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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Jul 15. 2024

엄마 반찬의 의미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신랑은 회식, 첫째는 야간자율학습, 둘째는 헬스장을 간지 10여분이 됐다. 그럼 이 시간에 우리 집에 드나들 가족은 없다. 하긴, 가족이면 비밀번호를 누르지 초인종을 왜 누르겠어? 아.. 바보. 바보. 머리를 흔들며 수조 밑바닥 가오리처럼 거실 매트에 들러붙어 있던 몸뚱이를 천천히 곧추 세워본다.


오늘까지 회사 건강검진을 마쳤다. 새벽에 출근해 검진할 장소 세팅하고, 검진대상자 명단 다시 한번 확인하고, 검진하면서 우왕좌왕하는 직원들 안내하고, 문제 되는 항목이나, 변경사항은 뛰어다니며 정리하고 점검했다. 거기다 검진을 마친 직원들 채혈자리에 일일이 밴드를 붙여주며, 검진하느라 금식한 직원들 손에 음료와 김밥 한 줄씩을 쥐어주고 고생하셨다는 말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느라, 나도 좀 고생을 했다. 병원근무할 땐 바빠서 아침, 점심 다 건너뛰고 퇴근할 때 저혈당으로 손이 덜덜 떨렸어도 미역국에 밥 한 그릇 뚝딱 말아먹으면 다시 힘이 막 솟고 그랬는데, 이제는 체력이 영 따라 주지를 않는다. 다됐다. 다됐어. 소리가 절로 나온다.


겨우 일으켜 세운 몸을 반쯤 틀어 인터폰 화면을 힐끔 바라보니 현관문 밖엔 조카가 서있다. 

[이모 이거 할머니가 주신 반찬요]

늘 생글생글 웃는 해피바이러스 조카에게 굳이 나의 힘들고, 지치고, 거기다 엄마에게 대한 해묵은 어두운 마음을 까지 전염시킬 필요는 없다. 

[우와~ 고마워~ 잘 먹을게~]

오버 페이스가 맞았다. 표정과 심리상태와 전혀 매치되지 않는 하이톤 목소리에서 세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 네 이모. 안녕히 계세요]

어색하게 웃던 조카는 이내 뒷걸음질 치더니 90도 인사 후 엘리베이터로 줄행랑을 쳤다. 반찬을 받아 들고 현관 거울에 비친 몰골을 보니 조카가 얼른 자리를 뜨고 싶겠구나 싶다. 눈꺼풀은 밑바닥 한계를 잊은 듯 푹 꺼져 있고, 머리카락은 어디서 태풍을 한 대 때려 맞고 온 것처럼 헝클어져 있다. 

아... 귀찮아.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손가락을 빗어넘기고, 반찬 팩을 들고 싱크대로 향했다. 


고구마 줄거리 볶음, 고추 다대기, 무 장아찌


반찬통 세 개를 나란히 뚜껑을 따서 올려 두고 봉지를 하나하나 잘라 반찬통에 들이부었다. 

고구마 줄거리가 반들반들 윤이 나고, 고추 다대기에서는 알싸한 푸른빛이, 무장아찌는 엄마손으로 직접 체를 쳐 굵기가 제각각인 녀석들이 옹기 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정겨웠다.

만사가 귀찮아 저녁이고 뭐고 그냥 잠이나 자버릴까 고민하던 내가 갑자기 시장기가 돌았다. 수저 건조대에서 젓가락을 뽑아 들고, 고구마 줄거리를 푹 떠 한입 우물거렸다.

짭조름하고, 매콤하고, 적당히 조직감이 느껴지는 익숙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맛있다. 


엄마가 미우면 엄마가 해준 반찬도 싫어져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었다. 

'네가 내 자식이가?'

가족의 일원으로서 마땅한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분노하는 나에게 했던 엄마의 대답이었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 사람을 지켜보는 심각하면서도 어이없어하는 얼굴과 함께한 나에 대한 질책이었고, 너의 본분을 아직도 깨닫지 못했냐는 힐난이었다. 내가 그때 때려 맞은 정신적 충격은 나와 함께 꽤 오랫동안 유지 되었다. 처음엔 말없이 눈물만 나다가, 지독하게 미워지다가, 이해하려고 미친 듯이 노력했다가, 지금은 그냥 그런 사람이 나의 부모구나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내가 상처받은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쟁이 있었던 그날 이후로도 그전처럼 한결같이 반찬을 해서 보내고 있다. 

반찬까지는 허용되는 가족의 범위란 얘긴지, 딸이 기분이 나쁘든 말든 원래처럼 관심이 없다는 말인지, 그냥 하던 데로 가족들 반찬 만들며 봉지하나를 북 뜯어 담던 봉지 개수만큼 똑같이 담아내서 배달을 시키는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니면, 반찬을 주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가 해준 반찬이 맛있다.

이런 건 뭘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냥 다 때려치우고, 딸이라 자식으로 모든 것을 포용할 수는 없어도 피가 당긴다는 증거일까? 어릴 때부터 먹던 맛이라 그냥 입에 익숙해서일까? 아니면, 나는 인정할 수 없지만 엄마를 다 이해했던가?

한번 더, 고구마 줄거리를 한 젓가락 크게 푹 떠서 입에 넣고 우물우물 거려 본다. 안 되겠다 싶어 아예 밥한공기를 떠서 담고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고추다대기랑 무 장아찌도 식탁에 펼쳐놓고 저녁식사를 시작한다. 성질이 급해 열 번 씹기도 전에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던 밥알이랑 반찬들을 붙들며 최대한 천천히 곱씹어 본다. 


나란 사람에 대해서, 엄마에 대해서, 이해의 범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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