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럭저럭 견딜 만한 날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여느 초등학생들처럼 피아노학원과 미술학원, 태권도장을 뺑뺑 돌면서 앉아있기를 지겨워하는 평범한 날들이 흘러갔다. 산업재해로 집에서 요양 중이던 아빠는 미술학원과 피아노학원 지하에 있는 실내낚시터에 가있는 시간이 더 많아서 나는 학원이 끝나면 아빠를 만나러 낚시터에 가곤 했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찌만 빛나던 그곳. 아빠와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아빠는 내 목소리가 고기를 쫓는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낚시터에 마련된 경품을 구경하거나, 낚시터 주인아저씨가 물고기를 손질하는 것을 눈을 빛내며 쳐다보는 것뿐이었다. 아저씨는 내게 물고기의 부레를 보여주었다. "물고기는 이 부레로 물에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 거란다."
부레. 물고기가 아가미로 호흡한 뒤 날숨을 저장하는 부력기관이라고 한다. 부레에 공기가 많이 차면 물고기가 수면으로 뜨고, 공기가 빠지면 깊은 곳으로 내려가게 돕는 기관. 나는 물고기가 그렇게 신기했다. 뜨고 싶으면 숨만 저장하면 된다니. 나의 현실은 내 부레에 구멍을 내어 저 깊은 해저로 나를 끌어내리고 있음을 나는 은연중에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부레를 신기해했던가.
어느 날,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한 달 전 할아버지 생신 때 건강한 모습으로 뵈었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왜 돌아가셨냐 묻는 내게 엄마는 심장마비라고 이야기했다. 빈소는 할머니집 안방에 차려졌다. 아파트 3층 안방이었다. 자개로 만든 장롱과 화장대 앞에서 할아버지는 병풍을 두고 누워있었다. 여느 장례식이 그렇듯 분위기는 침울했다. 방 세 개짜리 아파트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을 받아냈다. 어른들이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언성을 높일 때면, 나를 포함한 아이들은 모두 작은방에 들어가 있어야 했다. 나도 할아버지 옆에 있고 싶은데.
나의 할아버지. 아침잠 없는 아이였던 나와, 아침잠 없는 노인이었던 할아버지는 곧잘 둘이서만 드라이브를 다니곤 했다. 유원지로 향해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기도 하고, 보조바퀴 달린 자전거를 빌려 공원을 몇 바퀴씩 돌기도 했다. 비둘기에게 밥을 주다, 연을 날리려 이은 줄에 발이 꼬인 비둘기를 발견하고는 실을 풀어주려 함께 끙끙댄 일도 있다. 지금까지도 눈물 날 만큼 아름다웠던 시간들.
매일매일 반주를 즐기던 할아버지는 옆에 앉은 내게 할아버지의 안주를 나눠주셨다. 번데기, 골뱅이, 후르츠 칵테일 같은 통조림부터 할아버지가 직접 만든 특제 김치볶음밥까지. 할아버지의 김치볶음밥은 왜 그렇게 맛있었을까? 하루는 김치볶음밥이 너무 먹고 싶다는 내게 할아버지가 직접 시범을 보이며 레시피를 알려주셨다. 후라이팬에 마가린을 잘 녹여서, 쫑쫑 썬 김치를 볶아주고, 흰쌀밥을 넣어 마저 볶아주면 되는, 아주 간단한 요리. 할아버지가 떠난 후 할아버지가 그리워지면 나는 김치볶음밥을 만들곤 했다. 똑같은 재료를 넣고 똑같이 했는데. 할아버지. 왜 나는 그 맛을 낼 수가 없을까요? 그 맛이 안 나요. 이제는 그 맛도 기억나지 않아요.
장례식이 끝나갈 무렵, 누군가가 내게 와서 말했다. "그래도 너는 첫 손주고 할아버지가 그리 예뻐하셨는데, 할아버지 입관은 봐야 하지 않겠나?" 홀린 듯이 안방으로 향했고, 나를 마지막으로 곧 안방 문이 닫혔다. 병풍을 치우고, 마련해 둔 관에 할아버지의 시신이 담겼다. 아직도 눈에 선한 할아버지의 마지막 순간. 내가 손자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할아버지의 입관을 지킨 사람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마지막 가는 길까지 나에게 선물을 남기고 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해, 여름방학이라고 할아버지 집에 와서는 제대로 씻지도 않고 먹고 놀기만 하는 내 꼴을 보고 할아버지가 내 육공 다이어리에 육필로 짧은 글을 남겼다. 'OOO 공부를 합시다. 할아버지 부탁' 아이, 할아버지는 왜 내 허락도 없이 내 수첩에 싸인펜으로 이런 글을 쓰셨담? 어린 마음에 할아버지가 조금 미웠지만 그래도 할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 그 글을 그대로 두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 수첩을 다시 펴보았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편지, 그리고 유일하게 나에게 남은 글씨. 자를 대고 반듯하게 잘라 그 글을 책상용 스탠드에 붙였다. 전등을 켜고 끌 때마다 할아버지의 글씨가 눈에 박혔다. 할아버지 부탁. 부탁.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0년이 더 지난 어느 날, 나는 뒤늦게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사인은 교사(絞死). 자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