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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히려 더 좋다 Jul 17. 2023

음악은 현장에서 들어야 제맛이지...

독일 일상에서 마주치는 음악, 현장에서 느끼는 즐거움  

음악을 좋아하세요?


대화 중 자주 발생하는 질문이지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가끔은 망설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질문하는 사람의 의도도 잘 모르겠을뿐더러... 어디까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아주 짧은 순간 망설여지게 된다.


"네"


장난기가 약간 섞인...  지극히 단. 답. 형. 대답으로 응수해 본다.

순간 당황함이 질문자의 어색한 눈빛에서 읽힌다. (무슨 이런 성의 없는... 이 주제가 싫은가.)


질문자 의도와 대화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깊이를 사전에 가늠해 보고자 애용하는 수법이다. 이어가기 싫은 일상 속 다른 대화에서도 종종 요긴하게 이 수법을 사용하고는 한다. 더 이상 이어가기 싫은 대화에서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 있어 아주 효과적이다. 그동안 개인적 경험을 통해 얻은 확실한(?) 결과이다.


처음 질문이 진심 어린것이었다면 재차 다음 질문이 이어지게 된다.


질문이 좀 애매했죠.... 제 말은...

어떤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세요? 

어떤 장르나 혹은 자주 듣는 장르의 작곡가... 말이에요.

셀 수 없이 다양한 장르가 있겠네요.


, 팝, 클래식, 발라드, 블루스, 알엔비, 메탈, 뉴에이지, 뉴 웨이브... 디스코, 레게, 로큰롤.....

질문자의 이어지는 부연 설명과 진심 어린 의도가 드러난다.


" 나... 더 이야기하고 싶다고...."


"..........."


진지한 대화는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고, 밤새 이야기꽃을 피워도 피곤한 줄 모르게 된다.



어떤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세요?


주로 즐겨 듣는 장르는... 잠시만 고민해 봐도... 클래식(Classical)이라고 해야겠다. 물론 다른 장르의 음악도 즐겨 듣기 리스트에 많이 올라 있지만, 그래도 주로 즐겨 듣는 장르를 꼽으라고 하면 클래식 장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한가한 주말의 경우 거의 습관적으로 하루 종일 FM Classic 앱을 켜놓고 지내고는 한다. 오롯이 음악에만 신경을 집중해서 음악을 감상한다기보다는 음악이 흐르는 분위기에서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이 더 마땅한 표현 같다. 인간의 다기능(Multifunction) 능력이 높아진 것인지, 아니면 살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진 것인지 모르겠으나 음악감상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일상생활에서는 없어진 지 오래된 것 같다.


아파트 생활이 음악에만 집중하는데 제일 큰 방해물인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음악이란 적당한 크기의 음압이 있어야 느끼는 감동이 큰 법인데... 층간 소음 때문에 소리를 작게 틀어야 하니 그 답답함과 불편함은 시골 전원주택으로 이사 가지 않는 한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집안에서는 그냥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분위기... 그 자체로 만족하고 있다.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는다든지... 컴퓨터 작업을 한다든지... 운동을 한다든지... 글을 쓴다든지... 알게 모르게 음악이  주인공의 자리를 내주고 완전 보조재로 바뀌어 일상생활에 자리 잡고 있다. 집안에서 음악감상이라는 단어는 기억나지 않을 만큼 저만치 던져 놓은 지 오래된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음악 자체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예술의 전당이나 대기업 소유의 아트센터에서 개최되는 연주회 티켓을 구입하는 것이 최상이었다.


연주회 현장에서 듣는 음악은 소리 자체에서 느낌도 다르지만 살아 움직이는 현장감이 감동과 흥분 그 자체인 경우가 많다. 만일 연주자가 평소에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었고... 가고 싶었던 연주 현장이라면 심리적 흥분 상태와 기대감이 한 층 더 높아진다. 여기에 악기와 조명, 분위기, 주변 환경 등과의 자연스러운 현장의 조화는 음악이 주는 가슴 벅찬 감동을 배가 시켜준다.


아무리 비싸고... 시스템 매칭이 완벽하고... 시대를 앞서가는 어떤 하이엔드 오디오도 현장감만큼은 따라갈 수 없는 것 같다. (주관적인 판단이니 동의하지 않으셔도 좋아요.)


현장감이 중요하다는 것은 연주자와 감상자 사이의 보이지 않는 호흡(감동)의 동기화(Syncronization)를 유도하기 때문인 것 같다. 동기화는 연주자와 감상자가 같은 장소에 존재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만나지 않고 소리만으로도 동기화를 느낄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상상력이므로 실제 현장감과는 차원이 다를 것으로 보인다.


