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ulture#한류#독일생활#유럽
수년 전 삼 개월 정도의 에어비앤비 생활을 마치고 이제 막 아파트 이사를 마쳤을 때였다.
가져간 짐도 많지 않았을뿐더러 모든 살림살이가 이미 갖추어진 (Fully-furnished) 아파트로 이사를 결정했기 때문에 이사는 비교적 순조롭고 간단하게 끝낼 수 있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
옆집 사는 중년 독일 아주머니를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였다.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속사포 질문이 이어진다.
"야판(Japan)?"
"아니요...."
"그럼... 히나(China)?"
"아니요...."
스무고개 게임이 시작된 듯한 코믹한 분위기였다.
이어지는 질문에 '아니요'가 연속적으로 나오자... 아주 잠깐 당혹스러운 표정을 아주머니 얼굴에서 읽을 수가 있었다.
'이런 젠장.... 그럼, 이것(?)들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거야'
그녀에게 아시안은 일본인과 중국인 밖에 없어 보였다.
아시아인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적(개인적) 느낌이었다.
단, 일본만은 예외인 듯 보였다.
역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일본은 독일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니 어느 정도 이해할 만했다.
중국은 워낙 많은 사람이 관광객으로 몰려오다 보니 숫자 면에서 무시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간주하는 듯했다.
대부분의 독일인에게는 이런 인식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나이가 지긋한 중장년, 노년층에게는 아마도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한국에서 왔어요."
"아... 한국... 그래요."
'왜... 한국을 생각 못 했지...'
그녀의 표정에서 이제야 알았다는 듯한 느낌을 읽을 수가 있었다.
"먼 친척 중 한 명이 한국인이라... 한국에 대해서 조금 알고 있어요."
멀고 먼 희미한(?) 관계를 끌어들여... 아는 체를 하려는 순간적인 노력이 눈물겹게(?) 고맙기도 했다.
연달아 틀렸던 추측을 만회하고 반전의 순간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살짝 엿 보였다.
'나... 한국도 모르는 상식 없는 그런 사람은 아니라고...'
(틀렸다는 사소한 사실도 본인 스스로 용납할 수 없다는 단호함이 읽혔다고나 할까.)
"암튼 만나서 반가워요."
"우리 아파트에는 좋은 이웃들 참 많아요."
"앞으로 차차 만나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하이델베르크도 아주 아름다운 도시고요."
"독일을 많이 즐겼으면 해요."
"그럼 또 봐요... 안녕."
짧고 가벼운 스케르초 풍(?)의 첫인사는 엘리베이터의 문 열림과 동시에 아쉽게도(?) 막을 내렸다.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고집과 지적 자존심이 엄청 세 보이는 독일인이라는 느낌이었다.
훤칠하게 큰 키와 금발... 약간 말라 보이는 외모... 적당한 무게감의 어투... 등이 자부심이 투철한 전형적인(?) 독일인이라는 개인적인 선입견에 확신을 더하게 했다. (전형적이라는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
코로나 시기로 그녀를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마주칠 때마다 우리의 안부와 함께 한국 상황에 관심을 두고 간간이 질문을 하고는 했다.
당시는 코로나로 인한 시기가 시기인지라 이웃 방문이 법적으로도 금지가 되어 있었다.
복도나 현관에서 만났을 때 간단히 인사하는 그런 것이 일반적이었다.
처음 만났던 독일 이웃들 대부분이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할 때마다 한국을 처음 언급하는 사람은 아예 없었다.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부분이 연세가 중년을 훌쩍 넘으신 분들이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연세가 있는 독일인에게 아시아는 일본이 첫 번째로 생각나는 국가이고 그다음이 중국이었다.
한국은 그들 기억 첫 페이지에는 분명히 없어 보였다.
그나마 굳이 그들의 기억을 소환한다면, 한국은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 그로 인해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에 일하러 왔던 나라... 그 정도의 나라로 생각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었다.
입주한 아파트 집기와 시설을 임대인과 하나하나 점검할 때였다. 입주한 아파트는 모든 생활 설비와 가구가 모두 구비된 아파트였기 때문에 숟가락 하나까지도 같이 숫자를 세어 놓고 기록을 해 놓아야만 했다. 이사 나갈 때 숫자가 맞지 않으면 보증금을 다 돌려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확실하게 세어 놓고 상태를 기록해 놓는 것이 필요했다.
거실에 놓인 Sony TV를 설명하는 임대인 아주머니의 말투에는... 전자제품은 일본 것이 최고이고... 최고를 구비해 놓은 자기 아파트에 대한 자부심이 에스프레소 커피 향만큼이나 진하게 배어있었다. 디스플레이 전문가인 내 눈에는 당장 지하실(Keller)로 보내버리고 싶을 정도의 저품질 수준이었지만 '네... 네...'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제품이 일본 것보다 좋다고 아무리 떠들어 봐야... 보수적인 중장년층 독일인들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일이고... 그들에게 전자제품은 여전히 일본 것이 최고로 여겨지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독일인(유럽인)에게 일본이 아시아에서 최고이고 '아시아' 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나라였다.
