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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히려 더 좋다 Jun 18. 2023

독일 길 위에서 만난 철학적 낙서

Alone, no right but no wrong

Alone, no right but no wrong

 "혼자 산다는 것,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것도 아니지."



누가 낙서를 남겨 놓았을까?


매일 지나다니는 퇴근길 다리(Theodor-Heuss-Brücke) 난간 위에  그냥 낙서라고 하기에는 그런 조금은 철학적인 화두를 던져놓았다. 평소  깔끔한 난간이었고 낙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관리가 잘 되고 있었기 때문에 굵은 매직펜으로 써진 낙서는 지나가는 사람의 눈길을 쉽게 사로잡았다.


정상적인 눈높이에서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을 자아내다가, 시선을 잠깐만 아래로 떨어뜨리면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낙서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Alone, no right but no wrong.


왜, 누가 이 메시지를 남겼을까?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다리 한가운데에서 하이델베르크 성(Schloss Heidelberg)과 테오도르 굴다리 (Alte Brücke Heidelberg)가 바라다보이는, 풍광이 가장 좋은 자리 중 한 곳에서 메시지를 남겼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넋을 잃은 시선으로  난간 앞에 홀로 서 있었을 것이다. 혼자 있었다고 추측하는 이유는  동행이 있었다면 뜬금없이 이런 의미의 낙서를 남길 이유가 거의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낙서의 철학적 의미와는 별도로, 공공시설에 낙서를 감행(?)했다는 행위 자체가 그다지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다. 공공장소 벽이나 약간의 여유 공간마다 그려져 있는 대규모(?) 그레피티(Graffiti)를 생각하면 애교 수준에 불과해 보인다. 낙서행위 자체의 문제는 뒤로하고 왜 이 화두를 던졌을까에만 집중해 보자. 


낙서가 있는 자리 앞에 서면, 강을 가운데로 끼고 양옆으로 마을의 아름다운 전경 펼쳐진다. 왼쪽으로는 거주  지역으로 아름다운 주택이 모여 있고, 마을 뒤쪽으로Heidelberg 대학의 물리학과 건물과 유명한 철학자의 길이 자리 잡고 있다. 오른쪽에는 멀리 보이는 아름다운 하이델베르크 성과 강을 가로지르는 Alte Brücke와 함께 구도시의 중심지가 위치하고 있다.


전형적인 하이델베르크 관광코스: 비스마르크 광장-테오도르 호이스 다리-철학자의 길- old bridge-하이델베르크 성-Hauptstraße-비스마르크 광장


하이델베르크를 관광하는 전형적인 코스는 보통 비스마르크 광장에서부터 시작한다. 비스마르크 광장에서 강 쪽을 향해 걸으면 금방 눈앞에 테오도르 다리(Theodor-Heuss-Brücke)가 나타난다. 다리 위에 잠깐 머물면  아름다운 경치 감상뿐만 아니라  오늘의 공략 코스를 대략 한눈에 점검할 수 있다.

 

발걸음을 옮겨 시계방향을 따라 철학자의 길로 향한다. 철학자의 길을 따라가면서 내려다보는 하이델베르크 구시내의 풍경이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네카강과 함께 보이는 구도시 풍경은 보는 사람이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할 정도로 아름답다. 철학자 길에서 구불구불한 돌담길 골목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다 보면 어느새 금방 Alt Brücke를 마주하게 된다.


Alt Brücke 다리 위에서 바라다보는 성 쪽 풍경과 강물이 흐른 방향을 따라 서쪽으로 지는 석양이 연출하는 광경은 잠시 황홀경에 빠지게 만들어 주는 장관이다. 풍광을 감상하면서 다리 위로 불어오는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난간에 기대어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잔 혹은 화이트 와인 한잔은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과 더불어 감성적 분위기를 한층 배가시킨다. 주변에 환한 미소와 기쁨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기분 좋은 소음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 또한 행복감을 더욱 충만하게 만들어 준다.


다리 위에서 풍경을 즐긴 다음, 언덕길을 따라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하이델베르크 성 쪽으로 향한다. 성을 오르는 방법은 그냥 걷는 것과 푸니쿨라(Funicular)를 이용하는 것이 있다. 체력이 된다면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것이 좋겠고, 푸니쿨라를 타는 것도 관광의  재미를 위해 또 다른 선택이 될 수 있다.  


