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밑에 끼어 있던 노트북을 꺼내려다 모니터를 툭 처버렸다. 그 바람에 모니터 앞에 걸려 있던 화면 보호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책상으로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보호대 거치대 2개 중 한 개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눈을 부라리며 책상 위아래 이곳저곳을 손으로 쓸고 눈으로 훑어 댔다.
분명 멀리 날아가지는 않았을 텐데... 떨어진 고 녀석의 종적이 묘연하다.
그렇게 거치대를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는 나의 시야에 사탕하나가 들어왔다. 책상 선반 모퉁이 구석에 끼어 있던 그 사탕을 꺼내 들며 거치대 찾던 일을 나는 잠시 멈추었다. 이 사탕을 누가 줬던가? 언제 받아두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니 아예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나는 사탕을 태어나 처음 본 사람처럼, 투명한 비닐에 쌓여 있는 그것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노란색인걸 보아하니 레몬 맛일 것이다. 아직 녹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지난여름은 지나고 내가 받아 두었던 모양이다. 주전부리는 잘하지 않으니 아마 누군가가 내게 한 개 건넨 것을 잘 먹겠다 대답하고는 준 사람이 서운해하지 않게 선반 아래 몰래 넣어 두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무심코 일하다 오른손 마우스 질로 등 떠밀려 굴러 들어간 그 녀석을 아주 까맣게 잊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를 그때부터 어두운 선반 아래에서 하릴없이 우두커니 있었던 사탕을 보자 측은한 마음에 갑자기 달달한 고 녀석의 맛을 느껴보고 싶어졌다. 연필과 초는 사용될 때 행복할까? 사용되지 않은 채 온전할 때 행복할까?를 두고 많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늘 사용해야 행복하다 쪽이었다. 누군가에게 존재감이 생기고, 필요를 느끼게 하는 자신의 몸을 닳아 없어지게 만드는 일. 사용되며 나타나는 글씨와 빛은 원래 온전히 보존된 그것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만큼 대단한 무언가로 변하니까. 나는 사탕의 투명 비닐 껍질을 까 냉큼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과연 레몬 맛이 맞았다. 새콤하고 달콤한 데다 사탕이 반쯤 녹아내리자 안쪽에서 구연산 폭탄이 잠들어 있었던지 슬쩍슬쩍 내비치는 극강의 시큼함에 나는 한쪽 눈을 개슴츠게 떴다 감았다 하며 오랜만에 사탕의 맛을 깊이 음미했다.
어느 책에선가 단맛을 좋아하는 것은 본능이고, 짠맛을 좋아하는 것은 살아가며 길들여진 것이란 글을 본 적이 있다. 임신한 여성이 단 음식을 섭취하고 나서 뱃속에 있는 태아가 양수를 더 많이 섭취하는 모습도 tv에서 보았다. 그럼 나는 어릴 때는 그토록 원해 맞이 않던 이 원초적인 달달한 행복을 언제부터 반기지 않게 되었을까?
단 음식이 몸에 좋지 않다는 후천적인 교육에 의해서였을까?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입맛이 자연스럽게 변화한 탓일까?
둘 다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된다. 달달함 보다 쌉싸름한 아메리카노가 밥 먹고 나면 더 생각나고, 주위에서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을 앓는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먹는 사탕이라 열심히 홀릭하다 보니 사탕은 금세 사라졌고, 달달함이 사라진 그 자리엔 급하게 녹은 사탕의 예리한 흔적이 입천장의 쓰라림으로 남아있었다.
이토록 달달하다 느끼는 것조차 멀리하게 되는 것. 나 이듬이 다 나쁘기만 한 걸까? 노안이 찾아와 편의점에서 산 초콜릿 봉지 글자를 읽는 일은 엄두도 못 내고, 생리주기도 들락날락하기 시작한다. 여름이 찾아와도 쭈글거리는 무릎이 보기 싫어 자꾸만 긴바지로 감추게 되고, 흰머리는 하루가 다르게 식구를 늘려만 간다.
그렇게, 몸은 마흔 넘게 사용하여 여기저기 기름칠을 해달라 아우성이건만, 그래도 이상하게 마음만은 어쩐지 조금씩 여유가 생기는 것을 요즘 나는 많이 느낀다.
학원을 가지 않겠다고 해도, 휴대전화를 붙잡고 놓지를 않아도, 친구들과 다퉜다고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려도,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포기해 버리는 둘째를 보면서도 조바 심나 동동거리지 않고 나도 모르게 너그럽게 타이르는 나를 보게 된다.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도 당당히 말한다. 공부하지 않고도 살아보니 먹고 살길이 지천이다. 다만, 너의 인생이니 어떻게 앞으로 살아야 할지는 생각해 보라는 조언만 툭 던져 놓고는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기를 기다린다.
달달하고 자극적인 것보다, 밍밍하고 쌉싸름함이 진짜임을 점점 깨달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