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정말 상관없었다.
다섯 번쯤 군에서 운영하는 수영반 모집에서 탈락하고 나니 이력이 나 있기도 했고, 주말에 내가 원하는 시간에 여유롭게 수영장에 가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엔 수강생 모집공고를 보고도 스킵하려 했는데 초급반에서 먼저 수업을 하고 있던 후배가 언니 지금 모집해요 신청할 거죠?라고 운을 떼었다. 선배언니와 같은 반에서 수업하고 싶어 하는 후배의 마음이 갸륵해 그래? 그럼 신청이나 해볼까? 하며 신청서를 넣었는데 덜컥 당첨이 됐다.
수강 신청에 한참 열을 올리고 있을 때는 계속되는 낙방 소식에 내 평생에 불로소득은 없다는 둥, 이렇게 뽑기 운이 없는 애는 나뿐이라는 둥, 내 사주에 물이랑은 뭐가 안 맞는 것 같다는 둥. 별별 이유를 다 갖다 붙이며 당첨되지 않는 불운한 나를 되레 더 각인시키고, 확인시키고, 소여물 되새김 하듯 곱씹으며 우울했었다. 그런데, 정말 돼도 그만 안되고 그만하며 탁 놓아버렸더니, 모집확정자에 떡하니 내 번호가 떴다.
내 인생은 늘 이런 식이었다. 뭔가가 하고 싶어 안달복달하면 죽어도 안되던 것들이 너 딴 거 필요 없어하고 뒤돌아 서면 그때서야 내 곁으로 쓱 다가왔다. 필요 없는 물건도 그 물건에 안달 난 사람이 달라고 조르면 주기 싫다가 시큰둥해지면 못 이기는 척 슬쩍 그 앞에 던져 주듯.
대학 합격, 회사 정규직 전형, 신랑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한 과정 등등. 내 인생에 굵직한 유사 경험들이 나에겐 즐비했음에도 뭔가에 꽂히는 일이 생기면 나는 또 그 일에 매달렸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나를 들들 볶았다. 비슷한 경험으로 내려놓는 것이 인생이 주는 교훈임을 알면서도, 이만큼 힘들었으면 그래도 한 번은 나한테 거저 쥐어질 때도 되지 않냐는 안일함이 먼저 앞서니 이건 성격 탓인지, 아직 세상의 이치를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가 부족한 것인지...
무튼.. 금요일부터 7시 수영 초급반에서 나는 수영강습을 받게 되었다. 8월부터 강습이라 주 2회 수, 금 반인데 금요일이 첫 수업이다. 막상 강습료를 치르고, 안내문을 받아 드니 가라앉아 있던 걱정이 스멀스멀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나 잘할 수 있을까?
내가 걱정하는 영역은 수영이 아니다. 수영초급반 강습에서 미비한 실력은 당위성을 같는다. 수영을 못하니 초급반을 간 것이니까. 하지만 그 외 강습반에 소속됨으로써 겪게 될 많은 것들은 나에겐 커다란 부담이다. 그래서, 수영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앞서 강습반의 문을 계속 두드렸지만, 낙방한 것을 알고 일부 안심된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나는 극 I (내향형)다. 간호사로 사람들 앞에서 교육하고, 대화하고, 상담하는 일들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극히 일부분의 노력형 사회성이다. 그래서, 신랑과 함께가 아니면 거의 대부분 혼자 운동하고, 쇼핑하고, 산책하는 일들이 나에겐 기본적인 생활방식이다. 거기다, 나만의 기준과 방식이 명확해 다른 이에겐 편파적으로 비치는 일이 허다했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가까이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선을 넘는 사람은 매몰차게 밀어냈다. 거기다 엄청나게 보수적이라 남자직원 들과는 개인적인 대화는 물론 길거리에서 회사 사람을 만나도 깍듯이 인사만 하고 지나가거나, 멀리서 회사 직원을 인지하면 다른 길로 돌아갔다. 지금 내가 근무하는 직장의 98%가 남자 직원임을 감안하고,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6만이 안 되는 소도시임을 감안하면 누군가가 보기엔 참으로 피곤하게 살고 있는 삶의 방식 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내가 노출이 심한(내 기준에) 수영복을 입고, 모르는 사람들과 친밀하게 대화를 하고, 배우는 과정에서 아무렇지 않게 이어질 스킨십을 잘..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까?
금요일부터 수업이지만 연습할 겸 수요일 저녁 수영장을 찾았다. 주말 낮에 곧잘 방문하던 수영장인데도 저녁에 방문하니 느낌이 또 새로웠다. 몸을 간단히 풀고 자유수영 레일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옆을 살피니 회사 현장 반장님이 수경을 머리꼭대기로 올리고 레일 모서리에 양쪽 팔을 드리운 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강습은 벌써 끝나신 거 아니세요?]
[나 못해서 연습 중이잖아. 연습하러 왔어?]
7시 수금반에 여자 후배가 있어서 안심이긴 했지만, 동시에 저 오지랖 넓은 반장이 있어서 다소 껄끄러웠는데 이 시간까지 연습 중이라니... 어이없음도 잠시 반장은 이때다 싶었는지 갑자기 옆 레일에서 운동 중인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얼른 이쪽으로 오라며 다급하게 손을 휘졌기 시작했다. 부름과 동시에 여자 2명 남자 3명이 우르르 레일로 모여들었다.
[이번주 금요일부터 새로 들어올 사람이야. 나 그날 못 나오거든. 여기 좀 잘 챙겨줘~]
갑자기 주목을 받으며 주위로 빙 둘러선 사람들 앞에서 뜨악한 표정을 숨기기 위해 애쓰며 어색한 미소로 한 사람 한 사람 인사를 했다.
[자유형 한번 해바. 내가 봐줄게]
반장의 말이 떨어지지가 무섭게 내가 뭔가를 해주길 바라는 12개의 눈알에서 발사되는 레이저가 수경을 뚫고 내 뒤통수에 꽂혔다.
아... 시작이다....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