성 위에 오르면 성 자체로서 볼거리뿐만 아니라 성에서 시내 아래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이색적인 풍경은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관광 엽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아름답고 균형 잡힌 중세 시절 유럽풍경이 시선을 돌리는 방향마다 눈앞에 나타나고는 한다.


성 위에서 풍경을 마음껏  즐기고  시내 쪽으로 내려오면, 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와 넓은 시청 앞 광장을 만나게 된다. 광장 카페에서  아페롤 스프릿 한잔을 즐기며 잠깐의 피로를 풀면서 한가로운 여유를 만끽할 수도 있다.


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 앞 시청 광장에서 비스마르크 광장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Hauptstrße)은 우리의 인사동 거리와 비슷하다. 아기자기한 가게와 길거리 음식부터 고급스러운 레스토랑까지 다양한 볼거리가 풍부하게 준비되어 있다. 길거리 아이스크림(혹은 젤라토) 맛보기는 말할 필요 없는 필수이고, 브런치 전문점 혹은 고급 레스토랑에 들러 독일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이 전형적인 관광코스는 항상 여행자들로 붐비고 독일 국내외적으로도 꽤 유명하다. 근처에 가시면 하이델베르크를 꼭 한 번 들러 보실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Theodor-Heuss-Brücke아래 석양을 바라보는 두 사람


철학자의 길에서 내려다보이는 구시내 풍경


하이델베르크 성이 보이는 야경


하이델베르크성과 old bridge가 바라보이는 야경


Old bridge에서 바라다 보이는 석양빛 노을


하이델베르크 성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Old bridge와 시내 풍경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석양과 시내풍경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도시를 배경으로 바라다보이는 석양


낙서를 남긴 사람은 혼자 여행이라도 온 것일까?


도시관광 코스를 한 바퀴 돌면 비스마르크 광장을 거쳐 처음 시작점으로 다시 오게 된다.

제자리에서 방문했던 곳마다 시선으로 하나씩 옮겨가며... 느꼈던 감성 책갈피를 다시 한번 뒤적여 보았을 것이다.


아름다운 경치와 혼자 하는 여행에서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Alone, no right but no wrong.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마음을 잡으려 혼자 여행을 온 것일까?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너무 힘들어 이제 포기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사람에게 지쳐서 더 이상 인간에게 바랄 것이 없어 혼자 살겠다고 자기 선언한 것일까?


지금부터 혼자 잘 살 수 있어.... 자기  선언과 결심을 각인함으로써 누구에겐가 위로받고자 하는 마음이었을까?


여기저기 하이델베르크의 아름다운 풍광과 도시가 주는 즐거움을 혼자 오롯이 즐기고 있었을 때, 불현듯이 혼자라는 외로움이 스며들어 왔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머무는 자리임을 알고, 많은 사람에게 대답 없는 동의를 구하고자 이 자리에서 펜을 꺼내 들었을지 모르겠다. 감동적인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정서적 외로움에 휩싸여....


왜?

혼자일까?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인가?

이. 게. 왜. 잘못이야?


자신에게 질문했을 가능성이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혼자만의 행복은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은 아닐 수도 있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즐기고 누려야 할 행복은 누군가와 함께, 특히 사랑하는 누군가와 같이 즐기고 나누어야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일화가 생각난다. 지인 중의 한 명이 골프가 너무 좋아 한국에서 은퇴 이후 다른 나라로 이민하였었단다. 날마다 골프 치는 맛에 하루하루가 행복했는데, 어느 날 혼자 골프를 치다가 일생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홀인원을 했다고 했다. 너무 좋아서 펄쩍펄쩍 뛰면서 환호하고 좋아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도 그 자리에 없었다.


홀인원을 증명해 줄 사람도 없고... 일생일대의 기쁨을 같이 나눌 사람도 없고... 갑자기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큰 회의감이 들었다고 했다.


