 '골프 캐디 구인구직 플랫폼, 캐디픽'도 노코드 툴로 혼자서 만들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역량 부족으로 인한 한계를 너무 많이 느꼈고, 그때는 돈을 버는 회사들의 기획자들은 어떻게 일을 할까? 어떤 시스템으로 돈을 벌고 있을까? 라는 단순한 궁금증이 너무 컸다.


당시에는 사람들의 생활 습관을 바꿀 서비스를 기획하는 기획자로서의 포지션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적성에도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처음에는 PM이 아닌 서비스 기획자로서의 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땐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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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은 이런 직무라는 걸




2. PM에 대해서 어떻게 알게 됐어요?


서비스 기획자로 취업을 준비하다 보니 신입을 대부분 뽑지 않았고, 그 이유를 알아보다 보니 '서비스 기획자 = PM'으로 일하는 회사가 많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두 포지션은 엄연히 이야기하면 다른 일을 하는 직무지만 기획자가 서비스에 대한 전반적인 설계를 한 사람이기 때문에 Product Manager로서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여러 포지션의 동료들과 중간에서 커뮤니케이션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PM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고, 물론 PM도 Project Manager와 Product Manager로 구분되긴 하지만 이 것도 회사마다 정의하기 나름대로 업무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른 콘텐츠로 다룰 수 있으면 다뤄보겠다.


그래서 서비스 기획도 그렇지만 PM은 더더욱 신입이 하기 어려운 직무기 때문에 신입을 많이 뽑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한 번의 기회가 소중하다고 생각했고, 정말 운이 좋게도 처음 지원한 채용전환형 인턴 공고에 덜컥 붙어버렸다(체험형 인턴까지 포함하면 4번 정도).


위에서 말한 내가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고 싶은 이유와 그 스토리를 잘 얘기했고, 그 과정에서의 결과물을 최대한 잘 정리해 보여주었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던 것 같다. 물론 내가 PM으로 일했을 때의 나만의 강점들도 포함해서.




3. PM으로 취업할 때 어떻게 준비했어요?


우선 나는 창업을 꿈꾸며 만들었던


1) 단기 유학생 중고거래 플랫폼, 셀앤어스

2) 골프 캐디 구인구직 플랫폼, 캐디픽


두 개의 서비스에 대해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그리고 사실 신입으로 지원을 하게 됐을 때는 PM으로서의 역량이 하루아침에 갖춰지지 않을 거란 걸 면접관 분들이 그 누구보다 잘 아실거기 때문에 대학생 때 내가 가진 강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어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고, 누군가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먼저 듣는 습관, 그리고 기분 나쁘지 않게 의견을 전달하며 조율했던 경험들을 포트폴리오에 잘 담아내려 노력했다.


3일 밤을 새우며 급하게 만들었지만 최대한 예쁘고 잘 만들려고 노력했다.
(당시의 포트폴리오를 지금 보면 너무 부끄럽지만 이것도 기회가 되면 일부분 공개해 보겠다!)


추가로 지원서에는 나만의 스토리를 글로 잘 정리하려 노력했다. 커뮤니케이션 역량, 회복탄력성 등등 이런 말들은 이미 너무 많이 소비되었고 질릴 대로 질려 특별함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 내가 왜 서비스 기획자(PM)로 일해야 하는지
- 왜 이 회사여야 하는지
- 어떻게 성장하고 싶고, 할 수 있는지(내가 추구하는 서비스 기획자의 이상향)
- 이 회사에 내가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이 네 가지를 중점으로 지원서를 작성했다. 물론 내 말이 정답이라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는 식상할 수도 있겠지만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적어본다.






맨 처음에 말했듯 나의 스토리를 얘기하면 하루 종일 이야기 해도 부족하지만 이 이야기가 브런치에 첫 글로 쓰기에 나라는 사람이 어떤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주제라고 생각했다. 이걸 쓰면서 들었던 생각은 그동안 이런 패기와 용기를 많이 잃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더 많은 패기와 용기를 내야겠다 나도. 2025년 빠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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