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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Jan 25. 2024

부부간의 이해.

여직원 생파가 있었다. 8명의 여직원으로 구성된 모임인데, 유독 겨울에 태어난 사람이 많아 이번달만 두 번째 모임이었다. 치킨집에서 치킨, 떡볶이, 생맥을 마구마구 추가하니, 사장님도 신이 나서 서비스가 식탁에 푸짐이 차려지는 1차를 마치고, 맥주집으로 자리를 옮겨 케이크 점화식에 7080 노래가 흘러나온 김에 다른 테이블도 비었겠다 노래에 슬쩍슬쩍 어깨춤도 춰가며 개방정을 떠는 2차까지 완료한 후 집으로 돌아가려 큰 길가에 8명이 우글거려며 모여 있던 상황이었다.  


[신랑이 온데. 택시 하나만 부르면 될 것 같아.]


같은 회사 커플로 평소 곰살맞기로 유명한 여직원 신랑이 집사람 데리러 오는 김에 같은 방향 여직원 배웅을 자청한 모양이었다.   


[나도 온데! 차 안 불러도 되겠다야~]


이번엔 아직 사귀고 있는 여직원 남친이었다. 사귀고 있는 중인데, 부르면 재깍 와야지 암... 속으론 지당하다, 밖으론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이 툭 놓였다. 나는 택시 타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과 밀폐된 공간 속 정체된 공기를 같이 마시며, 숨 막히는 침묵을 견뎌내는 건 정말 못할 짓이다.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이 무슨 호구조사원처럼 부모부터, 직장, 가족, 평소 정치 성향 같은 것을 쉼 없이 물어 오는 상황은 더 난감하다. 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에게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데, 어른이 물어오니 대답하지 않을 순 없고, 적당히 둘러대느라 진땀을 빼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택시 타야 할 상황에 놓이면 나는 꼭 걸어간다. 저녁이든, 새벽이든,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무조건 걷는다. 내가 사는 지역은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 도시를 가도 질러 걸어도 1시간이면 족한 작은 동네였고,  평소 걷기를  즐기는 나로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은 너무 추웠다. 속으로 걷지 말고, 뛰면 좀 덜 추울까? 어떤 길이 좀 빠를까?를 계산하고 있었는데, 친절한 분들의 호의가 전해지니 기쁘지 아니할 수가 있겠는가~

드디어 기다리던 호의남이 도착하여 얼른 뒷좌석에 착석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너무 편하게 가요~~ 언니는 결혼을 너무 잘했어잉~]

비음 섞인 요사스러운 칭찬에 기분 좋아진 직원 신랑은 씩~ 웃어 보이고는 차량을 출발시켰다. 


[OO아 집이 어느 방면이라고 했지?]


이번에 새로 입사 한 직원이라 집이 어느 아파트라고 했었는지 가물가물해 질문을 하며 직원을 돌아보는데, 신입 직원은 고개를 푹 숙이고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OO아 왜? 왜 울어?]


방금까지 분명 웃고 떠들며 재미나게 놀다 가는 길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이 동그래진 나를 보고 후배가 입을 열었다.


[언니. 제 신랑은... 여기까지 좀 데리러 나오라고 하니까. 내가 왜 거길 가야 하냐고 그래요. 이 사람이랑 뭘 하나 하는 게 다 너무 힘들어요.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해요. 다른 언니들 형부차를 많이 얻어 타서 저도 언니들 좀 데려다 드리고 싶은데. 이 사람이 안 온다고 하니까 속상해요.]


후배 이야기를 들으니 불현듯 나의 신혼 때가 눈앞을 스쳤다. 아직 서로에 대해 다 파악하지 못했던 그때 참 많이도 다투고, 화해하고, 울고, 삐지고, 서운했었다. 아직 그 초입에도 들지 못한 후배의 애처롭고 눈물겨운 호소가 나는 마냥 귀여웠다.


[그게 그렇게 눈물이 가 나더나?]

[네.]

[나도 내 신랑 안 부르잖아. 여기 모임에서 두 명 말고는 아무도 신랑을 안 불러. 왜냐면 밤에 나오는걸 극도로 싫어하는 신랑들이기 때문이지. 신랑이 싫다는데 굳이 뭐 하러 불러. 택시 타면 되지. 그리고 네 신랑은 내가 알기로 괭장히 내향적이신 것 같던데. 여직원들이 이렇게 우글거리는 곳에 오면 얼마나 불편하시겠냐?]

[네.]

[내가 결혼해서 살아보니까. 그런 것 같아. 상대방이 내가 좋아하는 걸 해주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앞서 내가 싫어하는 걸 안 하게 해 주는 게 먼저인 것 같더라고. 내가 아니면 그 사람 누가 이해해 주냐? ]

[네. 그렇죠. 맞아요.]


역시 MZ라 이해도 빠르다. 눈물을 쓱~ 닦고 씩 웃어 보인다. 나도 그랬었다. 

밥 짓기, 장보기, 설거지가 결혼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모두 나에게로 전가되자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 설거지하다 말고 고무장갑을 집어던지고 집을 나간 적도 있었고, 첫째를 업고, 둘째를 안고 왼쪽 팔에 짐을 오른손에 딸기 바구니를 겨우 들고 가다 바구니가 터져 지하주차장이 딸기 밭이 된 적도 있었다. 아이들을 겨우 재우고 혼자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다가, 또 치워도 치워도 끝없이 어질러지는 방을 정리하다가도 울기를 수없이 울었다. 결혼 전에 한 번도 살림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는 신랑인 데다 선단공포증까지 있어 칼끝이며, 젓가락 끝도 잘 보지 못하는 신랑을 이해하고, 아이들이 어릴 때 새벽까지 도서관에서 승진시험공부를 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와 아이들 사이에서 삶에 지쳐 잠든 나를 바라보는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필요했던가.

이제는 전혀 서운한 게 없다 거나, 저거 한 번은 내가 짚고 넘어간다 싶은 것이 전무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내 마음이 확 앞서기 전에 그 사람 마음이 슬쩍 비치는 게 달라졌다면 달라진 것일까.


박완서는 말했다. 부부가 노후에 서로의 비루한 모습을 참아낼 수 있는 것은 사랑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같이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르는 그 짐승스러운 시간을 같이 한 사이이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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