이 사건 이후로 이민 생활을 포기하고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왔다고 했다. 좀 과장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진정한 행복은 누군가와 같이할 수 있을 때 그 진가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나는 대로 개인적인 감성을 배경으로 나열해 보았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wish list(?)이니 혹시 동의하지 않더라고 슬쩍 한 번 보시고 웃어넘기시기를 바란다.


- 노을빛이 서서히 저물어 갈 때 애틋한 눈빛으로 같이 바라볼 수 있는 사람
- 아름다운 경치를 말없이 같이 바라볼 수 있는 사람
- 따뜻한 봄비를 이유 없이 같이 맞을 수 있는 사람
- 비 내리는 날 우산 하나로 온기를 같이 느낄 수 있는 사람
- 비 내리는 카페 창가에 앉아 빗소리 들으며 커피 향과 서로의 미소를 느낄 수 있는 사람
- 카페 분위기나 음악에 얽매이지 않고 오롯이 서로만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
- 커피 향이 가득한 아침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나눌 수 있는 사람
- 바람에 흔들리는 꽃향기를 말없이 같이 맡을 수 있는 사람
- 갈대가 부드럽게 흔들리는 강가에 앉아 말없이 어깨를 기댈 수 있는 사람
- 밤하늘 빛나는 별들과 함께 손잡고 말없이 걸을 수 있는 사람
- 달빛 아래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며 시간을 잊고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 사람
- 그냥 눈이 마주치면 행복한 눈웃음을 머금을 수 있는 사람
- 잠들기 전에 서로의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 함께하는 시간이 편한 이유가 없는 사람
- 하루의 피로와 고민을 나누고 상처를 위로해 주는 사람
- 함께 요리하며 재미있게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사람
- 따뜻한 차와 함께 달콤한 디저트를 같이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사람
- 재잘대는 아침 새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어날 수 있는 사람
- 달콤한 와인과 디저트를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
- 햇살 가득한 모래 해변 파도에 발을 담그며 같이 걸을 수 있는 사람
-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여행을 같이 떠날 수 있는 사람
- 낯선 도시를 함께 걷고, 이국적인 음식을 맛보며 여행의 추억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
- 시간을 잊고 상상 속 구름 위에 앉아 무한한 풍경을 같이 바라볼 수 있는 사람
- 작은 마을에 느긋하게 찾아들어서 동화 같은 이야기와 추억을 같이 만들 수 있는 사람
- 수많은 여행의 추억 사진을 보며 과거의 순간을 회상하고 미래를 같이 꿈꿀 수 있는 사람
- 서로의 버킷 리스트를 함께 만들고, 이룰 수 있도록 서로 같이 응원할 수 있는 사람
- 인생의 모험과 발견을 함께 하고 어려운 순간을 같이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사람
- 서로의 노래를 함께 같이 부를 수 있는 사람
- 늦은 밤 어두운 방 안에서 음악 소리에 함께 감성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
- 콘서트 현장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음악과 함께 절묘한 감동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사람
- 큰 슬픔과 작은 기쁨을 음악의 힘으로 함께 같이 할 수 있는 사람
- 서로의 음악적 취향을 알고 플레이 리스트를 같이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

 

더 나열할 수도 있으나 이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 좋을 듯하다. 원하는 이상형은 많은데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사실이 리스트를 작성해 나갈수록 점. 점. 더. 뚜렷해진다. 그나마 리스트와  부분적으로 비슷한(?) 사람이 옆에 있어서 행복하다고 해야겠다. (아내에 대한 아부성, 정치성 멘트...)


행복이나 기쁨과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사랑하는 사람)이 주변에 운 좋게도 같이 있다면 당연히 혼자 사는 것보다는 함께 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역으로, 주변에  행복이나 기쁨을 나누기는커녕 시기나 질투로 가득 차거나 이상한 성격의 소유로 인하여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혼자 생활하는 것이 더 행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관계에 치여 인간이 싫어지는 상황에서는 더욱 혼자의 삶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혼자의 삶을 추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쉽사리 비난해서도 안 될 것 같다.




Alone, no right but no wrong.


애당초 이 화두에 대한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어디까지나, 삶에 대한 개인적인 인식이나 취향의 다름이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낙서를 남긴 사람에게서 정서적 외로움이 물씬 느껴진다.

아니면, 지금 내가 더 외로움에 진저리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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