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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히려 더 좋다 Dec 28. 2023

바람난 찐빵의 추억과 독일 찐빵

#독일생활#크리스마스시장#독일 찐빵#Glühwein


- 따뜻한 길거리 간식이 그리워지는 쌀쌀한 날씨
- 국도변 시골길 찐빵집 솥, 무럭무럭 피어나는 수증기와 무의식
- 독일 크리스마스 시장 찐빵


우리나라 국도변 시골길 운전 중 짙은 수증기(김)가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찐빵집을  마주칠 때가 있다.  짙게 피어오르는 수증기는 자연스럽게 자동차의 속도를 늦추게 만들고는 했다. 이것이 없었다면, 찐빵가게 존재도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수증기는 시각적으로 따뜻했고... 찐빵의 달콤함을 이미 느끼게 했고... 마음을 한껏 포근하게 했고... 잠시나마 동심으로 한껏 들뜨게 하고는 했다.


자동차가 멈추기까지 아주 짧은 순간, 수증기는 이미 애피타이저 역할을 톡톡히 하는 듯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아내와 시골길 국도변을 자동차로 달리고 있었다.

조수석에서 앉아 라디오 음악과 시골 전원 풍경을 가벼운 마음으로 흘려 담고 있었다.


'..........'


"어라... 저기 바. 람. 난. 찐빵이 있네"

"뭔 이름이 바람난 찐빵이래..."


"....."

의아한(한심하다는) 아내의 눈길이 싸하다.


"뭐라고?... 찐빵이 뭔 바람이나..."


"저기... 저기... 쓰여있잖아... 찐빵집 간판에... 바. 람. 난..."


"........"


"잘 보셔... 저게 어디 신. 바. 람. 난.이지 바. 람. 난. 이냐고?"


"신. 바. 람. 난. 찐. 빵. 집." (특별 상호를 광고할 의도는 전혀 없다.)

한심하다는 듯... 스타카토로  콕콕 찔러 강조했다.

'신바람 난'과 '바람난'은 의미가 달라도 완전히 달랐다.


"우리 여보... 요새 엉큼한 생각하는 거 아냐?"


"여보야, 그거 알지?"

아내의 추궁이 이어진다.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과 반응이 모두 무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프로이트의 심리학 이론 말이야."

"성욕을 인간 생활에서 주요한 동기 부여의 에너지로 정의하고... 무의식 속에 그것이 항상 가득 들어차 있다는... 뭐... 그런 거 있잖아..."


"무의식에 온통 엉큼한 생각뿐이니 '신바람 난'에서 '바람난'만 보이는 것 아니냐고?..."


짙은 수증기가 '신'자를 가렸기 때문에 '바람난'만 보였을 뿐이었다는 변명(사실)은 통하지 않았다.

무의식에 그냥 '바람(성욕)'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는 누명만 쓰고 말았다.  


따끈한 찐빵을 품에 안은 어린아이...  입이 데일세라 조심스레 한입... 찐빵의 맛은 童心의 천국으로 인도하는 '천국의 계단' 그 자체였다. 바람난... 따끈한... 찐빵을 처음 한입 베어물 때, 팥앙꼬의 달콤함이 혀끝을 통해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찐빵이 줄 수 있는 맛의 클라이맥스(?)이다.


무의식 속의 바람(성욕)의 누명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 순간만큼은 억울한(?) 지청구도 씻은 듯이 사라지게 만들고는 했다.


흘려 담던 차창 밖  풍경 또한 더욱 포근해지고... 따스한 천국의 그것으로 변하는 마술을 경험하기도 한다.

 따끈한 바람난 찐빵은 '童心의 천국'으로 가는 마약(?) 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초등(국민) 학교 시절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귀가하는 골목길 모퉁이에  찐빵집이 있었다.

찐빵집 건너편 문구점에는 둥그런 찜통이 가게 앞에 하나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하얗고 따뜻한 호빵이  습기를 머금고 있는 유리를 넘어 꼬맹이 눈길과 발길을 사로잡고는 했다.


꼬맹이들이 찐빵집 근처를 재잘대며 무리 지어 지나갈 때쯤, 주인집 아저씨는 매번 찐빵 솥을 열어젖히고는 했다. 찐빵집 아저씨의 의도한 행동이 틀림없어 보였다. 먹음직스러운 찐빵... 추위를 물리는 따뜻한 수증기...  꼬맹이들의 배고픔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고도의 상술 혹은 마케팅 전략임이 틀림없었다.


