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만큼 아직까지 정치인을 뽑는 선거에 열성적인 국가도 드문 듯하다. 그래서 단체 모임에서 삼가야 할 대화 주제 1위가 정치 성향과 관련된 이야기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진지하게 물어보자. ‘과연 당신의 정체성( 그것이 직업이든 어떤 상황이든…)을 대변해줄 정치 대리인이 진정으로 우리 정치 안(국회의원)에 존재합니까?’라고 말이다. (진짜 노동자 혹은 진짜 을이 있기나 한가)
안타깝게도 이미 기득권들은 그들 끼리의 카르텔 속에 ‘자신들의 정치 대리인’을 두고 있다. 아니 다수 국회의원이 그들의 대리인이라는 생각도 든다.(각종 범죄 사건들 속 서로 봐주기를 보라)
결국, 대다수가 이 대답에는 주저한다. 그렇다 현재의 선거제는 현재의 사회 구조에 결코 맞지 않다. 다양한 주체를 대변하고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본질이 가능하려면 선거제가 먼저 우선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이를 다수 국회의원들은 원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어느 동네에 몇백억의 예산을 지원받았고 어느 지역 모임에 얼마나 많이 혹은 깊이 연줄을 대고 있느냐에 따라 그 정치인이 유능하다 평가하는 시대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극단의 보복 정치가 주류가 되는 세상이 얼마나 평범한 우리 삶에 어떤 도움이 되고 있는가 한번 생각해 보라.
만약 결선투표제가 있고 표의 비례성이 정당하게 작동되는 선거제를 이미 가지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오늘 같은 뉴스를 맞이했을까.
여도 야도 모두 그 기득권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에 나서도록 만들 힘은 우리 보통 사람들의 의식 변화와 그로부터 시작될 주권자의 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