아주 오래전 경험이다.


우리 전통음악(국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다. 늘 켜져 있는 FM 라디오에서  전통 음악이 나오는 시간이 되면 채널을 습관적으로 바꾸거나 라디오를 꺼버릴 정도로 예의가(?) 없었다. 당시 우리 음악은 그냥 지루한 음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현장감이라는 실제적 경험을 맛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우연한 기회에 전통 한옥에서 개최되는 작은 가야금 음악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자리가 그다지 넓지 않은 관계로 모두 마루에 둘러앉아 가야금 연주를 들어야 했었다. 운이 좋았던지... 연주자와 무릎을 거의 맞닿을 정도의  가까운 자리에서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눈 바로 앞에서 연주자의 손을 바라봐야 할 정도의 거리였다.


어라... 이게... 무슨 일이지?


눈앞 현장에서 듣고 있는 가야금 소리와... 그 소리가 주는 감동과 전율은 오디오에서 느끼던 지루함과는 완전히 다른 그 무엇으로 변신해 가고 있었다.


가야금 연주자 손가락이 현을 넘나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우아하고 부드러운 농현(弄絃)의 손동작은 마치 가야금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한 마리 학을 연상시켰다. 아래위로 나뉘어 퉁기는 오른손과 깊고 낮은 농현을 오가는 왼손... 말 그대로 현을 가지고 노는 학의 춤사위였다.


물 흐르는 듯...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몸놀림... 가야금을 내려다보는 눈빛과 호흡... 그로부터 울려 나오는 청아한 울림은 감상자의 호흡과 공명하며 깊은 내면의 감각으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손끝이 지나는 현마다 청아하고 묵직한 소리가 리듬 있게...

생명을 찾은 듯... 질서 있게 날아와...

청각을 두드리고 내면의 깊은 감성의 울림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전율이 일었고 신비감과 놀라움으로 피부에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우리 전통 음악을 들으면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반응에 적잖이 놀랐다.

소리만을 들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현장감이 주는 영향이 틀림없었다.


우리의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참 멋쟁이셨구나...

이렇게 멋진 음악과 공연을 들으면서 풍류를 즐기셨을 테니...

옛날이야 전부 다 현장공연 아니었겠는가...




독일에 살면서 좋았던 점을 하나 꼽아보라 하면 "클래식 음악이 일상에 아주 가깝게 들어와 있었다"라는 것이다. 일상에서의 오디오를 통해서 듣는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고... 연주 현장에서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능동적, 수동적으로 자주(매우 자주) 있었다는 점이었다.


능동적이라는 것은 연주회 일정을 충분한 시간 전에 미리 인지하고 티켓팅을 해서 일정을 잡는 경우를 의미한다. 반면에 수동적이라는 것은 일정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연히 혹은 아주 짧은 시간의 인지 상태에서 참석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독일의 거의 모든 크고 작은 도시에는 통상적으로 마을의 중요한 위치에 아주 오래된 중세의 성당이나 교회가 있다. 성당이나 교회의 역사성과 건축이 주는 아름다움은 별도로 하고... 내부에는 항상 크고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이 한두 대씩 설치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메인 오르간은 제대를 마주 보는 뒤편 이층에 설치되었고 보조 오르간은 제대를 바라보는 방향에서 좌측이나 우측의 벽 쪽에 설치되어 있다. 종교적인 건물이라 오르간의 음악도 종교적인 것들 위주로 연주되고 미사 때에 울려 퍼지는 오르간의 신비스럽고 웅장한 소리는 신자들의 신심을 더욱 깊게 해주는 묘약과 같은 역할을 하는 듯하다.


하이델베르크에는 유명한 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Heiliggeistkirche)와 예수회 성당(Jesuitenkirche)이 대표적인 곳이다.  이곳에서 파이프오르간 연주회를 비롯한 다른 악기 연주회도 자주 열리고는 한다. 가끔씩 하이델베르크 성(Schloss Heidelberg) 안의 야외무대에서 공연하는 클래식 무대는 아주 색다른 분위기를 제공한다.


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에서는 거의 매주 한두 번의 연주회가 있다 보니 부담 없이(?) 자주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들을 수가 있다. 가격은 보통 10유로 내외(학생이나 하이델베르크 카드 소지자는 할인)이고 삼십 분 길어야 한 시간 정도의 짧은 연주회이다.


연주자와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지근거리의 적당한 자리는 항상 우리의 관심 자리이자 지정석이었다. 이 자리에서는 건반 위의 연주자 손가락과 몸의 움직임... 얼굴의 옆모습 표정까지도 관찰할 수 있다.