무럭무럭 피어나는 김과 함께 솥단지 안의 먹음직스러운 찐빵은 항상 꼬맹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고는 했다.


"와... 찐빵이다..."


이 환성은 뻥튀기 기계의 '뻥이요' 만큼이나 강렬했다. 뱃속의 꼬르륵 소리는 탄성의 크기와 비례해서 더욱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이 강렬함은 꼬맹이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와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성인이 된 지금, 바람난(?) 찐빵집 수증기는 동심의 무의식을 자동적으로 소환하고는 한다. 

마치 조건 반사 테스트를 위해 훈련받은 '파블로의 강아지(Pavlov`s dog)'처럼 말이다.


"와... 찐빵이다..."

외마디 탄성과 함께 뇌와 혀는 이미 동심으로 가득한 찐빵의 맛을 느끼고 있었다.


옛날 꼬맹이는 찐빵과 호빵을 구별할 수가 없었다.

단지 호빵은 찐빵에 비해서 피부가 좀 더 하얗고... 약간 더 비싼 것(찐빵)으로 규정 지어 버렸다.

찐빵 하나는 꼬맹이 주머니 사정으로도 비교적 해결 가능해 보였다.

호빵의 경우는 호빵찜통을 여는데 한참의 망설임이 필요했다.

찐빵보다는 상대적으로 비쌌고  호빵 한 개는 찐빵 몇 개와 맞먹는 비용이었기 때문이었다.

 量보다 質을 선택해야 하는 쉽지 않은 결심이 필요하기도 했다.


지금도 찐빵과 호빵의 구체적 차이를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호빵을 봤을 때는 '와... 호빵이다'라는 탄성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증기가 확 피어오르며 뚜껑을 열어젖히는 강렬한 이벤트 기억이 없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독일찐빵(Germknödel)이 진열대 찜통기에 들어 있다. 우리의 찜통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와... 찐빵이다."


독일에서 바람난(?) 찐빵을 만났을 때 참으로 신기했다.

우리 찐빵을 독일로 가져와서 따뜻하게 덥힌 것이 아니라 독일산 전통 찐빵이었다.

독일찐빵(Germknödel)은 생긴 것부터 앙꼬까지 우리의 것과 거의 비슷했다.


다르다면 먹는 방법이 조금(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접시에 찐빵을 하나 이쁘게 놓고 바닐라 소스를 넉넉히 올린 다음 양귀비가루와 설탕을 적당히 뿌린다.

그런 다음 포크와 나이프로 한입만큼씩 잘라서 소스에 묻혀 먹는다.


우리 찐빵은 손으로 떼어먹는 간식이라면 독일 찐빵은 좀 우아하게(?) 폼 잡고 먹는다는 점이 다르다.


독일은 11월 중순부터 크리스마스시장(Weihnachtsmarkt)이 시작된다.

크리스마스시장은 도시광장마다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놀이기구등을 설치하고 수많은 가판 상점이 들어선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돋워 놓는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뉘른베르크, 프랑크푸르트, 드레스덴, 쾰른 그리고 베를린 등 대부분의 대도시 크리스마스시장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아주 좋다.  시기를 맞춰서 방문해 보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크리스마스시장에서의 즐거움은 우리나라 축제장과 같이 다양한 먹거리에서 찾을 수 있다.

 Glühwein (따뜻한 와인) 한 잔을 사서 들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 된다. 가판상점마다 파는 간식거리를 맛보고 구경거리를 찾아 헤매면서 분위기를 한 껏 즐기면 된다.

따뜻한 Glühwein 한 잔씩 들고 길거리로 나서 보세요. 길거리 상점에 다양한 즐길거리 간식이 널려 있다.



분위기를 즐기다가 독일 찐빵을 보게 되면....


"와... 찐빵이다."


바닐라 소스를 듬뿍 발라서 포크와 나이프로(포크만으로 충분) 우아하게 드셔보시기를...


일단 크리스마스시장 분위기를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그 자체를 즐기면서... 기분 좋게 시작해 보자.

보이는 것을 즐기다가... 서서히... 시선을 좁히면서 봐야 할 것들을 찾아서... 차근차근 시선을 옮기다 보면  하나둘 씩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앞으로 나서며 웃음과 재미를 전달한다.


우아한(?) 독일찐빵과 바람난(?) 찐빵의 에피소드가 오버랩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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