동네 뒷산 철학자의 길로 산책하고 있었다.
언덕 아래로 강 건너 도시의 풍경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나무 그늘이 있다. 그 나무 그늘에 한 중년 거리공연자(Busker)가 팝송으로 거리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 옆을 막 스쳐 지나가려는데 갑자기 팝송에서 일본가요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으잉... 주변에 나 밖에 없는데...'
'이 친구 완전히 잘 못 짚었지...'
나 들으라고 부르는 노래였다.
'어이 일본친구... 너희 노래 한 곡 해 줄 테니 동전 한 닢 주고 가지...'
이런 속마음의 표현이 틀림없어 보였다.
약간의 당황스러움과 더불어 어쩔 수 없는 순간적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그의 노력은 이미 연민의 예민한 신경 줄을 튕겨 놓았기 때문이었다.
대가로 주머니 속 동전 한 개가 맨땅 위에 놓여있는 그의 모자 속으로 공간 이동하며 사뿐히 굴러 내려앉았다.
'난 일본 사람이 아니라고...'
"아리가또..."
동전 떨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일본말이 귓속으로 세게 부딪혀 왔다.
'우이 씨... 일본 사람 아니라니까'
90년대 초 미국 유학 시절을 생각해 보면 전자제품은 일본 것이 최고였었다.
우리가 제품다운 제품이라고 내세울 것은 거의 없었다.
컴퓨터는 NEC 모니터가 최고의 사양이었다. 이 모니터를 갖고 있으면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될 정도였었다. 당시의 가난한 유학생들은 사양이 좋다고 무조건 다 구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나라 대기업 싸구려(?) 모니터를 구입하는 것이 그나마 경제적으로나... 알량한(?) 애국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대학 미식축구가 있는 날에는 대형 Sony TV가 있는 집에 모여서 피자 내기를 하고는 했었다.
당시에 TV는 Sony가 최고였다. 귀국하는 유학생들의 이삿짐에는 대형 Sony TV가 한 대쯤은 포함되는 것이 상식일 정도였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당시 우리나라 TV와 모니터는 그저 그런 싸구려 쓰레기(심하게 표현하면) 제품이었다.
자동차만 해도 그랬었다.
한국 차는 '새 차를 뽑아 집으로 가는 도중에 고장 나는 차'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였다.
이 농담은 유고슬라비아(지금은 해체된)의 '유고'라는 차에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계속됐었다.
유학생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가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라는 자부심보다는... '이런 싸구려 차를 만들 수 있다'라는 수치심을 더 크게 느끼고 있던 때였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위상은 그냥 저품질 전자제품과 모양만 갖춘 자동차를 만드는 나라 정도였다.
한국자동차는 냉장고에 바퀴를 달아놓은 것이라고 농담할 정도였으니 그 위상을 미루어 짐작할 만했다.
지금이야 TV나 컴퓨터 모니터는 물론 휴대폰에서 우리나라 대기업 제품이 세계에서 제일가는 명품으로 손꼽히고 있으니 자랑스럽기가 한이 없다.
자동차도 옛날과 달리 품질이나 디자인 관점에서 세계적인 명차를 맹렬하게 뒤쫓고 있으니 격세지감이라 할 수 있겠다.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하기에는 아직 모자란 감이 있으니.)
최근 독일(유럽)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우리나라에 관한 느낌이 확실하게 달라지고 있다.
한국 문화가 급격하게 확산하고 있음을 개인적으로 조금씩(?) 실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독일 젊은 웨이터(Kellner/Kellnerin)들이 식당이나 카페에서 간혹 한국인이냐고 먼저 묻고는 한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면 자기는 한국인을 구별할 수 있다고 했다
그와 동시에 '안녕하세요.'나 '감사합니다'가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파리의 한 식당에서 우리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프랑스인 학생(웨이터)을 만난 적이 있다.
우리나라 Y 어학당에서 우리말을 배웠다고 했다.
돈이 모이는 대로 적당한 시기에 다시 공부하러 한국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파리에 있는 식당에서 프랑스인에게 우리말로 주문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색적인 경험을 했다.
이색적인 경험인 만큼 두둑한 팁을 지불해야 하는 부작용(?)이 있기는 했지만 기분 좋은 일임은 확실했다.
만났던 많은 젊은 독일 친구들의 공통된 반응이 다음과 같다.
'기생충'을 보았다고 했다.
'오징어 게임'을 보았다고 했다.
'미나리'를 보았다고 했다. (미나리는 우리 동네(하이델베르크) 영화관에서 상영하기도 했다)
BTS 팬이라고도 했다.
BTS는 이름만으로 그냥 게임(?) 끝이다.