건반 위의 부드러운 손가락 터치는 높고 낮은 음역의 한계를 넘나들며 풍요롭고 아름다운 리듬을 만들어 낸다. 베이스 페달은 아주 낮게 깔리는 저음으로 공기의 떨림을 가슴을 향해 전달한다.


중세 건물이 다 그렇듯이 돌로 이루어진 내부와 제단 위 아치형 구조로 인하여 아주 좋은 공명을 만들어 낸다. 오르간 파이프에서 시작되는 리듬은 사방으로 퍼져나가 돌로 된 내부의 벽에서 반사되어 다시 건물 중심으로 휘돌아 나온다.


살아 움직이는 기운... 생명체와 같은 공기의 떨림을, 오르간과 석벽이  격정스럽게... 때로는 사랑스럽게...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연주자의 손끝에서 부드럽고 작은 터치와 함께 사라져 간다.


마지막 멜로디가 조심스럽고 조용히 사라져 가고 연주자 마지막 손길이 건반 위에서 조심스레 거두어진다. 이 순간 비로소 연주자와 감상자가 함께 만족(안도)의 한숨과 가슴 벅찬 기쁨의 미소를 주고받는다. (물론 우레와 같은 박수도 함께...) 

노 연주자의 얼굴은 흐뭇한 만족과 감사의 표정으로 옅은 미소와 함께 옅은 홍조로 발그레하다.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과 함께 가슴이 벅차오르며 눈물이 살짝(아주 살짝) 도는 듯하다.


그렇게 포말(formal)한 연주회는 아니기 때문에 마지막 곡 뒤에 잠깐 연주자에게 고마움의 인사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감사의 눈 맞춤과 고개의 끄덕임만으로도 교감하는 신호로 충분하다.


어느덧, 현장감 있는 음악이 우리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 파이프 오르간: 노 연주자가 연주회를 준비 중에 있다.

예수회 성당에서는 음악회라기보다는 매주 미사를 통해서 파이프 오르간 음악을 접할 수가 있다. 매주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이 퇴장하고 난 뒤 오르간 반주자가 마지막으로 오르간 한 곡을  선사하고 마치고는 한다.

마치 연주회 파이프오르가니스트의 카덴차(Cadenza)를 듣는 듯... 연주자의 화려하고 기교적으로 수놓은 즉흥적인 멜로디로 (즉흥적인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이다.) 미사 참석자에게 기쁨과 환희를 불어넣어 주는 듯하다.


끝나는 마지막 부분은 참석자의 긴장과 흥분을 최고조로 밀어 올리다가 정점의 끝에서 마무리되고는 한다.

이 지점에 와서는... 미사에 온 것인지... 오르간 연주회에 온 것인지... 모를 정도로 잠시 기분 좋은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성당의 주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는 하이델베르크에서 아주 유명한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Organist)로 가끔은 개인 연주회를 성당에서 열기도 한다.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주 반주자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었을 때, 오르간의 소리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오르가니스트이다.


이 반주자를 볼 때마다 바흐 (Johann Sebastian Bach)가 연상되었다.(그냥 이유 없이...)

바흐도 옛날 아른슈타트 시대(1703-1707)와 바이마르 시대(1708-1717) 독일 최고의  Organist였으니....

대단한 오르가니스트를 가까이에서 일상적으로 만나고... 그의 연주를 쉽게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한국에서 살 때와는 확연히 다른 삶의 패턴이었던 것임은 분명했다.


음악은 소리(귀)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주관적 견해)

시각적... 후각적(?)... 촉각... 기분... 분위기...

종합적인 부분이 총체적으로 한데 어우러져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예수회 성당 메인 파이프 오르간: 제대를 마주 보는 뒤쪽에 위치해 있다.
예수회 성당 보조 파이프 오르간: 제대를 바라보는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미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골목 어귀....

야외 카페에 집시(?)가 아코디언을 켜면서 테이블마다 돌면서 적선(팁)을 구한다.

신나는 왈츠곡의 멜로디가 온 거리와 광장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휘감아 돌아나가고 있다.


곡이 상당히 익숙하다...


흥겨운 왈츠곡 이바노비치(Iosif Ivanovici)의 "도나우강의 물결(Waves of the danube)"이다.

이 흥겨운 왈츠곡을 들으면서 슬픔을 느끼는 사람은 한국인.. 우리나라 사람밖에 없다고 한다.

나 역시 흥겹다기보다는 약간 애수에 빠져 있었으니...



에어팟을 끼고 있는 사람들이 오늘따라 좀 달리 보인다.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버스에서... 헬스센터에서...

지금 만약 음악을 듣고 있다면 다음에는 현장(공연장)에 가서 그 음악을 다시 들어보기를 권한다.

장르는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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