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구이 통닭과 콜드 포도주스
199x년 어느 저녁, 내 손을 잡은 엄마가 택시를 탔다. 'XX마트로 가주세요.' 우리 동네에서 차를 타고 30분은 가야 있던 그 마트에는 무슨 일로 가야 했는지, 그때까지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택시에서 내린 우리 눈에 익숙한 사람이 들어왔다. 아빠. 아빠는 우릴 보자마자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마치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그곳이 아빠의 내연녀가 일하던 곳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그리 머지않은 때였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는데도.
아빠는 굳은 표정으로 우릴 태우고 집으로 왔던가. 아니면 우리 모두 같은 택시를 타고 왔던가. 지금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지만, 우리가 같은 차에 있었던 것만은 기억에 선명하다. 굳은 표정들, 주황빛 가로등, 그리고 그 순간이 숨 막히게 불안했던 나. 폭풍전야와도 같았던 그 시간이 짧지만 강렬한 기억의 한 조각으로 남았다.
우리가 집에 도착한 뒤, 아빠는 내 손에 XX마트에서 팔던 전기구이 통닭과 포도주스 한 통을 쥐어주며 작은방으로 들여보냈다. "엄마아빠 얘기하는 동안 작은방에서 이거 먹고 있어." 닫힌 방문 너머로 온갖 고성이 들려왔다. 음식을 먹고 싶을 리가 없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닭과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주스병. 내가 전기구이 통닭과 포도주스를 입에 다시 대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자그마치 15년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온갖 세간살이가 모두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지만 그 일이 여러 번 반복되니 그 충격도 처음 것만 못했다. 그렇다고 그게 괜찮다는 뜻은 아니었다. 내 펜들이 잔뜩 꽂혀있던 빨간 달마시안 팝콘통도, 아빠가 군대를 전역할 때 받았던 돌로 만든 전역패도 박살 난 채 바닥에 뒹굴고 있는 꼴이 내가 없을 때 일어난 일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내가 없었을 때만 일어나던 부부싸움은 나를 방에 들여놓고도, 또 종래에는 내 눈앞에서도 일어나는 것으로 점점 발전해 나갔다.
나는 어른스러운 아이였지만, 그렇다고 아홉 살짜리 꼬맹이가 어른일 리는 없었다. 학교에서 문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 그때쯤이었다. 어린아이들의 흔한 '쟤가 잘못했는데 왜 나만 혼내요' 따위의 억울함을 참지 못했다. 선생님께 대들기도 수차례였다.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사건 하나가 있다. 어느 날엔가, 담임선생님이 훈육 목적으로 나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너 이럴 거면 그냥 집에 가!" 나는 그 길로 가방을 챙겨 교실을 나왔다. 집에 가란다고 내가 못 갈 줄 아나? 학교 정문에 다다를 때쯤 급우 두 명이 헐레벌떡 나를 쫓아왔다. "선생님이 너 다시 오래!" 흥. 이랬다 저랬다!
어느 날, 엄마와 나는 집에서 쫓겨났다. 무시무시하게 화가 난 아빠가 우리에게 나가라고 했던 것 같다. 아빠가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도 살지 않고 비어있던 앞집으로 갔다. 얼마나 오래 그곳에 있었는지도 기억에 없다. "엄마, 우리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 묻는 내게 엄마는 난처한 듯 미소를 띤 얼굴로 말했다. "아빠가 화가 많이 나셨나 봐. 우리 여기에 조금만 더 있자. 그러면 나중에 엄마가 가서 살짝 확인해 보고 올게." 이런 대화가 두어 번 반복될 즈음이면 아빠의 화가 풀렸다. "아빠가 들어오라고 하시네." 나가라고 해놓고 지금은 들어오라고 한다고? 왜 어른들은 다 이랬다 저랬다일까? 나는 어른을 향한 신뢰를 잃은 삐딱한 어린이로 변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