나보다 더 잘 안다.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가벼운 몸짓으로 응답한다.
한 번은 도시의 광장에 K팝을 boom box로 틀어놓고 스무 명 남짓 젊은이들이 단체 K팝 춤을 추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우리 노래를 틀어놓고 우리의 춤을 추는 독일 젊은이들... 상상조차 어려웠던 선물을 받은 신선한 느낌 그 자체였다. 외국인이 아닌, 그냥 우리나라 젊은이로 느껴지는 환각(?)을 보았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 같았다.
K-culture 인기를 방송으로만 접했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믿기 어려운)... 실제로 여기저기서 목격과 경험을 하게 되니 실감이라는 표현은 뭔가 좀 부족해 보였다. 경이롭다는 표현이 조금은 더 적절해 보였다.
우리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주는 영화인, 예술인, 스포츠인들에게 큰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 강하게 들었다. 이들 덕분에 그냥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외국인 앞에서 어깨 뽕이 한껏 들어가는 자부심을 느낄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외국에 살기 전, 이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고마움을 느낄 것이라고 상상해 본 적이 결코 한 번도 없었다.
외국에서 살면서, 외국인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 이들 덕분에 우리 것(문화)으로 대화를 풍부하게 할 수 있었다. 대화 소재로써 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자랑까지 함께 할 수 있게 해 주었으니... 큰절 그 이상이라도 해 주고 싶은 고마움이 크게 느껴지고는 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독일인들과는 임윤찬의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수상을 화제 삼아 즐거운 하룻저녁을 보낼 수 있었다. 여기에 조성진, 발레리나 강수진,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Clara-Jumi Kang)을 이야기에 추가하면 저녁 식사 자리는 한껏 우아하고(?) 풍성한 이야깃거리로 자연스레 더욱 흥이 나게 된다.
축구를 좋아하는 독일인들에게 손흥민 선수는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손흥민 선수는 EPL에서 뛰지만, 함부르크와 레버쿠젠에서 맹활약했기 때문에 독일 출신이라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축구는 독일인들에게 자존심의 상징이자 스포츠의 전부를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 친구들은 지지난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에 진 것을 절대 인정 안 한다.
그냥 교통사고와 같아서... 자기네들 기억에 없다고... 도리질을 치고는 한다.
친한 독일 친구 놀려먹기에는 최고의 안주였다.
물론 적당한 수준에서 멈추는 현명함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우리 축구 수준(순위)이 올라간 것만큼 나라의 위상이 올라갔다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을 것 같다.
손흥민 선수가 EPL 골든 부츠를 수상... 여러 명의 코리언 가이들... 이들이 있어 대화가 더욱 재미있고 독일인들이 생각하는 우리나라 위상(알려진다는 의미에서)이 달라짐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인 느낌이니 논리적인 것은 접어 두시기를.)
'어... 축구 좀 하네'
독일 국내 여행을 하다 보면 우리나라를 다녀간 젊은 독일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기도 한다.
생각보다 많이 만나기도 했지만, 한국을 알고 경험해 봤다는 반응에 신기함을 느끼고는 했다.
서울을 다녀가 봤다고들 했다.
서울의 아름다운 모습과 현대식 건물, 깨끗하고 디지털화된 도시에 감동이 크다고 했다.
어디서든 인터넷이 빵빵 터지고... 깨끗한 지하철... 병원, 안경원, 식당, 화장실... 역동적인 속도에 감명을 넘어 기절할 정도라고 했다. (기절할 것까지야.)
유럽의 대도시와 비교하면... 그들의 서울(한국)에 대한 인상이 절대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상황에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는 진실을... 정작 우리만 모르는 이상한 역설적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다.
자부심을 가집시다.
괜찮습니다.
독일(유럽)인들이 K팝과 드라마, 영화에 관심이 많다 보니, 우리나라로 여행할 기회를 자연스럽게 더 자주 갖는 것 같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젊은 외국인들에게 생각보다 빠르게 알려졌음이 확실하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외국인 젊은 친구들과 우리나라를 소재로 소통하기가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쉬워졌다.
그들이 먼저 다가오고 관심을 건네오고는 한다.
우리나라 한류의 위상이 달라도 아주 많이 달라졌다.
이제 '아시아' 하면 일본만큼이나 (일본보다 더) 자연스럽게 한국을 먼저 떠올리는 그런 때가 되었다.
그만큼 외국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큰 자부심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과 고마움의 대상이 되고 있음이 확실하다.
앞으로 만나게 될 우리 문화 발전의 양과 질에 있어서 기대가 아주 크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한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기대가 큰 만큼...
잘 나갈 때 더욱 경계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난 아시안 게임 테니스 경기에서 졌다고 라켓을 내려치고 상대 선수와 악수를 거부한 선수가 기억난다.
이런 무례는 선수 본인뿐만 아니라, 외국에 사는 동포들의 어깨를 처지게(손가락질받게)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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