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뒤로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울음이 터졌다. 되는 건 하나도 없고 되던 것도 안 되는 게 억울해 수련실이 쟁쟁 울리도록 눈물을 쏟았다. 매트를 정리할 땐 어떤 분이 다가와 "괜찮아요?"라고 물었다. 대답 없는 내게 "저도 그런 날이 있었어요."라는 말과 함께 "힘내요", 해주셨다.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내일 봐요" 하셨다. (2020년 3월 13일 수련일기 중)
기억난다. 아마 이별한 다음날이었던 것 같다. 얼마나 관심이 필요했으면 수련하다 말고 광고하듯 울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결국 이름 모를 분의 위로까지 받아내고야 만 스물 일곱의 내가 있다. 그 때 나는 만남과 이별에 사정없이 휘둘려서, 이별하면 누구든 만났고 만나면 누구라도 이별했다. 곁이 비는 참은 견디지 못했다. 연애가 지긋지긋하다고 말하면서도 습관처럼 밴 애착 패턴을 쉬이 끊어내기 어려웠다. 훌훌 자유로운 혼자를 꿈꾸면서도 영영 종속되는 사이를 갈구했다. 반복되는 외로움은 그녀를 뜨거운 낭만주의자로 비치게 했다.
낭만에 죽고 낭만에 산다고, 당시엔 정말로 죽고 사는 문제로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죽을 것 같다고 자주 혼잣말을 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용하다는 신점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무당 선생님께 자꾸만 죽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하니 무당 선생님 왈, 절대 안 죽는 팔자니 행여나 시도조차 하지 말아, 하셨다. 괜히 시도했다가는 죽지도 못하고 몸만 병신될 건데 그것만큼 억울한 게 어딨겠냐고. 무당 선생 말마따나 제대로 죽지도 못하고 영영 불구로 살아갈 걸 생각하자 아찔했다. 나는 그 날부로 죽음을 접었다.
낭만과 죽음은 이십대의 화두였다.
그리고 글쓰기란 조용한 비명 같은 것이었는데 살다 보니 이렇게 차분한마음으로 담담히 쓰는 날도 왔다. 이제서야 비로소 나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지금에 오기까진 요가와 명상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불안과 두려움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얼추 볼 수 있게 된 듯하다.한 발짝 물러나니 혼란했던 감정들이 옛날 풍경 같다. 내가 느껴온 것들이 당신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고 용기내어 나를 꺼낸다.